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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츄얼 유튜버. 줄여서 버튜버.


2010년 후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엔터테이먼트 사업에 커다란 광풍이 불었다.


인터넷 방송은 2000년대 중후반에도 있던, 아주 오래된 문화이자 레드 오션으로 접어드는 시장이었음에도 아직도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듯 새로운 자식을 낳았다.


그것이 바로 버튜버. 버츄얼 스트리머다.


기존에는 캠으로 얼굴을 보이고 사람들과 소통했으나 여기엔 몇 가지 단점이 존재했다.


첫째는 얼굴을 만인에게 보여주어야한다는 부담감이오, 둘째는 그렇게 보인 얼굴이나 몸으로 각종 성희롱이나 인격모독을 자주 받는다는 점이오, 셋째는 방이나 사생활이 일부 보인다는 것을 토대로 스토킹을 하는 미친놈들이 있었음이다.


물론 캠따윈 ㅈ까라 하며 그림 판때기로만 방송을 진행하거나, 그냥 목소리만 사용해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주류는 아니었다.


당시에 인터넷 방송계의 주된 흐름은 방송인이라면 캠을 까고 얼굴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림만 띡하니 올려두고 방송하는 사람, 얼굴까진 보이기 싫어 목 아래만 캠을 켜놓는 사람, 아예 목소리만 내보내는 사람을 통칭 ‘듀라한’이라고 불렀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방송인들이 치졸하다며 조롱할 목적으로 머리가 없는 듀라한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림에 불과할 2D 캐릭터에 표정을 넣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 얼굴이 아닌 이상 ‘듀라한’이라며 욕먹는 일은 변함 없었으나, 그래도 인방을 보던 시청자들은 보다 실감나는 방송인의 리액션에 만족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술이 더 발전해 표정인식 기술을 이용한 프로그램이 속속히 생겨나자, 보다 다양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가진 캐릭터들로 방송하는 방송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3D 기술과 접목하더니…


“버츄얼 유튜버가 탄생하게 되었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굳이 아는 척 뽐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이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사내는 더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키즈나 아이를 기점으로 버츄얼 유튜버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지요. 말 그대로 특이점입니다. 애초에 ‘버츄얼 유튜버’, 통칭 버튜버란 명칭을 만들어낸 것도 그녀이니까요.”

“그렇죠.”


“그 뒤론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더랬죠. 홀로라이브라던가, 니지산지 같은 기업이 생겨나고 그들 말고도 수많은 개인세, 기업세 버튜버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죠. 버츄얼 모델이란 도구를 사용해서요.”

“….”


“그러나 아시겠지만 코로나 따위완 비교도 되지 않는 전지구적인 재앙이 벌어진 덕에 버튜버 산업이고 뭐고, 다 쫄딱 망해버렸잖아요? 항공도, 금융도, 엔터도, 토목도. 전부 다요.”


그는 이를 리셋이자, 일확천금의 기회라고 표현했다.


“리셋이라 표현할 수밖에요. 세상은 그 전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달라졌으니까요.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의 도래는 기득권을 더는 기득권이 아니게 만들고, 그들이 움켜쥐고 있던 온갖 특혜, 부, 권력은 소용없게 되어버렸잖아요?”

“세상이 아예 달라져버렸죠.”


“기존의 질서가 사라졌으니 온갖 혼란이 발생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몰락한 기득권을 짓밟아 세계 정상이 될 기회가요!”


열변을 토하는 주먹은 그 당시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듯 강하게 쥐여있었다. 과거의 흥분을 잊지 못하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붉어져있었다.


“기존 시장이 전부 사라졌으나, 그들이 쌓아올린 노하우만 잘 이용한다면 정상을 노리는 건 아침밥 먹기 전!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대격변은 지금의 저희, ‘세카이 라이브’를 정상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내 눈 앞에서 본인 회사의 성공 일화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내는, 현재 버튜버 시장을 선두하는 기업 ‘세카이 라이브’의 사장. 후지이 켄지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세카이 라이브’에서 데뷔하게 된 건 둘도 없는 행운이라 말할 수 있겠군요. 한 상(さん).”

“뭐. 저도 이보다 더 행운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켄지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웃었다. 유튜브 등지에서 떠돌아다니는,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미소였다.


“사실 저희에게도 한 상이 합류한 일은 행운이에요. 마침, 저희가 새로운 기획을 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적합한 사람이 두발로 찾아오다니! 이게 운명이 아니라면 뭘까요?”

“아하하. 어쩌면 진짜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적절히 켄지로를 띄워주자 더욱 신이 난 켄지로는 크게 소리쳤다.


“운명! 그래요. 운명이네요! 저희가 만나게 된 건 진짜로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운명은 분명! 저희를 새로운 산의 정상으로 데려다 주겠죠. 절대로 넘볼 수 없는, 버튜버 업계의 정점이란 정상에 말입니다!!!”

“하하하.”


켄지로와 대화를 나눈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익숙하지 않다.


좋게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람. 조금 사회적인 표현을 하자면, 야망이 큰 사람. 보다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머리에 꽃밭이 가득한 멍청이.

세계 1위의 버튜버 회사의 사장 후지이 켄지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청년이나 어린 소년이었으면 별 신경을 쓰지 않겠으나, 아쉽게도 그는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의 아저씨다. 알 거 다 아는 아저씨가 열정을 부르짖으며 흥분에 토하는 꼴은 빈말로도 괜찮다 말하기 힘들었다.


“한 상. 버튜버는 즐겨 보신다고 하셨나요?”

“네. 옛날부터 조금씩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버튜버 데뷔의 국룰은, 기수제란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알다마다.


“한 상은 총 4명의 동기와 함께 데뷔하시게 될 거에요. 그리고 이번 기수는 숫자로 세는 정식 넘버링이 아니라, 조금 독특한 이름을 가질 겁니다. 혹시 감이 오시나요?”

“……저를 등용하신 이유라 함은, 분명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네요.”


“등용이라뇨. 삼국지를 많이 보셨나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혹시 저랑 동년배이신가요? 하하하!”

“서류 상에 나이는 거짓없이 기입했습니다만.”


“알고 있죠. 당연히 농담입니다!”


그렇게 웃긴가?


켄지로는 그 뒤로도 5분 동안 내리 웃음을 멈추지 않았기에, 나는 기침을 통해 그의 주목을 환기시켰다.


“아차차. 죄송합니다. 제가 개그를 좋아해서 말이죠. 한 상, 혹시 일본의 만담 좋아하시나요?”

“제 동기와 그룹에 대한 이야기 중이셨습니다만.”


“아! 그랬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번 그룹은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데뷔할 예정입니다. 물론 어느 기수나 다 톡톡튀는 개성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은 전례없는 특이 컨셉이에요. 그건 바로…”


어느 예능처럼 말에 뜸을 들이는 화법에 복창이 터져나갈 지경이었으나 그래도 내가 앞으로 속할 회사의 사장이란 생각을 되뇌이며 참아냈다.


“마법소녀 컨셉입니다! 마법소녀 버튜버의 탄생이죠!”

“…….”


그럴 줄은 알았다만.


역시나 다시 들어도 어이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