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개념글 모음


“후! 매 번 할 때마다 느낀다만…좆이 떨어지는 건 좆같은 기분만 들게 하는군.”


‘시장 납치 사건’ 의 종지부를 찍고자 사전 준비에 나선 이 몸.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소중한 것도 포기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용사의 각오를 품고, 마법공구를 통해 여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가위로 싹둑하는 방법을 통해 여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쿠후후! 정말 몰라 볼 정도로 달라졌구나.”


“당연하지 않겠나? 어설픈 분장으론 적을 기만 할 수 없으니까.”


마왕년의 말마따나, 지금 이 몸은 금발 벽안에 여리여리한 아리따운 깐프 소녀가 된 상태.


거울이 없어 자세히 알 순 없지만, 마왕년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비슷해진 것으로 보아 대략 145cm 정도의 작은 체구로 바뀐 듯하다.


“혹자, 진정한 사나이들은 소녀가 되고싶다 한다더니…용사여, 그대 역시 그런 부류인게냐?”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지금도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바람이 스칠 때 마다 좆같은 기분만 드니까.”


“쿠후후! 좆이 없는데 어떻게 좆같은 기분이 드는게냐?”


“병신 같은 년…아무튼, 변장도 마쳤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렇게, 병신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마왕년에게 쿠사리를 먹인 후 또 다시 4차원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한 이 몸.


“…체구가 작아져서 그런지 물건 꺼내는 것도 힘들군.”


고사리같은 손을 이리저리 오물거리며, 이윽고 필요한 물품을 꺼내들었다.


“후우! 네년은 이 머리띠를 착용하도록.”


“오호? 이 머리띠에도 마력이 느껴지는구나. 그래, 왜곡 마법이로군.”


“정확하게 맞췄다. 주변의 마력 기류를 왜곡시켜 상대방의 시야를 속이는 머리띠지.”


“…헌데, 용사여.”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내, 머리띠 한 구석에 박힌 마왕성 로고를 보고 의아함을 표출하는 마왕년.


이 몸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어처구니 없음이 역력히 드러났으니.


“이것도 마왕성에서 훔친게냐? 마왕성 연구소의 품질인증 마크가 박혀있다만?”


“눈치 하난 빠른 년이군.”


“도대체 수 십차례의 마왕성 침공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장물들을 갈취한게냐?”


“네 년이 상상, 그 이상으로 챙겼다.”


“…”


그렇다.


이 몸이 굳이 마왕성을 수십 번이고 방문한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는가?


향간에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용사가 마왕을 사랑해서 마왕성에 빵 먹듯이 간다’ 라던지 ‘이미 살림 차림 차렸다’ 라던지


여기서 더 나아가 ‘마왕은 용사의 아이를 임신했다!!!’ 라는 괴소문이 퍼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유는 오직 단 하나.


4차원 주머니를 비롯한 값비싼 마법 공구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무료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단코, 세상에서 떠도는 풍문처럼…


고작 빵쪼가리 하나로 즐거워 하는, 단순하면서도 세상물정 어둡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할 정도로 순진무구한 여우년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라 두 번 강조하지만, 절대로 아니다.


이 몸의 눈에 흙이 들어가는 그 날 까지, 저 여우년을 이성으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용사여, 아까부터 짐의 용안을 보고 무슨 혼잣말을 지껄이는게냐?”


“흐음?”


“혹시 화장실이 마려운거면 속 터놓고 말하게나. 짐이 꽃 따는 방법을 친히 알려 줄 터이니.”


같은 말을 세 번 강조하지만, 결코 없을 것이다.


“병신 같은 년…이제 네 년도 어엿한 귀쟁이로 보일태니까 진입하는데엔 문제 없을 것이다.”


“흐응~ 그렇군. 귀에 간섭 생기는게 살짝 거슬린다만 문제는 없네.”


“좋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저 앞은 호랑이굴이나 다름 없으니까.”


비로소 모든 준비를 마친 이 몸과 여우년.


눈 앞에 펼쳐진 울창한 숲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품고 발걸음을 땠다.


광기로 점철 된 미지의 땅으로.


길고 복잡했던, 여정의 마지막 끝 자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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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후후…! 수풀 너머에 이정도로 거대한 마을이 있었다니.”


“닫힌 사회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괴리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빼곡히 자리잡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계선을 넘어 도착한 엘프의 본거지.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오직 나무와 덩쿨로 이용해서 만들어진 건축물들.


울퉁불퉁한 재각기 모양이 다른 돌덩이들로 구축된 비포장도로.


그리고, 유동 인구 사이에 섞여 돌아다니는 야생동물들.


마력 가로등,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 도로와 같은 대륙 문명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광경들이었다.


‘자연의 수호자’ 라는 이명에 걸맞는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그런 모습을 말이지.


“요즘 외딴 섬에도 철골 건물이 들어서고 있건만, 이건 완전히 이세계나 다를 바 없군.”


“흡사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지 않느냐.”


“맞는 말이다. 그리고…흐음, 주점여관은 어디에 있지? 보통 번화가 한 가운데에 있을텐데 말이지.”


“주점여관 말이더냐? 한 잔이라도 할 생각인게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정보란 술 자리에서 얻는 법이니까.”


그렇다.


주점여관은 특성상 여행자들과 거주민들을 비롯한 불특성 다수가 모이며, 다양한 군상이 모이는 만큼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오고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 지역의 동향이라던지 무수한 가십거리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주인장에게 돈을 찔러줘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낯선 곳에서 무언가를 시작 할 때, 더 할나위 없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용사여! 용사여!”


“흐음? 뭐라도 찾았나?”


“아마 그렇다네, 저길 보거라.”


그렇게, 주위를 돌아보며 주점여관을 찾던 그 때 마왕년의 부름에 시선을 돌린 이 몸.


“…호오, 마침 필요한 걸 바로 찾았군.”


그녀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골목길 한 구석에 놓인 ‘방향 이정표’ 가 눈에 들어왔다.


“헌데, 용사여. 간판이 엘프어로 적혀있구나. 그대는 해석 가능하느냐?”


“물론이다. 그런데 말이지…”


수 많은 건물 위치가 표시된 이정표.


그 중에서 주점여관이 어느방향에 위치하는지 간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난해한 부분이 있다면…


“…8마일 500피트.”


그렇다.


거리를 전혀 가늠잡지 못하겠는게 난해한 부분이다.


“좆같은 귀쟁이들…대륙 단위가 통일 된게 천 년은 넘었건만, 이 새끼들은 왜 이런 부분까지 곤조를 발휘하고 지랄인가?”


“그래도 방향을 알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 않느냐. 게다가, 이 좁은 영역에서 멀어봐야 얼마나 멀겠느냐?”


“…후! 맞는 말이다. 그럼,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이동하도록 하지.”


뭐, 마왕년의 말대로 멀어봐야 얼마나 멀겠는가?


목적지가 사막 한 가운데 허허벌판에 놓인 것도 아닐태고, 산을 넘는 것도 아닐태니까.


더구나 귀쟁이년들이 아무리 병신같아도, 사람이 걸어 갈 거리가 아닌 걸 표기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병신같아도 말이지.


그래, 최소한 엿 먹일 생각이 없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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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후…


“좆같은 귀쟁이새끼들…도보거리 개념도 글러먹은 족속들이다.”


우여곡절 주점여관에 도착한 이 몸과 여우년.


가뜩이나 작아진 체구 탓에 보폭도 좁아졌는데, 해가 지고 달이 뜰 무렵까지 걸어버리니 두 다리가 마비 될 지경이니…


아마, 지금 추세로 보면 내일 아침 근육통에 시달려 못 일어날게 자명한 부분이다.


“…후아! 엘프의 술도 나름 풍미가 좋구나. 용사여, 가뜩이나 빻은 와꾸 더 빻아지게 찡그리지말고 한 잔 쭈욱 들이키게나.”


반면, 전혀 지친 기색이라곤 눈꼽 만큼도 보이지않는 마왕년.


예전부터 느꼈지만, 대가리가 텅텅 빈 것과 비견되게 체력 하나는 발군이다.


“하긴, 대가리가 나쁘면 몸이라도 좋아야 먹고 살태니까.”


“으흥? 느닷없이 무슨 말인게냐?”


“…아니다. 그나저나, 귀쟁이들의 주점도 여타 다른 대륙의 주점과 크게 다르지 않군.”


독자적인 문명을 유지하던 귀쟁이새끼들인 만큼, 당연히 주점도 통상적인 사고와 다른 이질감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예로들면, 술잔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어디 개 밥그릇 같은 사발로 마셔야한다던지


혹은, 식기구가 없어서 손으로 음식을 퍼먹어야한다던지 말이다.


물론 술잔과 식기구가 죄다 나무로만 이뤄지고 사전에 살펴본 침대는 덩굴과 나뭇잎으로 만들어진건 참으로 그들다운 양상이지만…


그것 외에 술 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거나, 주인장과 의뢰를 조율하는 모습처럼 대륙에서 흔히보는 그런 양상들은 이질감을 어느정도 희석시켰다.


“사람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하지 않더냐. 물론, 저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그래. 지금 귀쟁이들 사이의 기류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군.”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질감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먼 발치에서 귀 담아 경청하니, 십중 팔구는 하나의 큰 주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로들어 칸틀러가 진행 중인 정책에 대한 견해라던지, 엘벤스라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점점 도태되어가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분노서린 토로.


대륙에서는 대놓고 표출 할 수 없는, 입에 담기 힘든 타종족 비하 발언 등등.


길게 듣지 않아도, 현재 귀쟁이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시대정신과 광기서린 이질감은 확연히 남아있었다.


즉, 광기가 보편적인 개념이 된 사회처럼 말이지.


“용사여, 이곳의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터지기 일보직전의 풍선과도 같구나. 얇은 바늘로 조금만 자극하면 펑! 하고 터질 풍선말이다.”


“그 만큼 빨리 일처리를 해야겠지. 우두머리를 꺾으면 그에 동조한 세력은 저절로 와해될 태니까.”


“하아~ 길드 승인서 하나 받고자 시작한 일이 이정도로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했겠느냐.”


“한탄해도 이미 늦었다. 또한 용사란 한 번 발 담근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처리해야하는 법이다.”


“그대가 그렇다면야…으음?”


대화를 나누던 그 때,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걸 목격했는지 주점 구석에 배치된 게시판으로 시선을 향한 마왕년.


“흠?”


이 몸의 시선 역시 덩달아 게시판에 걸어둔 큼지막직한 대자보로 향했으며…








“메이드…”


“…모집?”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동시에 같은 말을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