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채널

이 글은 해명글임과 동시에 평소에 성소수자 진영에 대한 진솔한 내 입장을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번 글은 무분별한 혐오분자들의 책동으로 쌓인 불쾌감을 배설한 게시물인데, 생각보다 많은 자들의 이목을 끌게 될 줄은 몰랐다. 그건 1차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거여서 깊게 생각해서 쓴 글이 아니었고, 다만 상식적인 선에서 편하게 쓴 글이었다. 그런 글들이 가독성이 좋은 건 함정 그 글에서 말하고자 함은 다짜고짜 성소수자들을 자신들의 혐오감으로 탄압하려는 못된 자들을 규탄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퀴어 퍼레이드나 그 밖의 LGBT 진영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는 게야. 이들을 다룰 생각조차 안 했지. 그렇다고 그 축제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성소수자 진영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양상도 비판받아 마땅한 지점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몰랐겠지만, 바로 내가 그런 비판을 일삼는 자들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나한테 과거,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던 사람들과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끝에서는 내가 LGBT 진영에 대한 올곧은 입장과 생각을 간략하게마나 끄적여 보고자 한다.


@조병옥

@각각


성 급진주의에 대한 단상.

한국의 퀴어 영화를 예로 들면, 이 급진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다. 외국 영화가 안 그런 것은 아니며, 한국의 모든 퀴어 영화가 다 그런 것 또한 아니지만, 유명한 한국 퀴어 영화들 한번 봐라. 특히 한국의 퀴어 영화들은 대부분 섹스에 그렇게 목을 멘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섹스가 없으면 영화 자체가 진행이 안 된다. 몇몇 영화는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아 자지가 그대로 노출되기까지 했다더라. 대체 이게 야동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한테 언젠가 이 점에 대해 물었더니, 뭐랬냐면. 첫째가 경제적인 이유라고 했다. 한국의 퀴어 영화는 대부분 독립영화 축에 속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요소가 필요하고 좋든 나쁘든, 그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했다. 둘째는 역시나 급진적 투쟁 방식의 일환이라고 했다. LGBT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압제가 상당히 심각하고, 위급하기에 그 반대급부로 더 강하게 나간다는 것이었지.


그래서 나는 뭐가 위급하다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국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아서 일반 부부들의 권리와 권한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한 게이 부부가 있었는데. 한 사람이 큰 병에 걸려서 장기 이식을 해야 하는데, 수술 동의서를 써야 한다는 거였다. 그걸 가족이 써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문제는 그 자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더니, 가족들이 연을 끊어서 당시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그 자의 파트너가 대리인 신분이든 참고인 신분이든 후견인 신분이든 뭐든 돼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게 해달라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안 좋게 끝났다고 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그런 고충들은 다름아닌 법과 사회적 정책에서 배제되는 것이었다. 뭐, 이런 점에서 자극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해주었지.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해는 가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지. 왜냐하면, 급진성이 요원해서 급진적으로 나가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이 더욱 급진적일수록, 더 많은 사회적 질타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운동 방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나는 LGBT 인권 운동은 먼저 진영 정치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정치 문제로 끌어오지 않으면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도 없고 지속적인 운동을 위한 추진력도 잃게 된다,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태초에 의욕적으로 추진한 운동이 냄비 근성으로 끝나버리고 말지. 한 예로, 일제 불매운동이 왜 작년 추석 때 끝났는데? 그건 정치적 선동에만 놀아났을 뿐, 아래로부터의 진영 운동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방문제든, 환경문제든, 노동문제든 사회 문제를 해결해내는 건 결국 정치가 해야 할 일이고, 바로 정책이라는 가시적 결과물로 산출되어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 간다 이 말이다. 우리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만들어낸 정책이 지닌 정당성의 지배를 받으니까.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의 정치적 결집에 대해 비난하는 자들은 학부 1학년생 추천 교양도서 중, 정치학 개론서에서 정당 정치 부문을 아무거나 하나 잃어보길 바란다.


어쨌든, LGBT에게는 진영 논리로 가져와 운동을 지속해야 할 당위는 주어진 거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한 비판을 이제 풀어야겠지? 사회 운동은 다름아닌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자 최종 목표다. 다시 말해, 이들과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며 기본적인 소통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 그게 진흙탕 싸움이든, 패싸움이든, 욕을 주고 받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LGBT 운동을 이끄는 자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역사적 담지자라 칭하며, 타협없는 급진적 행위 자체가 장엄한 열사의 투쟁 정신인 것마냥 포장하고 있다. 아니, 상식적으로 대중을 상대로 정치 운동을 하면 대중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갈지를 먼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정치 평론가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 정당 운동을 이끄는 자들은 기본적인 정치 이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아니 그것도 바라지 않는다. 일단 말이 통해야 한다는 거다.


혐오진영과 타협을 하는 것이 곧 완전한 패배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정치적으로는 굉장한 명분까지 얻을 수가 있다는데 씨발 왜 말을 그리 안 듣는지 모르겠다. 이를 제기했더니, 내가 잠시 몸담았던 성소수자 단체 원로 한 명이 분에 못이겨 나를 그렇게 조롱하고, 회장이라는 새끼는 면전에서 비웃으며 대놓고 나를 모욕했다. 아니 실패를 했으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헤집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문제를 풀다 틀리면, 해설서를 보고 답을 고치고, 선택지들을 분석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쳐죽일 새끼들. 그런데 이런 사정들을 다 무시하고 무조건 들고 일어나 깃발이나 흔들어댄다 이 말이다. 그러니 LGBT 운동이 평소엔 음지에 그 힘이 퍼져 있다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명절 퀴어 퍼레이드 날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형국이 조성된 거다. 그날 하루를 완전히 불태우는 거지. 그런데 핫하다 못해 타죽는 년놈들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그 정치적 각성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동시에 그들 입장에서도 공권력의 비호 아래 사회밖으로 나올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이기에 간절하기도 하고. 그래서 충돌이 잦아지는 거다. 이 무한의 순환을 끊기 위한 대책? LGBT 운동계에는 전무하다. 그래 씨발 계속 그렇게 해라. 잘한다.


바로 이점을 잘 간파한 유석 선생의 말을 인용하는 걸로 맺는다.


"온건하게 스며드는게 핵심인데 외부에서 보면 성소수자 진영의 지도부들이 너무 고리타분한거 같아."

"사회계급적 민족주의와 급진주의는 포퓰리즘과 권력독점으로 이어지는 공식에 요즘들어 강한 신뢰를 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