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타자기의 힘은 딱 거기까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촉진시키는 것까지였다. 사실 타자기가 여성의 해방을 이끌었다는 명제는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에 입각해 있다. 문제는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일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키틀러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권력 차이, 고용주와 노동자의 계급 차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았다.
당시 타이피스트가 이른바 ‘신여성’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타자기를 다루는 일이 그리 즐겁고 창조적이지는 않았다. 타자치는 일은 앉은 자리에서 문서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끊임없이 자판을 눌러대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이었다. T. S. 엘리엇을 위시한 당시의 문학 작품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무표정하고 신경질적인 여성이 타이피스트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타자치는 일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면 타자기로 글을 쓰는 일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사실상 타자치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활자로 이루어진 문서를 생산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타이피스트는 진입장벽이 낮고 육체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여성의 일이라는 점 때문에 단순노동으로 격하되었다. 타자기는 글을 쓰는 일을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활자로 기록하는 작업으로, 즉 기의와 기표로 분리해버린 셈이다.
여성이 인접영역으로 활동무대를 확장해감에 따라 다른 직업들도 평가절하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비서다. 19세기 동안 비서는 상당한 자율성과 적극성을 지닌 전문직이었다. 그러나 타자기가 보급되고 난 후, 단순한 타자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하급 사무직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여성의 기계로 자리잡은 타자기가 오히려 여성의 지위를 깎아먹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역설적으로 여성이 진출하는 분야의 평가절하를 초래했다는 뜻일까? 사실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지하려는 남성의 음모’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남성 사무직 노동자들은 상당부분 자율성을 저해받고 업무가 파편화되고 있었다. 미국의 프레드릭 테일러가 소위 ‘과학적 경영’을 도입하면서 사무 업무도 세부 공정으로 쪼개져서 가급적 단순하고 간단한 업무의 연속으로 재구성됐다. 타이피스트라는 직업군은 그 흐름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이가 없지는 않았다. 여성이 진출한 직업군은 주로 저임금 단순 사무직으로 분류되었으며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곧 지위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상징하는 여성참정권 운동은 타자기의 등장과는 무관하게 진행됐다. 타자기를 통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얻었음에도 당시 한참 달아오르던 노동운동에 여성들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남성과 여성의 지위는 사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남성 인구가 급감하고 여성 노동력이 절실해진 2차대전 이후에 이르러서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자기가 여성의 기계로서 한 세기를 풍미하고 여성을 일터로 이끌었음에도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장 앞서 언급한 타자기에서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생각해 보라. 아니, 거꾸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타자기를 쓰는 일을 저급하고 단순한 일’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낸 측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술을 접할 때 기술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기술이 세상을 바꾸기야 하겠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몇 가지 기술만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극적으로 변할 리도 없거니와, 기술이 사람간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일이 더 많다. 사람들은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관계에 맞도록 나름대로 변용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