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사회 채널

종교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신이 쓴 옛날책에 쓰인 대로 믿어야함.

보지않고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임.

그러니 엣날책은 고쳐쓸 수 없으니 변화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음.

재해석이란 방법이 있지만 그건 이단 사이비로 찍히는 길.

즉 신이 쓴 책의 말은 책에 쓰여있기 때문에 영원한 절대불변의 진리

또한 신앙은 이성이나 상식을 극복해야 진정한 신앙임.

이성과 상식을 이기지 못하면 절대로 종교가 될 수없음.

처녀는 애를 낳지 못한다거나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이성과 상식을  극복하고 책을 쓰여있는데로 믹어야 함.


과학은 철저하게 이성과 증거를 중시함. 

그래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언제든지 진리는 고쳐쓸 수 있는 것임.

증거가 없거나 뭔가 초월적 가정이 필요하면 

주류로 인정받을 수 없음

오히려 새로운 증거를 발견해 진리를 고쳐 쓰는 자를 

가장 뛰어난 선지자 개척자로 높이 받듬. 

그래서 과학의 진리는 절대진리가 아닌 잠정적 진리

인간 이성이 도출해낸 현재로는 최선의 결론의 모음일 뿐임.


따라서 과학과 종교는 그 원칙에서 부터 결코 양립할 수 없음.


하지만 과학은 약점이 있음. 바로 사회윤리나 도덕 같이 증거를 모을 수 없거나 

따져서 결론을 낼 수 없는 많은 분야에서는 매우 무력하다는 것.

인간이 사는데 과학이나 실험을 적용할 수 없는 무수한 문제들이 많음.

그런 문제에는 과학은 대체로 입을 다물기 때무에 도움이 안됨.


반대로 종교는 그런 과학이 입을 다무는 분야에도 많이 껴드는 편임.

그건 종교가 나름 인간의 경험과 역사의 소산이라 일리가 없지 않음.

문제는 그런 도덕과 윤리는 매우 유동적이고 상대적임.

도덕이나 윤리는 사회와 역사에 따라 발전 변화하는 것인데 

종교적 진리는 진화하지 못하니까 그런 변화를 따라 갈 수 없음.

그결과 종교의 주장과  현실의 사회나 도덕과는 아득히 동떨어지게 됨.

즉 종교는 절대불변인데 윤리와 도덕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임.

그러니 종교는 그런 문제를 다루는데 매우 서툴고 부적합한 수단임.

그런데도 그걸 고집하고 참견하니 수많은 역사적 실패사례를 가지고 있음.


사회윤리나 도덕 같이 과학이 다룰 수 없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종교가 상식이나 이성 또는 양심보다 

도덕을 다루는데 더 낫다는  증거나 역사적 실적은 없음.

오히려 종교가 도덕과 상식을 다루는 데 매우 서투루고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켜 비도덕적 비인간적 비이성적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동원된 수많은 사례들이 있음.

역사적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선행과 관용보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악행과 독선이 훨씬 많고 파괴적임.

즉 종교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윤리와 도덕을 다루어서는 안됨.


종교는 이성과 상식을 이길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또 종교가 다루어서는 안되는 윤리와 도덕을 다루려 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겨져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