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거짓말이야.'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누가봐도 잘 빠진 여자애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계속 무시할거에요?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말 걸고 있는데?"


얼굴이 못생겼더라면, 아니 평범하게만 생겼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는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0cc에 불과한 내 뇌 용량으론, 생판 모르는 여고생이 나한테 리트리버마냥 호감을 표시하는 이유를 긍정적으로 납득 할 수 없었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떠올려봤다. 신천지인가? 꽃뱀인가? 나를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하려는 범죄 조직의 미끼인가? FBI가 나를 주시하고 있나? 외계인인가? 아주 어렸을때 헤어진 소꿉친구인가? 암살자인가? 귀신인가?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보나?


아니면, 그냥 특이 취향을 가졌을 수도 있지 않은가? 


"..."


헛소리. 그것은 망상이다. 차라리 외계인이라는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 공상과 현실을 구분할 감각은 가지고 있다.


차라리 내가 미쳐서 헛것을 본다거나, 귀신이라는게 말이 된다. 평생 나 좋다는 여자애는 초등학교때 하마를 닮은 뚱녀밖에 없었다.


따돌리려고 걸음을 빨리했지만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숨도 차지 않은 채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요? 카페 가서 얘기라도 하자니까요?"


아, 제발!


나는 냅다 달렸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관절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나는 단신임에도 달리기가 꽤 빨랐다. 중학생까지는 운동회 계주도 몇번 해 봤다. 가장 기록이 좋을 때는 6초 후반을 찍기도 했다.


그때보다 느려졌더라도 7초때, 아무리 그래도 8초때는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왠만큼 운동하지 않은 여자라면 못 따라온다. 절대로!


근데! 이 여자애는! 왜! 이렇게! 빨라!


"흐아악.."


"왜 이렇게 뛰어다녀요? 조깅 좋아해요? 나랑 아침마다 매일 운동할래요? 모닝콜 해 줄게요."


더 달렸다가는 관절도 무리가 갈 것 같았고, 어자피 따돌리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벤치에 앉아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땀 좀 봐. 물 마실래요? 손수건도 있어요."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 뭐야, 전화번호 교환하자구요? 갑자기 적극적이시네?"


"거기 경찰이죠?"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경찰에 연락을 하고서야 그 여자를 떼어낼 수 있었다.


혹시나 집으로 따라올까봐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들어왔다. 그러니 아마 들키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모르겠다.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경찰을 부르자 한순간에 일그러지는 표정과 집요한 눈빛에는 표독스러움마저 묻어있었다.


그러한 광증을 가진 여자가 고작 내 집도 못 찾지는 않을것 같았다.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이닥쳐 날 제압하고 강간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가, 얼른 지워 버렸다. 자괴감이 몰려올번 했지만, 자신들도 이제는 날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는지 잠깐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사라졌다.


현실에서 여자를 만난지 너무 오래되서 그렇다.  여자뿐일까. 동성 친구를 만난지도 꽤 오래됐다. 학창 시절. 그때가 그리웠다.


소위 잘 나가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나도 친구가 있었다. 별다른 일정 없이도 또래들이 한 공간에 모이고, 반나절을 같이 생활하며 부대끼는 상황에서는 어지간한 찐따가 아닌 이상 혼자이기가 더 힘들 것이다.


'이제는 의미 없지.'


졸업한지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서는 다 떨어져 나갔다. 학교라는 접착제가 없으니 굳이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만나고 싶지도 않고.'


엠생 백수로 사는데 누굴 왜 만나고 싶겠는가. 다들 일을 하던 대학을 다니던 군대를 가건 했을텐데. 현재의 내 몰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잘 오지도 않아서 그냥 나도 안하고 있다. 내가 놓으면 끊어질 관계라면 굳이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으리라.


그래도 가끔은 외롭다. 사람이라는건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도.. 예쁘긴 했지.


"닥쳐! 헛소리 하지 마 인마!"


나는 보노보노의 성대모사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이 씨발.. 씨발 갈보같은 년이.. 씨발 갈보 같은 년이. 창년이. 가슴도 작은게. 개 같은 년. 씨발년.. 좆 같은 년.."


모니터에만 빛이 들어온 어두컴컴한 방에 한 여자가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을 씹고 있었다.


목이 다 늘어난 헐렁한 검은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모니터링 헤드폰을 쓰고 있다.


움푹 들어간 눈가와 정글소년 모글리가 누나라고 부를것 같은 산발머리는 그녀의 직업을 가장 잘 설명해 주었다.


백수. 그리고 폐인.


"씨발.. 씨발.."


틱 장애처럼 규칙적으로 뱉어내는 욕설은 그녀가 결코 정신적으로도 정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건데.. 내가 침 발라놨는데..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내가 항상 보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내거야. 건들지 마. 건들지 마 이 개같은 년아!"


그녀는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러버렸다.


게이밍 체어의 등받이를 젖히고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별안간 입을 다물었다.


"그래.. 씨끄러운 여자는 미움받으니까 조용히 해야지. 우리 집에 놀러 올 수도 있으니까, 헤헷. 쓰레기도 좀 치우고.."


그녀는 언제 비명을 질렀냐는 듯 웃으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은 크고 까만 봉지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었고, 그도 모자라서 일회용 인스턴트 식품의 잔해나 배달 음식 포장지들이 방바닥을 매우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불결한 액체들도 말라붙은채 갈라진 것이 아무래도 바퀴벌레를 룸메이트로 받을 요량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함께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쓰레기들을 주워 커다란 봉투에 넣고 잘 묶는다.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 덩어리들은 잘 쌓아서 무너지지 않게 한다. 절대로 내다 버릴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렇게 어지럽던 방을 다 치운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산처럼 쌓인 커다란 쓰레기 봉투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헤헤. 이제 놀러와도 돼.. 정리 잘했다고 칭찬해 줄거야.."


-타다다다다닥 타탁


그리고는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아 빠르게 무언가를 입력했다.


더러운 방과는 대비되게 잘 관리된 청축 기계식 키보드는 화려한 RGB 조명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뺏기면 안되니까.. 내가 먼저.. 이제는 용기를 내야.."


-탈칵!


마지막으로 엔터키를 입력해 무언가를 전송한 그녀는, 다시 다리를 떨며 손톱을 씹기 시작했다.


...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심장만 놔두고 나만 땅으로 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미친.."


나는 스크롤을 주르륵 내렸다.


파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가장 최근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닥쳐! 헛소리 하지 마 인마!


싸구려 노트북의 마이크로 열화되어 녹음되어 있었지만, 누가 들어도 그건 내 목소리였다.


쿠궁, 하고 산맥이 뒤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파일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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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씨발.. 이거 내가 쓴 글이잖아?"


글 하나를 클릭했다.


본인 유치원때는 산란플이 꼴렸었음

추천 1  비추천 0  댓글 19  조회수 484  작성일 2024-05-01 18:42:22


쥬니어네이버에서 마망 거북이가 해변으로 나와서 알 낳는 그런 게임 있었는데


거북 뷰지에서 알 나오는거 보고 개꼴렸었음


이게 원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태 책이나 다큐 같은거 보면서도 임신, 출산, 산란 이런거 보면 꼴리더라


다른 취향도 많아졌지만 지금도 이건 꾸준히 꼴림.. 아주 좋아


그래서 영상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인녀가 출산하면서 똥 지리는 영상을 봤는데 그거 보고 스캇도 잠깐 생겼었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짐


근데 그거 검색기록 엄마랑 엄마 친구한테 걸림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가 초등학생 언제였는데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에 ㄹㅇ 자살 생각했었음


한숨과 동시에 눈을 감으면서 미간을 짚는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정도면 심부이 평균 맞지? 맞다고 해줘


"이런 미친.. 어떤 미친 새끼가.."


욕설에 담긴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공포였다.


"누가.. 대체 누가.. 어떻게.."


절망은 심연으로 떨어졌고, 더한 불안이 수면으로 부상했다.


"설마. 지금도?"


마우스가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실행하더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나와의 채팅으로 들어갔다.


컴퓨터에서 저장하고 휴대폰으로 전송해 둔 야짤들이 한가득이었다.


채팅창에 글자가 입력되기 시작했다.


-공원 벤치로 나와. 지금 당장.


이 시간에?


"미친새끼.. 미친년.. 씨발 주여!!!!"


-안오면 뿌릴거야 이 기록들은 나만 보고 싶으니까. 꼭 나와.


"으아아.."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사람이 너무 절망에 빠지면 절규도 나오지 않는 것을 처음 알았다. 좆됐다. 진짜 좆됐다. 내 좆됨감지 센서가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거 인터넷에 공개되면 자살로도 해결을 못 한다. 노무현 이상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파급력을 가지게 될 거다. 기왕 이따위로 사는거 죽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 해보긴 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절대로 사절이다.


죽어도 최소한 20년동안은 조리돌림 당할거다. 다음날 3차대전이 일어나도 저거 보고 비웃는 새끼들은 분명 있을거라고. 이거 국내 커뮤니티에서 안 끝난다. 레딧이고 4ch이고 외계인 커뮤니티에서도 조리돌림 당할것이 분명하다.


-얽ㅋㅋㅋㅋㅋㅋ 지구에 사는 인간새끼 8년동안 인터넷에 싼 이상성욕 똥글들 박제당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신새끼 빵빠르삥뽕 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부터 외계인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와 근데 프로토스한테 박고 싶다는 글도 있네. 나 로하나인데 이새끼들 멸망시킴 ㅅㄱ


-나는 ET. 인류를 찾아 지구에 왔다. 근데 뭐냐 이 병신은. 어떤 병신이 인터넷에 이딴 글 썻다가 박제당했냐. 하.하.하.


내 존엄은, 내 존엄은!


낮에 봤던 그 미친년이 분명하다.  눈깔 돌아간거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10분 줄게. 바로 와.


씨이바알!!!!


나는 급히 옷가지를 주워 입고 뛰쳐나갔다.


달려나가면서 나는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어디까지 내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아마도.. 전부.'


최소한 컴퓨터에 입력, 저장된 모든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그건 모르겠다. 파일 중 가장 오래된 것을 확인해봤으면 알 수 있었을텐데, 정황이 없어서 못 봤다.


하지만 스크롤의 길이로 봐서 결코 최근에서야 지켜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미친 척 했던 혼잣말들과 상황극, 지어 보였던 온갖 우스꽝스러운 표정, 떨었던 꼴깝들.


그걸 생각하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내가 어찌 알겠는가. 뭐 해킹했거나 했겠지. 이제 와서는 그 방법이 중요한게 아니다.


'해결 방안은?'


그년 죽이고 광명 찾자! 자동으로 업로드가 되게 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희망을 걸어보아야 한다. 일단 죽이고, 감옥을 가든 자살을 하든 하자.


어찌 되었던 나의 존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경찰도, 법원은 물론이고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초법적 제재 수단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 여기에 도박을 걸어보아야 한다.


골목길을 돌자 내가 자주 가던 벤치가 보였다. 공원에 벤치가 하나는 아니지만, 나를 그 정도로 지켜보던 년이 벤치라고 했으면 아마 여기밖에 더 있겠는가.


오늘 달리다 앉았던 곳도 우연히 이곳이었다.


"오, 왔네요?"


나는 그년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냅다 패대기쳤다.


"꺄악! 이러지 마세요!"


순간 쿵 하고 무언가가 내 심장을 때렸다. 


바닥에 엎어진 그녀, 아니 그년의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엄습한다. 차마 못 때리겠다. 대신 욕설을 내뱉는다.


"너, 너 이 미친년아!"


"하읏, 저 쉬운 여자 아니에요. 벌써부터 자빠뜨릴 생각이에요!"


-짝!


아오 시발, 그 말은 취소다. 이 개같은 년. 넌 오늘 진짜로 뒤졌다.


나는 이 개같은 년을 뒤지게 패기 시작했다. 인간을 향해 처음 표출해 보는 물리적 폭력. 연애시장에서 압도적 위치에 있을 높은 가치의 여자를 짓밟고 있다는 원초적 쾌감과 우월감에 젖는것도 잠시.


"헉! 헉!"


극심한 흥분으로 산소가 가빠오고 손발이 저려온다.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그년의 머리를 붙잡아 올렸다.


"너 이 개 같은 년아. 내가인터넷에쓴좆같은이상성욕똥글야짤사생활침해개같은년아!"


"왜 그랬어. 아니, 안 궁금해. 너 당장 그거 전부 지워."


"헤에엣.. SM플레이, 최고.."


이 미친년,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진게 정상이 아니다.


나는 신발의 앞코로 아랫배를 걷어찼다.


"우웁.. 이러다간 나,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렷.. 주인님, 제발 그만해 주세요.."


입이 웃고 있잖아 이 미친 계집아!


"근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그런거 모르는데. 인터넷에 '좆같은이상성욕똥글야짤' 올렸어요?"


"그랬어요?"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린다. 마치 아이의 거짓말을 간파한 엄마가 귀엽다는 듯이,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고 밝히며 농락하려는 듯한 표정이다.


이.. 이 씨발련 배를 움켜잡은 상태로도 웃고 있다. 분명히 모르는척 하는 거다. 아마 별로 아프지도 않을거다.


걷어차는 순간 알았다. 나는 절대로 이년을 이길 수 없다. 그저 맞아주고 있을 뿐이라는걸, 단단한 복부의 반탄력이 말해주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는 눈꼬리 사이로 언뜻 여우 한마리가 겹쳐 보였다 사라졌다. 발가벗겨진채로 절벽 끝자락에서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이 씨발련.. 너 진짜.."


쓰러진 미친년의 멱살을 붙잡고 때리지도, 놓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주먹을 쥐고 있던 찰나.


"어, 아아.."


지나가던 가슴 큰 여자랑 눈이 마주쳤다. 


'좆됐네..'


그녀의 표정은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그 이거.. 그거에요. SM 플레이. 막 때리고 맞고 하면서 즐기는. 합의 하에."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예?"


임산부 배를 막 때렸어요! 미친 계집애가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나오라고 했지. 다른 여자랑. 놀고 있으랬어?"


뚝뚝 끊어 말하는 음절이 서늘하다. 


"예, 예?"

"난 그런거 시킨적 없는데."

"그게 무슨.."

"말 안 들었으니까. 뿌릴거야. 너 도촬한거. 너가 쓴 글들. 전부."

"예?"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누르는가 싶더니 보란듯 내밀었다.


"올렸어."


디씨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제목 : 7년동안 좋아하는 남자애 도촬한 기록 뿌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내 세상이.


착각의 대가로는.


무너졌다.


너무 컷다.


...


얼음 송곳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잘 꾸며진 넓은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전부 지워."


"예, 마이스터."


감히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허리를 굽혀 응답한 여자가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기별을 넣는다.


'귀엽게들 노는군'


그래도, 아주 망가져 버리면 안되니까. 지금은 개입해야 했다.


'''아주 귀여워'''

...


푸흡, 그녀가 웃는다.


"이제 어쩔래?"


음침하게 생긴 주제에 생글생글 웃는게 얄밉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너..너였어? 쟤가 아니라?"

"응, 나였어. 쟤가 아니라. 근데 쟤는 누구야? 숨겨둔 여친? 아닌데? 그런건 못 봤는데?"


미친년이 배를 붙잡은 채 끙끙거리며 외쳤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


"그 전에, 넌 누군데? 왜 나를 감시한거야?"


"질문은 내가 해. 아직 신상 정보는 안 뿌렸어. 그러면 너인지 아무도 몰라."


'아직은 희망이 있어.'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닥치고 대답하라는 압박이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몰라. 어제부터 나 따라다니는 미친년이야. 네가 부른 장소로 나왔는데 쟤만 있길래 패고 있던거야. 쟤가 그런 줄 알고."

"존댓말."

"..."

"뿌린다?"

"..네"


네라고 대답하자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진다. 별로 다르지 않은 미친년인것 같은데 이거. 


-애애애앵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떨어진 심장도 없는 것 같다. 뒷목을 잡는다는 것은 이럴때나 쓰던 표현이었구나. 누가 뒤통수를 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순찰 국룰 조합인 젊은 여경과 중년 남경이 차에서 내렸다.


"헤에엑.. 살려주세요.. 저 남자가 갑자기 막 때렸어요.. 저 임산부인데.. 막 배를 걷어찼어요.. 저 여자도 같이 막 때렸어요"


"아이고, 이대남이 또.."


늙은 남경 놈이 혀를 끌끌 찼다.


여경의 부축을 받는 사이로 미친년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 의미로 좆된것 같다.


...


나와 도촬녀는 경찰서에 도착해서 조사를 받았다. 아니 받을 뻔 했다.


무언가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담당 형사가 질린 표정으로 들어와 우리를 내보냈으니까.


영문을 모르겠다. 겁만 주려고 그랬나? 마음이 바뀐건 아닌것 같은데.


나 깜빵 넣으려고 작정한 미친년이 굳이 내 사정을 봐주었겠는가.


그 와중에 도촬녀는 차에서부터 너무 덜덜 떨어서 조금 불쌍했다.


"야, 넌 너무 쫄지 마. 더한 짓도 했으면서. 그리고 나만 때렸잖아."

"응, 으응.."


그 뒤로는 존댓말 하라는 말은 안해서 편했다. 안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런 고압적인 태도는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음침하게 쭈그린 모습이 본 모습 같았다.


경찰서를 나오니 상쾌한 새벽 공기가 느껴졌다. 여름이었다, 시발.


도촬음침거유녀는 내 손을 잡아끌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며칠을 안 감은건지 모를 머리에서 암내가 훅 끼쳐 왔다.


"싫어. 나 피곤해. 집에 가서 잘거야."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가,서 자면 되잖아."

"싫어. 너 무서워. 약 타서 나 기절시키고 따먹을 것 같애."

"너.. 너 신상. 뿌려도 돼?"

"어 뿌려. 그냥 죽어버리게."


"..."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어자피 나 사는곳도 다 알고 있잖아. 일어나서 연락 할테니까 너도 집에 가."


이제서야 생각났다. 난, 여자에 약했다.


그래서 나 좋다고 몇년을 따라다닌 가슴 큰 여자를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못했다. 이미 약점이 잡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그럴듯한 변명도 있었다.


그래도 진짜로 누군지도 모르는 범죄녀 집에 따라가거나, '집에 데려다 줄까?' 하는 식의 언행은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나는 침대에 누웠다.


더 생각하기엔 겪은 일이 너무 많았다.


...


"으으.."


너무 오래 잔 것 같다. 잠에 취해서 머리가 멍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키고 창문을 열었다. 더운 공기가 훅 끼쳐 온다.


여름밤의 붉은 황혼 사이로 땅거미가 막 내려앉고 있었다. 남아있는 태양의 잔재가 후진 도시의 풍광을 비추고 있었다.


비척거리며 물을 들이키고는 컴퓨터를 부팅했다.


카카오톡을 확인하자 채팅이 미친듯이 와 있었다.


-

-

-

-언제 일어나?

-아직도 자?

-나 기다리고 있어

-빨리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서 보자며

-잠수타는거야?

-찾아간다?

-도망친건 아니지?

-

-

-


그 외에도 문자들이 미친듯이 와 있었다. 다른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그 외로 온 연락은 없았다.


얘도 참 징하다고 생각하는 그때였다.


-이제 일어났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뭐, 컴퓨터 전원 켜진걸로 알았겠지. 얘한테는 이제 다 내려놨다. 이미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으니까.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보다 나를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커뮤니티에 쌌던 온갖 이상성욕을 담은 똥글들을 제외하고도 나는 많은 글을 써 왔다. 단순한 일기부터, 꿈에 대한 것, 사회와 인간, 세상에 대한 방구석 개똥철학, 준비했던 웹소설들..


좋게 말하면 백수고, 정말 좋게 포장해준다면 작가 지망 예비 준비생쯤 되는 폐인. 그게 나였다.


대부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왔던 나기에 그걸 다 보고 있었다면 이미 숨길 것은 없다. 몸이 투명한 동굴속 생물이 된 기분이다. 적어도 내가 나에게 솔직했던 만큼은, 녀석에게 솔직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걸 다 보고도 나를 찾았다면,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아가밥통도 많이 컸지.'


-ㅇㅇ 일어남

-넌 카카오톡 없어? 왜 나와의 메세지로 보내는거야


-추적당해


누구한테 추적당한단 말인가. 국정원? FBI? 모사드?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난 이미 발가벗겨진 처녀다. 누가 되었건 내 치부를 빌미로 협박한다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한다.


지금은 정신이 이상하고 머리를 감지 않을지언정, 밥통 오지는 여자애가 그 목줄을 잡고 있다는 점에 감사할 때였다.


-나와


장소는 굳이, 말할 필요 없었다.


...


벤치에 앉아 있자 그녀가 다가왔다. 머리는 또 안 감았구나.


설마 내가 그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 안녕.."


적당히 인사를 받아준 뒤 옆에 앉게 했다.


"언제부터야? 나 감시하기 시작한게."

"감시가 아,니라.. 관찰..  헤헷.."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얘, 한번씩 말을 더듬는다. 하긴 음침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속성이긴 하지.


"곤충 카페 정모 후기 글에서 너 보고 나서부터. 그때부터 계속 봤어. 그 전에 쓴 글들도 전부."


그때는 정말 순수하던 시절, 곤충 글밖에 없던 시기다. 아마 중학생이었나 그랬을텐데.


"그 사진 한 장만 보고? 왜? 외모가 특출난 것도 아닌데."


"처음, 에는 그냥 호기심. 근데 염탐하다보니까 재미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슨 경험을 하며 살았는지 궁금해져서, 지금까지 계속 봤어."


"그러면 그 처음 정모 글은 어떻게 보게 된거야? 커뮤니티 내부 검색 아니면 나오지도 않을텐데."


"인터넷이 취미였으니까.. 그리고 나도 관심사가 다양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거든.. 그러다 눈에 띄었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감시는 어떻게 했는데?"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한마디로 하면 해킹.. 컴퓨터랑 휴대폰."


"cctv는?"


"그건 폐쇄 회로라 구조적으로 안돼.. 내가 못하는건 아니고.."


"그럼 왜 지금껏 지켜보기만 하다 이제서야 나온건데?"


"으음.. 모르겠어. 그냥 직감.. 지금쯤 접촉해야 한다고.. 여자의 감이.."


머리나 감고 좀 그런 소리를 하지.


정리하자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내 사진을 발견했는데, 그걸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신상조사를 하다가 도감청을 포함한 감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애로 망가도 이것보다는 개연성이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 되게 수상한거 알지?"


"으,응.. 그럴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잠시 머뭇더리더니 큰 결심을 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돌핀 팬츠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그, 근데. 니가 뭘 어쩔건데. 너,너 좋아하는거 나밖에 없잖아. 8년동안 너 사이버 스토킹,한 왕가슴 음침녀가 너 좋다는데 니,가 뭐 어쩔건데. 너너너 인터넷에 쓴 글들 누구한테 보여, 줄 수 있어? 그거 보면 다 도망갈걸? 그거 보고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야. 나밖에 없어.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건 나라고.


근데 네가 뭘 어쩔건데? 니가 쓴 '보닌쟝 성적 취향 총,정리 2023'에 가슴 큰 음침녀한테 집착당하기도 있었잖아. 그런데 니가  나 내,냅다 따먹어서 임신,시키는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집에, 갈거지?"


"응."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초여름의 밤 공기는 기분이 좋았고, 찌르르 우는 풀벌레들은 마음을 몽글거리게 했다.


폐부가 가볍고 기분좋은 무언가로 가득 차서 이 손을 놓으면 몸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문 앞에 서자 그 순간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차가운 현관문이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우리는 지금, 서로의 동정을 떼러 간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돌리는 그녀의 손길이 앞으로 일어날 행위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 안에 들어서자 커다란 쓰레기 봉투들이 산처럼 쌓인 것이 보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그리고 이미 나는 극도로 흥분해 있어서,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그녀를 덮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 수 없는 냄새가 훅 풍겨 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둘다 가벼운 옷차림이었던 탓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밀어 쓰러뜨렸다.


-스읍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묵직한 향이 비강으로 밀려들었다. 낯선 타인의 체취, 그러나 결코 싫지만은 않은.


주인의 머리와 함께 세탁이 좀 필요해 보이는 이불에는 여자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녀가 어색하게 M자로 벌린 다리를 강제로 벌렸다.


"아아아.."


생각보다 유연성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상관 없다. 이제 늘어나게 될거니까.


그녀의 음부는 굳이 전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자 호흡에 맞추어 몸이 움찔거린다. 민감한 치부로 내 숨결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같은 사람의 몸이라고 해서 같은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다.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와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고, 허벅지 사이에서 나는 냄새와 가슴골에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


고기도 부위마다 식감과 맛이 다르듯 사람도 똑같다. 사람을 어떻게 고기에 비유하냐고? 알게 뭔가. 먹기 좋게 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건 고기나 사람이나 똑같은데.


잘 차려진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요리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무방비한 여자를 따먹지 않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니다.


내 시선은 겨드랑이에서 내려와 가슴을 향했다.


다시 봐도 참 실한 밥통이다. 가슴은 찌머 정도가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사람이라 그런지 그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충분히 폭력적인 사이즈다. 어쩌면 먼 조상중에 젖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만 봐도 가끔은 오히려 작은 것이 편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큰 가슴을 실물로 보니 정신적으로 압박당하는 기분이다.


이런 못된 가슴은 좀 혼이 나봐야 한다.


양가슴을 찌그려뜨려 깊은 계곡을 만든 뒤 다시 코를 파뭍고 숨을 들이켰다.


"쓰으읍.. 하아.."


진한 암컷의 향기가 날 것 그대로 폐부를 적신다. 냄새 분자 하나하나가 뇌 주름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후우.."


내 밑에 깔린 여자를 바라본다.


기대와 흥분,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물든 표정.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감정과 그 표현 방식.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는 2차원의 여자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감.


'이게 섹스지'


아플 정도로 피가 쏠린 하물을 털이 수북한 음부에 밀어 넣었다.


'생각보다 아래, 생각보다 아래..'


언젠가 커뮤니티 첫경험 썰에서 본 내용을 떠올렸다. 귀두의 감각으로 보건데, 여기가 맞는 모양이다.


그녀의 전신이 고통으로 수축되는 것이 느껴진다. 윽, 하는 작은 신음도 터져 나온다. 밀어 넣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끝까지 삽입한 뒤에는 잠시 기다렸다.


한 AV 배우가 유튜브에 출연해 처음에는 아프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1~2분 정도 기다리면 질이 맞춰진다고 했다.


하지만 1초 1초가 한시간 같은 지금 내게는 그 정도의 인내심이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준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이었다.


어둑한 여름의 밤, 도시의 가장 으슥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음침한 어린 남녀 둘이 겹쳐진다.


서로의 배꼽이 맞닿고 입술마저 포개어지는 순간, 나는 마지막 이성마저 잃어버리고 눈 앞에 놓인 여체를 거칠게 탐했다.


사랑스러운 애무나 기술적인 체위는 없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직 미친듯이 흔들어댔던 허리와 사정의 강렬한 쾌감, 짐승처럼 울부짖는 암컷의 교성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자 나는 그녀의 아가밥통에 엎드려 있었다. 마지막 한발을 장렬하게 쥐어짜낸 뒤 그 상태로 기절해 잠든 모양이었다. 종일 그렇게 잔 모양인데, 무겁지도 않았나.


자신을 압박하던 체중이 사라지자 허전함을 느낀 듯 곧 그녀도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전날 밤의 여운으로 서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기에, 정신이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


물 있어?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갈라지고 마른 성대에서 나온 말은 한 음절 뿐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수병 하나를 꺼내 마시며 다가왔다. 생수병을 건내 받을 것을 기대하고 손을 내밀었으나 그녀는 대뜸 깍지를 껴 버리더니 입을 맞췄다.


입술 사이로 타액과 섞인 미적지근한 물이 들어왔다. 반 정도는 몸에 흘린것 같았지만, 내 정신을 들게 만드는데는 충분했다. 그녀의 두 눈이 물었다.


'더 줘?'


나도 대답했다.


'더 줘.'


세상에서 가장 단 물을 나눠 마시고 나서 우리는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앞뒤 가리지 않았던 격렬했던 첫날밤의 후유증으로 아랫도리가 욱씬거렸기 때문이다.


흥분이 가시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얘 이름이 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