오베때부터 라인해서(갑주랑 해머가 취향직격이었거든. 지금은 블랙하르트 사서 쓰지만) 2900점 빠대 28시간 경쟁전 11시간 라인하르트(둘다 모스트) 유저야.

 

라인하르트 너프 먹이자는 농담에 진심으로 화나는 완전 라인빠.


일단 아나패치 전에도 방패 들면 내 뒤에 힐러밖에 없었어. 친구랑 2인큐 돌리면 나랑 그 친구랑 둘이 거점 막거나 화물 옮김.

 

하도 화가 나서 마이크 들고 브리핑도 해보고, 힐러구걸도 해보고, 입 터는 놈들도 다물게 해봤는데 결과는? '벽에다대고 쉬프트쓰는놈이 뭐래'란다.

 

경기 내내 내 뒤에 있던 적이 없던 딜러놈이. 심지어 이 놈 닉이 루시우였다.

 

물론 내가 쉬프트 잘 못 쓰는 건 알아. 당연히 내 잘못이지.

 

그런데 그게 파라 솔저 메르시 자리야를 혼자 막다가 채팅창에 그 놈 닉밖에 안 보일 정도로 아군한테 입 털면서 전선에서 보이지도 않는 딜러한테 '탈주할거 아니면 다물고 있어라' 한 마디 못 할 중죄인가?


아마 이 때부터 로드호그 연습을 시작했었다. 빠대에서 하이라이트도 몇 번 먹어보고, 킬금 딜금도 먹으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패치가 되고, 디바들이 훨씬 강력한 탱커가 되면서 라인하르트 하기 힘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빡겜할 땐 라인하르트를 돌렸다.

 

디자인,스킬셋,설정, 모든 것이 내 취향에 딱 맞던 라인하르트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망치 딜이 토르비온이랑 같은 건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것도 라인하르트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지만 로드호그도 재미있었고, 입지가 좁아진 라인하르트를 경쟁전에서 굴리기도 힘들어 내 로드호그를 시험하기로 마음먹고 난 다시 경쟁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경쟁전. 화물 공격이었다.

 

'라인하르트는 누군가가 하겠고, 어차피 내가 해도 쉬프트 각 잘 못 잡으니 화물셔틀밖에 안 된다. 누가 강요받아 잡는 것과 비슷할 거다' 라는 생각으로 로드호그를 픽하고 픽창을 봤다.


라인하르트는 없었다. 라인하라는 놈은 하나 있었다. 힐러 단 하나.


그렇게 다시 화물을 밀었고, 그렇게 다시 아군엔 한조가 있었고, 그렇게 다시 화물 앞에는 윈스턴 자리야 솔저 파라 메르시가 철벽 방어를 세우고 있었고, 그렇게 다시 우리 딜러는 내 방패 뒤에서 보인 적이 없었고, 그렇게 다시 우리 팀의 화물전선 화력은 루시우가 전부였고, 그렇게 다시 나는 강등당했다.


2500점까지 떨어지고, 다행히 좋은 팀을 여러 번 만나서 악착같이 2900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경쟁전 버튼으로 손이 가다가, 갑자기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해서 뭘 만나지? 꼭 한조 잡고서 궁 쓰고 바꾼다더니 궁으로 한 놈도 못 잡고서는 팀의 책망은 한 마디도 듣지 않고 끝까지 활 쏘는 녀석?


지금 이 버튼을 누르고, 라인하르트를 고르면 내 방패 뒤에 누가 있지? 루시우? 메르시?


지금 이 버튼을 누르고, 라인하르트를 고르면 내 방패 앞에 누가 있지? 바스티온? 그리고 그거 자른다는 핑계로 하고서는 집중포화를 방패만큼 받고 죽을 우리 겐지?


울컥했다. 


한때 롤(난 한 적도, 할 생각도 없다)의 랭겜 등급으로 자살해라, 머가리 빻았다 하는 이야기들에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생겨난, 아니 급속 확산된 '게임은 빡겜'이라는 메타에 적응할 생각 없이 즐겁게 게임하고 있었는데.


라인하르트로 방패 세우면서, 그 때 하는 대사 하나하나에 뿌듯함을 느꼈는데.


경쟁전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5고릴라 1루시우로 화물 밀면서 루시우가 '난 수의사다!'라고 외치는 채팅에 낄낄 웃으면서 즐겁게 게임했는데. (이건 오버워치 하면서 제일 즐거웠던 추억이다.)


경쟁전이 시작되고 난 어땠지? 한조한테 윽박지르고, 방패 뒤로 오라고 재촉하고, 힐러 없다고 정치질하고, 강등되면 '인연이 있어도 다시 만나지 말자'라며 화낸 기억이 한가득이다.


한숨이 나왔다. 한심하게 보였다.빡겜하라는 경쟁전에서 겐트위한 잡는 놈들도, 그거 잡고서 욕이나 하고 다니는 놈들도, 그리고 그들의 트롤에 분노하는 우리 팀들도, 경기 끝나고 인성질하는 적들도, 그리고 그 상황의 일부였던 나 자신도.


요즘은 빠대만 돌린다. 라인하르트로 이렇게 재밌게 게임한 게 오랜만이다. 그렇게나 혼자 밀던 화물도 '화물이야? 이 할애비가 밀어야지! 신속정확 할배 익스프레스!' 같은 농담을 하며 즐겁게 밀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디바 상향으로 라인하르트의 입지는 많이 줄었다. 더 이상 라인하르트는 예전처럼 팀에 한 명쯤 있어줬으면 하는 든든한 방패가 아니다. 오히려 방패 범위 빼고는 디바 하위호환에 가깝다. 화물을 밀려고 해 봐도 3디바 앞에서는 1미터도움직이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라인하르트를 쓴다.

 

더 이상 재미나 성능의 문제가 아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끝끝내 고담에 남는 고든의 심정일까.


오버워치가 즐겁다. 라인하르트가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