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개념글 모음


“족장의…애인이야.”


“뭐?”


귀쟁이년의 주둥아리에서 튀어나온 실로 놀라운 발언.


그 발언은 이 몸이 예측했던 수 많은 경우의 수를 한 순간에 쓰레기통에 박아버린 그런 발언이었다.


“난 분명히 말했어, 믿고 안 믿고는 당신 재량이라고.”


“…”


발언 한 당사자도 어처구니 없어 하는 걸로 보아, 이 몸을 농락하겠다고 거짓을 고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족장과 시장 사이의 정치 싸움이 아닌 치정 싸움에 끼어든 꼴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고작 ‘길드 허가서’ 도장 하나 찍겠다고 지랄을 피워댄 이유로는 말문이 막힐 노릇.


물론, 머리 한 켠으론 아주 이해 못 할 사안은 아니다.


종종 바람피웠다는 이유로 오장육부에 칼침을 박는 사례도 있었고,


사랑으로도 현실의 장벽을 넘지 못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이렇듯, 사랑에 미치면 눈에 뵈는게 없다는 이론에 의하면 이번 사건도 그러한 맥락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이유가 없는 건 아냐. 이번 건은 정치적 사유와 개인 사유가 반씩 섞여 있으니까.”


“그 부분을 자세히 말하도록.”


“난 족장의 개인사는 몰라. 하지만, 당대표로서 정치적 사유를 말하자면…그래. 엘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지.”


“엘프를 다시 위대하게?”


“엘벤스라움. 대륙 태초의 종족으로서 열등족에게 빼앗긴 고토를 되찾는다….”


세상에 도태되는 엘프들의 열등감이 자아낸 사상이라는 이름의 괴물, ‘엘벤스라움’.


그저 광기로 가득 찬 위험천만한 괴물을 다시 들은 순간, 당시 고블린년과 나눈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잘 들어, 대륙은 태초의 종족인 엘프의 땅이야. 너희 열등종들이 허락없이 무단 점거 한 거라고!”


“호오? 창조주에게 땅문서라도 받은 것 마냥 떠드는군.”


“하! 비아냥 거리던 말던, 우리는 엄연히 우리의 권리를 되 찾을 뿐. 그리고, 그 수단으로 전쟁을 시작했지.”


“전쟁이라? 그 일환으로 정치인 납치로 무정부 사태를 야기하여 혼란을 유도하려는건가?”


“훗! 그런 야만한 생각은 너희 열등종들이나 할 법한 생각아니야?”


말꼬리를 맺는 동시에 양 입의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린 당대표년.


조소로 가득한 그 입꼬리는 그래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역겨움으로 가득찼다.


“오토 체이스, 전쟁이란 말이지…체스와 같아. 킹을 쓰러트리면 이기는 게임이야. 나머지 기물이 얼마나 남던간에 상관없이 말이야.”


“흠, 그래서?”


“그런데, 킹을 잡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킹을 수호하는 폰과 나이트, 그리고 비숍, 퀸과 같은 기물들을 쓰러트려야 할까?”


“당연한거 아닌가?”


“아니, 전혀 그럴 필요 없어! 킹을 수호하는 그들을…흑색에서 백색으로 물들이면 손 쉽게 잡을 수 있으니까!”


“…내부에 배신자를 양성하려는게 너희의 목적이었군.”


“맞아. 정치권을 우리의 색채로 물들여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바치게 만든다…그것이 엘벤스라움의 궁극적인 방향이야.”


내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를 무너트린다.


어떻게보면 저 귀쟁이새끼들이 선택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엔 귀쟁이 녀석들의 쪽수가 부족하니까.


저 년의 비유한 체스로 따져도, 16대16의 싸움이 아닌 1대16의 싸움일태니까.


그리고, 귀쟁이년들이 추구하는 방식은 머릿 속에서 누군가를 연상하게 만들었으니…


‘스칼렛, 그 년의 방식과 비슷하다. 기괴한 우연이군.’


그렇다.


흡사, 신임 마왕인 스칼렛년이 개인과외라도 해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호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 접근했어. 동시에, 뒤편으로 ‘막대한 이익’ 을 약속해서 그들을 꼬드겼지.”


“막대한 이익이라?”


“오리하르콘, 미스릴…엘프의 숲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수 광물들의 채굴권을 약속했어. 그리고 놀랍게도 단 한명도 빠짐없이 다 물더라고.”


그럴 만도 하다.


고작 꼬맹이 주먹만한 크기로 성인 남성의 몸무게만한 금과 맞 바꿀 수 있는 희귀 광물들이니까.


또한 그런 광물들이니, 뒷 돈 챙기기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눈 뒤집혀서 달려드는 건 보지않아도 뻔 한 일이다.


“물론! 채굴권을 약속 한 거지. 채굴에 필요한 자금은 그들이 해결 할 몫이었어. 그래도…제안을 한 이상 끝까지 도와주는게 우호관계 아니겠어?”


“그런 이유로 네 년들이 부려먹는 사채업자들과 연결 시킨건가?”


“정답이야. 그리고 있잖아? 이건, 당신에게만 말해주는건데…”


“흐음?”


“사실, 채굴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채취는 아무나 할 수 없거든? 엘프의 숲에서 나오는 모든 광물은 오직, 엘프만 채취할 수 있으니까.”


정말 악독한 녀석들이다.


엄연히 따지면 허위매물로 사기친게 아닌가?


참으로 부엽토 썩은내가 괜히 나는게 아닌 족속들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망할 수 밖에 없지! 경영권을 담보로, 입법권을 담보로, 급기야 본인의 자리까지 담보로 하면서 땡겼지만 말이야~”


“…그래서 이러한 일들을 외부에 공론화 하려는 자들을 입 막음 차원으로 납치 한 건가?”


“그래,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의 색채로 물들인 기물을 배치했지. 하나씩 하나씩…킹이 적으로 둘러 쌓일 정도로 말이야.”


이 대화를 진행하면서 느낀 소감은 단 하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라고.


광기라는 토양에 피어난 잡초는 상정 외로 깊이 뻗어 나갔으며, 그렇게 뻗어나간 뿌리는 주변 식물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제초제라도 뿌려서 박멸 할 수 있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제초제도 필요 없을 지경에 도달했을 것이다.


어떻게보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있잖아? 오토 체이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했을까?”


“뭐라?”


“무슨 이유로 모든 계획을 다 이야기했을까. 당신이 무서워서? 혹은 내기에서 패배했으니까? 아니면…?”


그 때, 이죽거리는 낯색과 함께 영문 모를 질문을 내 던진 당대표년.


보따리에 매달려 대롱대롱 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와 반대로 음흉한 느낌을 풍겨대는게 아이러니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함 뒤에는…


“우리와 손을 잡자.”


도무지 상식의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지? 이 몸이 왜 네 년 따위와 손을 잡아야하나?”


“후후훗! 난 당신에 대해 잘 알고있어. 비단, 힘 뿐만이 아니고 당신의 사정까지 말이지.”


“…”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축출당했잖아? 버러지같은 녀석들에게 배신 당했잖아. 안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네 년이 취업자리라도 알선해 줄 참인가.”


“그러니, 우리와 손을 잡고 같이 왕국을 전복시키자! 당신이 원한다면…그래! 왕국의 통치권을 넘겨줄게.”


정말 세상 일이라는 건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게 사실인가보다.


이젠 살다살다 귀쟁이새끼가 저런 제안을 하는 걸 보면 말이지.


“…”


또한 이 년의 심산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년이 앞선 엘벤스라움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야기를 푼 이유는 이 몸을 회유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귀쟁이년은 이 몸이 왕국과 좋지않은 관계가 된 것을 알고 있기에, 왕국을 전복시키겠다는 계획을 빌미로 협력을 구하겠다는 술수를 짠 것이다.


…동시에, 본인 목숨줄도 보장받을 겸 말이지.


“어때? 나쁘지 않은 조건아냐? 물론, 이걸로도 부족하다면…그래! 소원도 들어줄게. 돈이든 여색이든 그 어떠한 것이던 간에.”


“…”


만일, 이 제안을 다른 이들이 들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손을 잡을 것이다.


왕이고 돈이고 뭐고간에, 내 등에 칼 꽂은 상대에게 복수 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설령 손 잡은 상대가 훗날 내 등에 칼을 꽂을지 언정, 목전에 둔 상대에게 복수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며 손을 잡을 것이다.


아주 당연하게도 말이지.


하지만…


“어이, 귀쟁이년.”


“으응? 왜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는거야? 나름 최선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부족 한 거라도 있어?”


이 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분명, 십중팔구는 개돼지마냥 핵핵거리면서 조건을 받아들였을 사안.


그런데, 유감인 부분은…


“사람이 좆으로 보이는가?”


이 몸은 그런 십중팔구에 속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 년의 제안에 대한 대답은 이걸로 하겠다.”


“응? 무슨 대…”


까아아아아아앙ㅡ!


“머저리같은 년.”


개소리를 지껄이는 귀쟁이년의 뚝배기를 ‘저스티스 후라이팬’ 으로 가감없이 박살 낸 이 몸.


“야마도니까 한 대 더 먹어라.”


까아아아아아앙ㅡ!


이미 개거품 물고 기절한 당대표년에게 응분의 댓가로 한 대 더 먹임으로서, 이 몸의 의지를 뼛속에 관철시켰다.


“아무리 왕국에 칼빵 맞았다고해도, 부엽토 썩은내 나는 년들과 동침따윈 하지 않는다.”


그렇다.


아무리 곤궁한 상황에 쳐해도 돌맹이를 씹어먹지 않는 듯,


아무리 좆같은 상황에 쳐해도 악인과 손을 잡지 않는다.


왜냐고?


그것이 용사니까.


“후우! 아무튼, 모든 사건의 전말은 알게되었다.”


정말 길고도 긴 과정이었다.


비로소 모든 퍼즐 조각을 다 맞춘 이 몸.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맞춰진 퍼즐판을 들고 이 모든 일을 벌인 장본인, 족장의 뚝배기를 박살내는 것 뿐이다.


“…아침해가 떠오르는군. 귀쟁이 담그기 좋은 시간이다.”


발 걸음을 내 딛을 때다.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에 걸쳐있는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를 향해서…


뒤틀린 사상으로 점철 된 세계수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