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메이드…”


“…모집?”


게시판의 절반을 차지 할 정도로 거대한 대자보에 적힌 다섯 글자.


왠지 모르게 눈에 들어온 그 다섯 글자는 이 몸과 여우년을 저절로 게시판 앞까지 인도하게 만들었다.


“아래에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군.”




「메이드 모집 중.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자 엘프의 향도자

   칸틀러 족장의 개인 저택에 근무 할

   건장한 시용인을 모집 합니다.


   나이제한 없음. 오직 순수 하이엘프만.

   4대보험 적용 및 숙식제공.

   타 저택 메이드 대비, 2.5배 임금보장.

   모집 문의는 메이드장에게.」




“…호오, 먹잇감이 제 발로 오다니?”


“참으로 기막힌 우연이로구나.”


말도 안되는 타이밍에 찾아온 상정치 못한 기회.


메이드 모집 공고는 칸틀러에게 어떻게 접근 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한 순간에 종식시킨 제안과도 같았으니…


“용사여, 그대도 짐과 같은 생각이겠지?”


“물론이다. 죽이되던 빵이되던 무조건 해야한다.”


대자보에서 언급하는 메이드의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또한, 무조건 메이드로 선발 되리라 장담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저 기회를 붙잡아야한다.


설령 그 업무가 화장실의 오폐물을 처리하는 일일지라도


설령 메이드장의 구두를 개처럼 핥는 일이 있을지라도


지금 상황에서 찾아온 최적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래. 마왕성에 메이드로 잠입할 때도 온갖 갑질을 견뎠던 몸이다. 고작 귀쟁이새끼들 지랄은 그에 비하면 약과겠지.’


각오를 다지는 동시에 떠오른 그 날의 추억.


차마 마왕년이 듣다간 괜히 꼬리 말고 시무룩해질까봐 말 하지 않았다만, 정말 지랄 같았다.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건 일상이며, 신참 메이드는 걷는 것 조차 용납하지 않았으며


잠시 숨 좀 돌리려고하면 본인들 일을 짬때리는 건 기본이고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부풀려 죄인으로 만들었으니까.


‘후! 그 때 당시 선임 메이드의 아구창을 박살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지.’


하지만, 임무 달성을 위해 하루 수십 번 수백 번이고 인내를 감내했었던 이 몸.


이미 한 번 좆같음을 뼛 속까지 느꼈으니 한 번 더 경험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아니, 그 때의 경험이 있으니 지금은 더 요령껏 대처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저 여우년이 걱정이군. 태생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년이 갑질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렇다.


설령, 마왕성에서 겪은 갑질보다 더 한 갑질을 겪더라도 버틸 수 있다.


모름지기 매도 한 번 맞아본 놈이 잘 맞는 법이니까.


하지만, 저 여우년은 다르다.


저 년도 본인이 찬빵 더운빵 가릴 처지가 아닌 건 잘 알기에 허드렛일이야 잘 버티겠다만, 갑질을 견뎌낼지에 대해선 우려스럽다.


“…여우년, 만약 선임 메이드가 네 년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 어떻게 대처할거지?”


“으흠? 부당한 대우 말이더냐?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게냐.”


“말 그대로 별것도 아닌걸로 지랄하는 걸 의미한다.”


“헤에~ 뭔가 했더니…고민 할 필요도 없구나! 아구창을 박살내면 되지 않겠느냐!”


저 의기양양한 여우년의 표정을 보라.


양 주먹 불끈 쥐고, 본인의 말마따나 거슬리게하면 개박살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포한 저 표정을.


“흠.”


물론, 저 대답이 오답은 아니다.


자신을 좆으로보고 좆같이 대하는 상대에게 좆같은 방법으로 응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다만…


“잘 들어라, 여우년. 인생을 살다보면 때때로 가면을 써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가면…?”


“그래. 특히 이번 일 같은 경우엔 더더욱 써야하지.”


“흐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만…”


말마따나 어느정도 이해한듯한 여우년의 낯색.


하지만, 그 낯색 속에 여전히 아리송함이 남아있는게 조금 더 면밀한 설명이 필요한 걸로 비춰진다.


“예로부터, 대업을 이룰 사람은 때를 감내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감출 줄 알아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 발톱을 목표가 아닌 대상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으흠…”


“이를 우리 상황에 대입하면 우리의 발톱은 최종목적인 칸틀러에게 향해야하되, 하찮은 것들의 시비에 향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


“왜? 그러한 용도로 남발하기엔 아까우니까. 대업을 이룰 사람치곤 까오살지 않으니까.”


“…오호라.”


옅은 안개처럼 미묘하게 보이던 아리송함이 서서히 걷히는 듯한 표정.


이제 남은 건, 여우년의 생각머리가 완전히 개안 할 수 있도록 방점을 찍는 것이다.


“이와같이 앞으로 네 년이 살아가면서 좆같은 일을 겪게 될 시…우선, 두 번정돈 참아라.”


“두 번을 넘으면?”


“그 때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어, 주제도 모르는 초식동물을 찢어버리면 된다.”


“쿠후후…! 인고의 미학이라…이것이 용사의 마음가짐이로구나.”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렇게 여우년의 머리에 훌륭한 용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심어준 이 몸.


물론, 실전의 영역이 남아있기에 조금 더 지켜 볼 필요는 있다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만일 하나 저 여우년의 뚜껑이 열리기라도하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니까.


만일 하나 저 여우년의 뚜겅이 열리기라도 하면, 그 뚜껑을 닫아주는게 이 몸의 일이니까.


.

.

.

.

.


“여기가 면접 장소라고?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공터이지 않는가.”


다음 날, 면접을 보기위해 대자보에 적힌 면접 장소로 찾아간 이 몸과 여우년.


분명 두 번보고 세 번보고 이리저리 묻고 물어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우리가 두 발을 내 딛은 곳은 건물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않는, 그저 황량한 공터였다.


“으음? 용사여, 저~기 거동이 수상해보이는 엘프가 보이는구나.”


“거동이 수상해보이는 귀쟁이?”


그 때, 마왕년의 언질에 시선을 멀리 향한 이 몸.


“…설마 저 귀쟁이년이?”


아스라이 보이는 시선 끝에는 공터 한 켠에 원형 식탁에 앉아, 홍차를 마시는 듯한 왠 귀쟁이가 포착되었다.


대자보에 언급된 메이드장으로 추정되는 귀쟁이년이 말이지.


“가보는게 어떻겠느냐? 설령 면접관이 아닐지라도 저런 기이한 짓을 벌이니 저절로 호기심이 생기는구나.”


“좋다.”


그렇게, 마왕년의 제안에 따라 목표물을 향해 발 걸음을 땐 이 몸.


점점 다가갈수록, 점점 강하게 풍기는 귀쟁이 특유의 스파이시한 냄새를 느끼며,


한 발자국 씩…


한 발자국 씩…


한 발자국 씩…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앞으로 내 딛었다.


부엽토 썩은내보다 더 심한 스파이시한 냄새 때문인지


혹은 저 귀쟁이년이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이유 모를 좆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으흥? 너는…? 아아~ 엘프의 위대한 영도자이자 광명의 횃불이신 칸틀러님을 모시기 위해 면접보러 온 친구구나?”


잠시 후, 후각이 완전히 마비 될 쯤에 목적지에 다다른 이 몸과 여우년.


초면에 대뜸 말 놓는 건 둘 째 치더라도, 온갖 미사여구로 칸틀러를 찬양하는 기이한 흰 머리 귀쟁이년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쩐지 걸어오는 내내 느꼈던 직감이 수상쩍스러웠더니.’


여타 일반 메이드와 다를 바 없는 검은색 롱 원피스에 수수한 흰색 에이프릴을 덧댄 복장.


하지만, 철태 안경 너머로 투영되는 날카로운 눈빛과 표독함으로 점철 된 미소는 이 인물이 녹록치 않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만? 당신이 메이드장입니까?”


“겉보기엔 여리여리한데 늙은이같은 말투네? 으으음~ 뭐, 딱히 상관없나? 어짜피 일만 잘 하면 되니까…그래! 일단 자리에 앉아.”


“…”


자리에 앉으라고 했건만, 의자는 커녕 방석조차 없는 상황에 어떻게 앉으라는 건가?


나름 호의를 배푸는 꼬라지가 무색한 저 년의 언사는 지금부터 면접에 들어갔으니,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는…


“걸을 시간 조차 없는게 메이드인데 어찌 앉을 시간이 있겠습니까?”


“오호라?”


“그리고 이런 면접 볼 시간이면 창문 열 개는 닦았을 겁니다.”


“…훗.”


나름 본인에게 충족 할 만한 만족스러운 답이 되었을까?


한 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린, 비릿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인 메이드장년.


“…우후후후! 재밌는 친구가 들어왔네?”


이윽고,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이 몸에게 다시 시선을 향했다.


“그저 변덕을 부렸을 뿐인데 어쩜 이쁘게 말을 할까? 너, 어디서 메이드 한 경험이라도 있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애미…아니, 부모님 대신 동생을 키우며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으흐흥? 동생이라…아아, 한 발치 뒤에 있던 저 아이가? 확실히 닮긴 닮았네~”


가면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완벽하게 써야하는 법.


이 몸과 여우년은 조실부모한 자매컨샙을 잡기로 사전에 조율했다.


아무래도, 자매라고 해두는 편이 서로 붙어서 다니기도 용이하니까.


“메이드장님, 보수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저희 자매에게 칸틀러님을 위해 봉사 할 기회만 주십시오.”


“으흥?”


“위대한 엘벤스라움을 달성하는 그 날까지 한 몸 다 하여 바치겠습니다.”


“…헤에. 그렇단 말이지?”


메이드장년의 비릿한 미소에 흡족함이 더해지는 그 때.


“우후후후! 좋아. 더 이상 면접 진행 할 필요도 없겠네.”


그 미소는 이정도면 충분히 채용되고도 남을 것이라 확신 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며


“앞으로 기대하도록 할게, 후후후…”


동시에, 목표물을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음을 체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