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古都 그라운드 원, 옛 제주특별자치시에 2022년 관리 실패 사건 이후 일어난 비극 위에 세워진 첨단 도시다. 그러나, 차마 이름도 다 못 외울 합금을 두른 전함이 하늘을 날고 성채처럼 지어진 빌딩들이 바벨을 연상케하듯 높다랗게 솟아있는 오늘날 2042년에도, 사람의 의식은 여전히 옛 사바나에 처음 출현한 선조와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공장에서 주조되는 무기와 이터니움을 위해 항상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태스크포스의 용병들은, 원시의 수렵채집인이 창을 깎고 그 날의 식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에 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인간의 성질은 기회가 닿으면 쉽게 문명을 벗어나 원시성에 닿고 만다.


코핀 컴퍼니의 부사장 이 수연 (4■세)은 주 군에게 "아직 젊은데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느냐", "사실 너도 즐기는 것 알고 있다", "뜻하지 않게 월급이 동결되길 바라느냐" 등 주 군를 지속적으로 회유 및 협박하여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었다. 주 군이 이 댓가로 받은 것은 한 시간치의 야근 수당, 그라운드 원 관리국 행정부 지정 2042년 기준 9,160원인 최저 시급에 50%인 4,580원을 더 한 13,740원이었다. 법에 의해 구제되지 못할 때의 약자는, 이처럼 비참하게 빼앗긴다.


그러한 착취는 비단 한 명만이 가담하는 것이 아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곧 같은 회사의 관리부장 김 하나(3■세)는 물론 주 군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어야 할 동료이자 펜릴 소대 소대장인 김 점례(■■■세, 힐데로 개명)마저 행렬에 가담했다. 이들은 작전 상의 편의 등을 명목으로 수 차례 주 군에게 접근하였다. 그 뒤를 이어 개미가 땅에 떨어진 사탕에 이끌리듯 레나 맥켄지(2■세) 양이, 클로에 스타시커(2■세) 양이 다가왔다. 목적은 언제나 주 군의 성이었다. 


주 군의 증인으로서 법정에 선 Y 양은 "선배가 견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항상 눈을 감고 다니고, 갑자기 '어이쿠'라며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제발 선배를 구해 달라" 며 간곡히 요청했다. Y 양이 법원에 제출했던 탄원서의 서툰 글씨체로 빼곡하게 쓰인 문장 중에서 소대장 김 점례양이 ""주한이처럼 되고 싶으냐", "연화 보러 가고 싶냐"며 그를 협박하는 장면을 수 차례 목격하였으나 신고하면 선배가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으로 시작된 관계였을 것이다. 출근 때 건넨 인사, 다이브가 끝나고 나눈 격려와 인정, 회식 자리에서의 담화들이 차분하게 쌓이고 쌓여 좋은 관계로 발전되었더라면 그들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이브라는 작업이 갖는 극한의 위험성이, 그러한 일 때문에 생긴 감정적인 동요가, 그로 인하여 누군가 넘은 선 때문에 관계의 1막은 비극으로 끝났고 착취라는 이름의 2막이 열렸다. 어쩌면 드라마였을 장르는 범죄극으로 돌변하였다.


법원이 해야 할 일은 연극을 폐관하고 연기에 심취한 배우들을 해산시켜 그들의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명줄을 손에 쥔 사람을 너무도 쉽게 용서하기에 법은 착취당하는 사람에게 손을 빌려줘 빼앗긴 삶을 피해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김살을 펴고 달라붙은 먼지와 얼룩을 씻어서.

- 람다 스파타리 저 "와일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