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아이의 습격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분명 예측하지 못한것은 아니었으나 성체 별의 아이 1개체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고, 오르카의 병력은 그것의 힘 앞에 무력하게 쓰러져 나갔다


만에 정박한 함대는 거대한 몸체가 휘두른 공격과 그 몸체에서 생성된 함선급 크기의 분열 개체에 의해 단숨에 궤멸되었으며, 육지를 사수하는 병력마저 상륙하는 보행형 개체들로 인해 실시간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캐노니어와 둠 브링어, 아머드 메이든의 화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수의 반수생 괴물들이 밀려들어와 죽은 놈의 빈자리를 채워나갔고, 내가 있는 지휘 초소로 향하는 방어벽 조차 뚫려나갔다

오르카 호에 탑승할 기회마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난 이것이 최후의 결전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고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전투 기술을 써서 놈들과 싸웠다




곰치의 머리통을 한 분열 개체 놈이 작살을 들고 달려들자 난 단분자 도끼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고, 산성 타액 뱉는 끈적한 양서류 한놈은 내 대구경 권총의 단발 사격에 의해 몸이 뚫려 죽었다 
6m 높이의 커다란 4족 보행 괴물이 가시가 달린 6개의 촉수 손을 휘둘렀지만 놈은 곧 모든 손이 잘렸고, 놈의 뱃가죽 마저 도끼날에 갈라져 내장이 튀어나왔다

날아다니는 새 같은 놈 여럿이 부리로 찌르거나 발톱으로 할퀴려고 했지만 전부 한손에 목히 잡혀 꺾이거나 도끼에 베이고, 총에 맞는 등 유효타를 내지 못했다


리리스는 내 뒤에서 무수한 사격으로 놈들의 몸을 꿰뚫었고 프리가 역시 방패의 칼날과 주먹으로 놈들의 시체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죽을 각오로 싸운다고 한들 적의 수는 무한할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압도적인 물량에 파묻힐 거라는 것을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때, 여럿 별의 아의 분열 개체를 제치고 단 하나의 적만이 내 앞에 서있음을 발견했다

인간의 외형을 흉내내었으나 4개의 눈과 두꺼운, 갑각 매끈한 비늘, 손 대신 집게발과 촉수 다발이 달린 이질적인 모습은 매우 혐오스러우면서도 큰 두려움을 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그 별의 아이의 본체라는 것을 파악했고 그것이 나를 1 : 1 결투로 쓰러뜨리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떠한 바이오로이드나 AGS도 보이지 않는다

리가와 리리스도 쓰러졌는지 더 이상 내 눈에 잡히지 않고 사방엔 별의 아이의 분열체들 뿐이다


나는 탄환이 다 떨어진 권총을 버리고 단분자 도끼를 꽉 쥐었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싸울힘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고 싶었다

나와 놈의 본체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놈의 집게발과 도끼가 부딪혔다
난 최대한 놈의 빈틈을 찾아 도끼날을 밀어넣으려고 했지만 놈의 집게발과 굵은 촉수다발은 나의 공격을 쉽사리 쳐냈고, 오히려 그럴때마다 내쪽의 균형이 무너져 결정타를 허용할 위기를 내었다


그러나 죽기 전 마지막 행운이 작용한 것일까 그때마다 놈은 그때마다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내지 못했다

마치 스스로 제약을 거는 것처럼, 놈은 나를 쉽게 끝내지 못했고 나는 다시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놈의 빈틈을 찾아 도끼를 휘두를려는 동작을 취했을때, 촉수 다발이 그것을 막기위해 들어올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페인트였고 나는 놈의 몸통 대신 집게발을 노렸다

커다란 손이 형광색의 액체를 뿜으며 잘려나갔고 당황한 놈은 촉수다발로 재빨리 방어하려했지만 나는 왼손으로 그것을 붙들었다

촉수의 압력에 의해 내 손이 찌그러지고 터져나갔지만 이 절호의 기회는 내 왼손을 희생해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내가 여기서 패배해 쓰러질라도 놈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주고 끝내리라

그렇게 내 도끼가 놈의 몸을 두동강 내기 직전

시간이 멈췄다




아니, 시간은 그대로였지만 내 몸의 움직임은 정지되었고 놈의 열린 가슴팍에서 나온 커다란 가시가 내 흉부를 뚫고 지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놈이 촉수가 달린 팔을 움직이자 완전히 망가져 버린 내 손이 팔목과 함께 팔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앞으로 쓰러졌다 

온몽에서 힘이 빠지고 폐가 점점 무거워짐을 느낀다

놈은 애초에 날 간단히 죽일수 있음에도 그저 즐길 생각으로 나와 겨룬것이고 지금에서야 놈이 유흥을 끝마쳤음을 깨달았다

씁쓸한 웃음을 짓는 채로 내눈은 감겼고, 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인류의 재건, 바이오로이드의 행복, 새로운 시대.... 이젠 아무 의미 없겠지


이것으로 난 죽는다
아니, 죽었을거라 생각했다










난 깨어났다

사방이 빛으로 이루어진 이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이곳이 사후세계인가?

허나 그렇다기엔 주변의 빛줄기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생전의 죄를 심판한다는 재판관도, 선인을 올려보낸다는 천사와 악인을 떨어뜨린다는 악마도 없다


지옥인지 천국인지 구분조차 안되는 이곳은 대체 어디고 난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영문 조차 모른채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거대한 빛의 구체가 내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둥그런 테두리가 없는 빛의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조금씩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인간의 모습을 한 빛의 거인의 내 앞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거인은 내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양손에 들린 빛이 덩어리는 분명히 내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나는 거인의 한쪽 손을 보았다


밝은 빛으로 뭉친 구체에선 오르카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별의 아이의 습격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복장은 먼지가 탄듯 매우 더러워져 있었고 피폐해진 얼굴은 그들의 죽음의 고비에서 간신히 살아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였다


보기힘든 광경이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의 복장이나 외형이 아닌 그들의 태도였다


슬픔에 잠긴 바이오로이드들은 병상에 있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왼팔과 양다리가 사라지고 아랫배가 뻥 뚫린채 간신히 사람의 형체를 유지한 남자는 심장의 박동이 잦아들며 죽음의 문턱에 거의 근접한 상태였다



그를 이제 보내줘야한다는 것

바이오로이드들은 머리로는 그것을 알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듯 매우 구슬프게 울었다
일부 바이오로이드들은 통곡하다 못해 그자리에서 실신했다
그가 죽으면 사망선고를 내릴 닥터는 말없이 그의 손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선 굵은 물줄기가 그칠줄을 몰랐다




심장을 포함 대부분의 내장이 파열되었고 과다출혈 및 산소 공급의 문제로 인한 대뇌 기능의 손실되었으므로 저 남자가 죽을것은 명백하다 

어떠한 기적으로 인해 남자가 살아남는다고 한들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갈것이며 기대 수명은 고작 몇년에 불과하다

의학에 대한 어떠한 지식이 없었음에도 내 육신이 대한 정보가 비내리듯 쏟아졌다


그저 죽지만 않은 상태로 망가진 몸을 이끌며 삶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치말아야 하는, 딱 그런 자에게 딱 어울리는 몸처럼 보였다




나는 거인은 다른 쪽 손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빛으로 뭉친 구체에는 한 남자가 죽기전에 느꼈던 모든 감정이 담겨있었다




첫번째는 "후회"였다



그가 최후의 인류이자 바이오로이드들의 지도자라는 분에 넘치는 직책을 맡았던 것에 대한 후회

차라리 그가 아니라 다른 인간이었다면, 혹은 그가 이 자리를 아예 맡지 않았더라면, 오르카의 대원들은 헛되게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했고 다시 되돌아간다면 절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의미없는 되뇌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두번째는 "분노"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분노

5년의 시간동안 그가 할 수 있은 이것 외에도 많이 있었다

아예 거점을 다른곳으로 옮겨 철충에만 힘을 쏟을수도 있었고 펙스와 동맹을 채결하여 상대해야하는 적을 한정할수도 있었으며 처음부터 병력 불리기에 집중해 철충에 본격적으로 대항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르카의 대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쳤고 그렇게 그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던 바이오로이드들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는 이기적이며, 무능력한 주제에 허영심에 들어찬 자신을 대한 끝없는 분노를 내뿜었고 그것은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는 "죄책감" 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삶의 기로가 있었음에도 그녀들을 강제로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복원이라는 명목하에 원래라면 겪지 않았을 고통스러운 삶을 불어넣었다

그가 최선이고 다른 방법은 없으며 자신이야 말로 그들이 바라는 이상향으로 이끌 구세주라고 믿게 만들었고 그런 허황된 믿음이 넘쳐나는 상황을 즐겼다


오르카의 대원들에게 했던 약속들과 맹세는 이제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그들의 비명과 고통에 찬 신음만의 그의 귓가에 맴돌 뿐이다


그는 절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것이고, 할수있다면 스스로를 죄악의 구덩이에 처넣아 다시는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네번째는 "슬픔"이었다

그가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소중한 추억들은 전부 사라졌으며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리라

그가 꿈꾸던 세계는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떠나갔거나 그렇지 않았던 바이오로이드들은 영원히 그를 원망하고 증오할 것이며 그는 역사에 최초의 인류이자 최악의 인류로 이름을 남길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끉임없는 비통에 잠겼고 거기서 헤어나올줄을 몰랐다





이 모든 감정은 단단히 응축되었었으나 내가 영원히 잠들기를 원한다면 그대로 소멸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

보잘것 없는 하나의 인간이 그의 짐을 내버리고 달아나는 선택을 한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는 영원한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빛의 거인은 여전히 말이 없다


하지만 두 개의 운명중 반드시 하나를 택해야한다는 그의 의도는 설명이 불필요했고 난 그것을 멈출 힘이 없었다



짧고 비천한 삶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며 남은 시간동안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를 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저지른 모든것을 내팽개치고 안식에 들 것인가



눈앞이 흐려지며 가슴이 답답하다

무엇이 되었든 빨리 택하고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공지 이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