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많이들 올라오는 비교놀이.


감옥에 5년 다녀오는 대신 10억을 주겠다느니

군대를 대신 가는데, 혹은 다시 가는데 얼마면 되겠냐느니

원치않는 이성, 혹은 동성과 잠자리를 가지는데 얼마를 받아야 하겠다느니

중동 석유재벌의 발가락을 빨면 돈을 주는데 할거냐느니


종류는 다양하고 많지만 

속 뜻은 단 하나다.


"너의 자존심은 얼마니?"


...

다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명확한 금액이 있는가?


누군가는 3만원에 발가락을 빤다 하더라도, 10억을 받아도 군대는 못간다고 한다.

이 사람은 그냥 3만원에 자신의 자존심을 판 것 뿐이다.


누군가는 그정도 돈으로는 못한다고 그런다.

이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을 허접한 가격에 다행이도 팔지 않았을 뿐이다.


전자가 멍청한 놈이고

후자가 똑똑한 놈인가?


글쎄,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저런 질문에 생각을 하고 대답을 하는 순간

당사자는 받지도 않은 돈에 자신의 자존심을 판 것 뿐이다.

10억이든 1만원이든, 돈 한푼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당신의 자존심은 이미 팔려서 비참하게 찢겨져 나갔을 뿐이다.


어느 누구한테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너 자신이 이미 있지도 않은 돈에 당신의 자존심을 내놓았다.


돈 줄 사람은 없는데 판다고 내놓은 사람만 많으니

얼마나 바보같고 멍청한 일인가?


그냥, 이런 질문은 무시하는게 좋다.


자존심이 밥먹여주느냐

돈으로 못사는게 어디있느냐

이런 이야기를 부정하는게 아니다.


월급쟁이는 다들 그러하듯

자영업자는 더욱 더 그러하듯

돈 한푼이 아쉬워서 엄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한다.

돈 10원 하나에 연신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도 많다.


살다보면, 돈도 안되는 일에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갈갈이 찢겨나간 자존심인데

허상같은 돈에 팔아제낄 순 없다.

아쉽다, 화가 난다. 


꼴랑 하찮은 질문으로 독자의 자존심을 들었다 놨다 하려는

글쓴이의 심보가 마음에 들지 않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엔 생각도 하지 말고 대답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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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 니 까. 얼마면 되냐고"


여자는 노란색 돈 한뭉치를 가방에서 꺼낸다.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5만원권 100장 1뭉치.

오백만원.


여자가 옆에 앉은 은행원에게 돈을 건네면

직원이 개수기로 돈을 세어준다.


100장이 확인되면, 그 자리에서 띠지를 묶고 도장을 찍는다.

남자의 앞에 놓아준다.


"아직 부족해? 더 필요해?"


여자가 한뭉치 더 꺼낸다.

개수기가 돌아가고

띠지가 묶이고

도장을 찍는다.


남자의 앞에 한 뭉치 더 쌓인다.


"수표처럼 추적되는거 아냐.

 증여세? 너만 조심하면 조사 나오지도 않아.

 설령 들켜도, 내가 대신 내줄게.

 여기계신 은행원분이 다~아 알아서 해주실거야"


개수기 앞에 있는 직원이 남자에게 웃음을 짓는다.


여자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다시 한뭉치를 꺼내든다.

은행원이 받아서, 개수기를 돌린다. 반복한다.


여자의 옆에는, 한 개에 몇 백리터는 되어보이는 더블백이 한 가득이다.

꽉꽉 들어찬 것이, 밖에서 보아도 확실하다.

얼마가 되려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뉴스에서 보았던, 5만원권 회수율이 30%도 채 못미친다는 이야기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자, 여기 하나더.

 아직 부족하니? 대답 안할꺼야?

 

음... 나도 생각한 금액 적정선이 있고

 적정선보다 더 많은 금액을 준비하긴 했는데...


 뭐, 시간은 많으니까.

 협상을 계속 해보자고"


여자는 꿋꿋하게, 보란듯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방에서 돈을 꺼낸다.

남자의 앞에 은행원이 돈뭉치를 쌓는다.


"저..저는.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남자가 겨우 한 마디 꺼낸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쌓인 수 천만원의 돈도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금액인데.

여자의 옆에 준비된 현찰이 얼마나 될련지...


"알아, 널 돈으로 산다는게 아냐.

 세상에 돈으로 못사는게 얼마나 많은데.


 좋아하는 야구팀 우승도 못사지.

 돈이 많아도 대통령 자리는 못사지.

 건강도 예방은 할 수 있어도, 살 수는 없지.

 수 억을 주어도 지 작품을 안판다는 예술가들도 많지.

 사람도 살 수 없지.

 사람의 목숨도 살 수 없지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없지.


 돈으로 사람 마음이 사질거 같아?

 그거 얼마 안가. 생각보다 사람 마음이 빈약하고 야박해서

 돈으로 산 것 같아도. 금새 딴마음 먹는거 순식간이야.


 그렇더라고, 여기 있는 돈들, 들이부어도 안되는게 참 많더라구"


여자는 다시 은행원에게 한뭉치를 건넨다.

개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저...저는! 이 돈 필요 없어요! 

 얼마를 주신다 그래도, 절 팔지 않을거에요"


남자는 눈을 찔끔 감는다.

자신이 생각해도 멋진 대사를 이 여자 앞에서 내뱉는다.


성공했다.


말 하는데 성공했다.

설령, 저기 있는 가방 속 모든 돈이

자신의 앞에 피라미드처럼 쌓여진다해도, 거절할 것이다.


자신은,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다.


"오...아냐. 널 팔라는게 아니라니까.

난 너를 사려는게 아냐.


내가 말했잖아, 사람은 돈 주고 살 수 있는게 아니라고.


내가 사고싶은건

너의 '자존심'이야"


"네?"


"넌 이미 돈에 자존심을 팔았어.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으면, 여기 앉아있지도 않았겠지

 나한테 그렇게 소리지를 필요도 없었을거고

 꼴랑 한마디 하는데 그렇게 용기를 끌어모을 필요도 없었어.


 그냥, 돈 많고 머리 빈 갑부의 헛소리로 치부하면서

 여길 떠났을거야.


 하지만 넌 지금 여기 앉아있잖아?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여자는 돈을 가방에서 또 꺼낸다.

 드디어 더블백 하나가 비워졌다.

 저 멀리 가방을 집어던지고, 새로운 가방을 낑낑대며 가져온다.

 

 가방을 열자, 다시 5만원권 뭉치가 겹겹이 쌓여있다.

 몇천만원일까? 억일까?

 남자는 금액을 가늠할 수 없다.


"아..아니에요. 저는...절 팔지 않아요"


"하아.. 널 사려는게 아니래도.

 넌 이미 자존심을 팔았어.


 지금 금액이 얼마면 되는지, 얼마까지 할 수 있을지

 네 자존심이 시장가로 얼마가 될지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을 뿐이야.


 여기! 테이블이 모자라네? 하나만 더 가져다 줄래요?"


"네! 잠시만요"


카페 사장이, 한달음에 달려온다.

낑낑대며 사각 테이블을 홀로 번쩍 들어다가, 돈뭉치 옆에 놓아준다.


"고마워요. 이거는...감사의 표시에요.

 아, 커피도 한잔. 더 부탁드려요.

 여기 참 맛있네요"


여자는 사장에게 가방 속의 돈뭉치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애용하는 명품 가방에서 내지가 들은 돈봉투를 하나 꺼낸다.

양 손으로, 사장에게 인사를 하며 건넨다.


팁이란건, 금액이 중요한게 아니다.


소래포구 횟집에서 격 떨어지는 아저씨들이 하는 짓거리가 있다.

만원짜리 두세개나 던져주면서 지들이 앉은 테이블 잘 봐달라고 그런다.

그리고선 스끼다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저렴한 우럭회 하나 서비스로 나오지 않는다느니

점원이 웃지를 않고 미모가 곱상하지 않다느니

온갖 진상을 다 부린다.


당연한 이야기다.

건네준 3만원은 성의가 아니다.

금액이 작아서가 아니라, 건네주는 마음과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성의가 있는게 팁이고 감사의 표시다.


"감사합니다. 가져다 드릴게요"


카페 사장은 꾸벅 인사를 한다.

건네주는 돈봉투를 열어서 확인하는 몰상식한 짓거리도 하지 않는다.

고객의 성의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바르게 집어넣고

지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스 커피를 준비하러 떠난다.


설령, 저 봉투 안에 들은 돈이 꼴랑 5만원 한장일지라도

카페사장은, 최선을 다해 손님을 접대할 것이다.


물론, 금액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섭섭하지 않도록 넣어드렸다.


"어머, 내 정신좀 봐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여자는 다시 돈뭉치를 꺼내기 시작한다.

개수기가 돌아가고, 도장이 찍히고,

새로운 테이블에 현찰 피라미드의 기초가 다져진다.


"그래, 맞다. 자존심. 

나는 너의 자존심을 사려는거야"


"..."


남자는 말 문이 막힌다.

할 말이 없는게 아니라.

여자의 말을 반박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준비해온 총알은 많아.

 내 인내심도 넉넉해.

 하찮은 가격에 너의 자존심을 사려는 것도 아니야.


 나도,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진 잘 모르겠어.

 어느 시점에 멈출진, 네가 정하는거야.

 

자, 협상을 계속하자"


여자는, 아니.

은행원이 계속해서 피라미드를 쌓는다.


여자는 사장이 건네준 물티슈로 손을 닦고

지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커피를 홀짝인다.


"감사합니다."

웃음으로 사장에게 인사를 한다.


여자의 말대로, 남자는 이미 자존심을 팔았다.

그저, 지금 앞에 쌓인 피라미드보다

뒤에 넘치는 더블백들이 더욱 커보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금액을 가져올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멈추고 자신의 자존심을 파는게 이득이지 않을까

아니면 최대한 돈을 당기기위해 여자에게 허세를 부려야 할까.


과연, 여자의 인내심은 어디까지고

자신이 가진 자존심의 시장 적정가는 얼마일지

마음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쁠 뿐이다.


"아직도. 부족해?"


여자가 다음 가방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