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투모로우즈'라는 튀르키예의 SF소설은 먼 미래의 인류가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된 외계인에게 패배하고 이들에게 온갖 기괴한 형태의 다양한 종으로 마개조된 이야기를 담고 있음

이 세계관의 인류는 거대한 코끼리같은 생명체, 지렁이처럼 생긴 생명체, 돌고래처럼 생긴 생명체, 심지어 식물이나 단세포생물에 가까운 형태로 개조된 케이스 등 정말 오만가지 모습들로 변이당했고, 이런 기괴한 형상들이 일러스트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있기에 잘 모르고 봤다간 불쾌한 골짜기에 시달릴 수 있음

그 수많은 미래인류들 중 내가 제일 인상적으로 느꼈던 둘이 있어

이 인류의 이름은 '리자드 허더'임

생명공학 기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쳐진 수많은 동족들과 달리 이들은 외형적 면은 개조당하지 않은 대신 뇌구조에 인위적인 영향이 가해져 학습능력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함

실상 겉모습만 인류와 비슷한 짐승이 되어버린 셈이지

그런데 이들의 세계엔 오래전 인류가 지구에서 데려온 거대한 초식성 파충류(아마 이구아나로 추정)들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이 멍청한 인류가 본능적으로 이들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도마뱀 치는 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렇게 다시금 인류의 위대한 발자취를 이어나가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되던 리자드 허더들은

거짓말같이 자신들의 애완 도마뱀들에게 인류의 위치를 빼앗기며 오히려 그들의 가축이 되어버리고 말았지

행성의 환경적 영향으로 도마뱀들이 오히려 리자드 허더들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발전하던 와중 오래전 인류의 잔해들을 발견하며 '사우로사피엔트'라는 종으로 거듭나게 된 거야

어떻게 보면 혹성탈출 신 시리즈 세계관의 인류와 비슷한 말로를 겪게 된 셈임

내가 소개할 또 다른 인류는 이 리자드 허더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존재임

인간 영양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맨텔로프'들은 그 이름처럼 인간을 네발 초식동물처럼 뒤틀어놓은 생명체임

맨텔로프의 가장 큰 특징은 두가지야

첫번째는 살아있는 악기 내지 녹음기의 역할을 위해 개조된 존재라는 점

그리고 두번째는 짐승같은 형상의 신체구조에 인간으로써의 지성은 그대로 남겨져있다는 점이지

죄다 지성을 상실한 짐승이 되버린 판국에 왜 이들만 지성을 유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맨텔로프들이 '녹음기'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단 언급을 보면 아마 그만큼의 지성을 일부러 남겨두고 개조된 것 아닐까 싶어



때문에 맨텔로프들은 인류가 어떤 꼴을 맞이했는지 전부 알고 기억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에 불과했지

그저 모두가 떠난 들판 위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절망감과 짐승의 육체에 갇혀있단 걸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단 기분에 그들의 주인이 원한 목적대로 울음소리를 내며 초원 위를 헤매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일 뿐

결국 그로 인한 만성적 우울증으로 더 빨리 야위고 죽어간 개체들보다 훨씬 멍청한 개체들만 점차 살아남아가면서 맨텔로프들은 조용히 지성을 상실해갔다는 이야기...



유독 이 두 인류의 이야기가 와닿았던 이유는 저 둘의 사례가 서로 극과 극이라고 할 만큼 상반적인 경우이기도 하고, 통상적으로도 제일 꺼림칙한 사례들이라 그랬던 것 같아

인간의 모습은 유지했으나 영혼과 지성을 상실해 짐승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리자드 허더들,

인간의 영혼과 지성은 유지했으나 그것을 활용할 만한 육체가 뒤틀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그저 울부짖기만 하다 그 지성마저 사라져간 맨텔로프들,

이 둘 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 같음

올 투모로우즈에는 이 둘 외에도 수많은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다양한 미래 인류들과 장대한 역사가 담겨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나무위키에 풀 번역되어있는 원본을 읽어보길 추천함

앙기모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