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말하면 고구려 멸망 이후 많은 말갈계(내지 고구려계) 세력들이 부락화되었고, 대조영집단은 어디까지나 영주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소수의 일파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국가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음. 사실 고구려도 압록강 부근의 소수 부락에서 출발해서 좀 엄연한 국가 체제를 갖추기까지 수백 여년 걸렸는데 발해는 외형적으로야 고구려보다 더 팽창했을지 몰라도 실제로 중심취락을 구성하는 지배세력이 지나치게 소수였던 게 문제였었고, 그 사람들이 인구를 불릴 수 있었던 시간은 고구려가 초기 부락체제에서 국가 단계로 발돋음했던 시간보다도 짧음. 원래 율령제 하의 고대국가는 도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도성의 세력이 중요한데, 사실 이전의 백제나 고구려만 봐도 외형적 규모에 비해서 도성의 인구, 세력이 적어 국가 전체의 결집력이 이완됐기 때문에 망한 거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발해는 그 외형적 영역에 비해 체제의 이익에 복무할 세력들이 너무나 적었던 것. 사실 고구려 유민이라고 해봐야 그 사람들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대조영 집단의 말에 무조건 복종할 이유도 없는 일이고, 고구려 부활이든 뭐든 결국 자기네들 이권이 하나라도 아쉬운 판에 자기들을 통제하려는 세력이 없으면 자연히 자치를 바라는게 당연한 거 아니겠냐.

사실 좀 성리학이나 예학과 같은 이념적 기반이 고도화되고, 국가 차원의 이데올로기 주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한 11세기 12세기 이후의 중세 및 근세 국가들에 비해서, 고대국가는 사실 모든 신민들이 중앙이나 국왕, 왕조에 충성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의식이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임. 지방과 중앙 간의 차별도 현격했고, 도시민과 비도시민 간의 차별도 있었고, 아직까지 완전한 영역국가라기보다는 거점을 중심으로 그 주변 영역을 통제하는 쪽에 가까웠던 시기임.  그러니까 당연히 체제 이익에 복무하는 세력이 없으면 강력한 중앙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