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 그게 궁금하니?

음. 그러고 보니까 한번도 이야기 해준 적 없는 거 같네.

좋아! 이야기해줄게, 이리 와서 앉아봐. 

 

 

아들놈은 이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는지 

말 꺼내기가 무섭게 식탁에 있던 의자 하나를 빼 와서는 

옆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 빨리해줘요! 예전부터 정말 궁금했어요! ”

 

 

아빠 고향이 충청도인건 알지?

네 엄마를 처음 만날 때가, 아빠가 첫 직장을 구했을 때인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서울 쪽에 직장을 얻었어.

 

 

“ 지금 다니시는 회사가 그 회사인가요? ”

 

 

아니, 지금 회사랑 다른 곳이야.

아무튼 고향을 떠나 멀리 서울로 와서 생활하게 되었지.

첫 직장 생활은 꽤 괜찮았어, 딱 한 가지만 빼면.

회사 사람들도 괜찮았고, 하는 일도 적성에 잘 맞았고.

무엇보다도 사수 형님이 좋은 사람이라서 밑에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지.

그 형님 지금은 뭐 하시나 모르겠네.

 

 

“ 뭐야 그럼 다 좋은 거 아니에요? 그 한 가지가 먼데요? ”

 

 

너무 외로웠어.

20년을 넘게 살아왔던 터전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

직장생활은 아무 문제 없었지만, 퇴근하면 정말 할 게 없더라고.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 친구들은 전부 멀리 떨어져 있고.

집에 들어가면 텅 빈 방이 나를 반겨줬지.

동물 같은걸 키워보려고 했지만,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동호회 같은 걸 들어가기에는 너도 아빠 성격 잘 알지? 

내향적인 내가 거기 들어가서 버티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거 같았어.

 

 

“ 아빠 성격은 저도 잘 알죠. 아빠는 제가 친구들 집에 데려오면 안방으로 숨어버리시잖아요. 그런 성격은 고칠 필요가 있어요. ”

 

 

너도 만만치 않아 이 자식아.

좀 다른 애들 좀 데려와 봐, 맨날 똑같은 애들만 데려오지 말고.

친구가 걔네밖에 없니? 

 

 

“ 아빠보다는 나은 거 같은데요. 아무튼 그래서요? ”

 

 

퇴근하고 집에만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돌아버릴 거 같더라고, 특히 주말에.

산책이라도 할까 해서 밖으로 나가 집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집 뒤쪽 외진 골목길에 바 하나가 있더라고?

간판도 없고 그냥 문에 바라고만 쓰여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야. 

외로움도 잊게, 술을 마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서 들어가 봤지.

내부는 술집 분위기보다는 잘 꾸민 부엌 같았어.

요즘 애들이 말하는 인스타 감성?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지.

 

 

“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우신 거에요. ”

 

 

나 아직 젊다. 말하는데 흐름 끊지 마라. 

술집이라기보다는 그냥 가정집에 들어온 기분이었어.

푸근함이랑 안정감 같은 게 몰려왔지. 마치 고향 집에 내려온 기분이랄까? 

바텐더도 푸근하게 생겼더라고, 가게에 들어온 나를 반기며 뭘 마실 거냐고 물어봤지.

하지만 나는 술은 소주랑 맥주밖에 몰랐던 사람이라서,

그냥 이런 곳은 처음인데 초심자는 뭐가 좋냐고 물어봤더니.

그럼 딱 적당한 게 있다면서 뭔가를 이것저것 섞으면서 한잔 말아주더라고.

술 이름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맛은 지금까지도 기억이나.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시큼했지.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어.

분위기 때문인지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게 그때 그 술이야.

그렇게 직장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바로 가곤 했지.

 

 

“ 그거 알코올 의존 증상 아니에요? ”

 

 

자꾸 말하는데 흐름 끊을래?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하고 바에 가서 바텐더가 추천하는 술을 한 잔 시키고 핸드폰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가게로 손님이 한명 들어오더라고?

지금까지 가게에 손님은 나 혼자서만 있던 경우가 많아서 좀 의아했지.

 

 

“ 오. 드디어 여성분이 등장하는 건가요. ”

 

 

맞아. 가게로 들어온 건 내 나이 때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어.

그 사람도 내가 가게 있는 걸 보고는 놀란 눈치인 거 같더라고.

바텐더가 맨날 새벽 시간 때에 오시던 분이 오늘은 빨리 오셨다면서 그 사람을 접대했지.

아마 새벽에 나처럼 혼자 바에 와서 술을 마시던 분이 아니었을까?

 

 

그 여성분은 내 옆에 앉아서는, 바텐더에게 술을 추천해달라고 했지.

바텐더는 나랑 똑같은 술을 내오더라고, 그 여자 손님은 내 술잔을 보고서는,

여기에서 혼자 술 마시는걸 즐기냐고 물어봤어.

맞다고 대답하니까, 역시 예상하던 대로 자기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이 사람도 나처럼 고향을 떠나 멀리 서울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던 사람이더라고.

우리는 통하는 정말 많았어. 가치관이나, 취향, 성격, 심지어는 아까 내가 핸드폰으로 보고 있었던 마이너한 영화까지 봤다고 했지. 본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려운 영화였는데 말이야.

 

 

“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네요? ”

 

 

진짜 좋았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에 취하는지도 모르고. 

시계를 보니까 벌써 12시가 훌쩍 넘어갔더라고.

그 사람은 자기는 이제 가봐야 한다면서 마시던 술잔을 원샷 때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지.

 

 

“ 당연히 붙잡았겠죠? ”

 

 

아니. 처음에는 아니었어.

그렇게 몇시간 동안 신나게 대화해놓고서는 용기가 안 나더라고.

그 사람도 내가 붙잡아 주기만을 기다렸던 걸까?

천천히. 그것도 아주 천천히 가게 밖으로 나가더라고.

하지만 병신 같았던 나는 그 사람이 가게 밖에 나갈 때까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어.

 

 

“ 아니 대체 왜요?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죠? ”

 

 

결국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거 하나 못하냐고 나 자신을 자책했지.

그때 바텐더가 술잔 하나를 나한테 건네더라고.

이거는 자기가 공짜로 주는 거라면서, 빨리 원샷하라고 했어.

보다 못한 바텐더가 이거 마시고 정신을 차려서 빨리 밖으로 나가 그 사람을 붙잡으라고 하는 거 같았지.

 

 

“ 히야! 바텐더 아저씨 뭘 좀 아시네! 그래서요? ”

 

 

재빠르게 술잔을 받아서 원샷을 때렸고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말이야.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다리가 휘청거리더라고?

 

 

“ 네? 아니 갑자기 왜요! 취한 거에요? ”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정말 이상했어.

결국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렸어.

기어서라도 그 사람에게 가려고 몸을 문 쪽으로 움직였는데.

바텐더가 나를 도와주려는 건지 선반 너머 내 쪽으로 넘어오더라고.

 

 

“ 그렇죠! 바텐더 아저씨! 도와주셔야죠! ”

 

 

나를 부축 해주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문 쪽으로 가서는 문을 잠가 버리더라고.

 

 

“ 네? 문을 잠가요? 왜요? 도와주는 게 아니었어요? ”

 

 

그러고는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는 쌓인 게 많았는지.

울분 같은 걸 토하더라고.

 

 

저 여자보다 자기랑 함께한 시간이 더 많은데, 왜 오늘 처음 본 저 여자한테 마음이 끌리는 거냐면서 내 옷을 벗기더라고. 자기랑 단둘이 있을 때는 자기가 말 걸어도 대답도 단답식이나 건성으로 대답해주면서, 왜 저 여자한테는 모든 걸 다 말해주냐고. 자기랑 있을 때는 핸드폰만 하면서 왜 저 여자랑은 대화가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오냐고 하더라고.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가게를 접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오픈후 첫 손님으로 가게에 들어왔을 때 자기가 얼마나 기뻤는지 넌 모를 거야 라면서 나를 강간해버렸어.

 

 

“ 아빠... 그러면 아빠가 치질로 고생하는 이유가 이 일 때문이에요...? 그 아저씨한테 당해버려서...? ”

 

 

아까부터 무슨 소리니. 바텐더 아저씨가 아니라 바텐더 아가씨인데.

 

 

“ 가게에서 나간 그 여성분이 구출하러 와주는 거 아니었어요? ”

 

 

아닌데. 그때 그 바텐더가 지금 네 엄마인데.

 

 

“ 아니 왜 결혼하셨어요. 강간당했다면서요. ”

 

 

왜냐면 그때 기분 좋았거든 아주.

이래서 내가 그동안 이야기 안 해준 거야. 들어보니까 어떠니?

 

 

“ ..... ”

“ 저도 어른 되자마자 인적 드문 바 찾아다닐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