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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1년전 이맘때였지

내가 너에게 커밍아웃 한때.

이 메시지를 넌 볼 수 없겠지만

난 널 진심으로 사랑했다.

물론 넌 그렇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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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아니 1년이 다 넘어가는듯 하는것 같다.

6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 시작되고 난 내년엔 중학생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줄 몰라하면서 살아왔다. 뭐 아무리 그래봤자 초딩 생활이 다 편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3월 2일맞나? 그날 통지표에 써져있었던 가,나,다,라,마,바 반중 난 '마' 반을 배정받았었던것 같다. 학교에서 다시 상봉한 친구들은 나 ○반이야 서로 물어보고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누구는 좋다고 만세 하고 누구는 통곡했다. 난 오버를 떠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냥 차분히 기호와 반을 대조하고 6반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오랜 친구였던 ㅅㅈ와 아 더 없구나;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드디어 걔가 들어왔다. 얼굴엔 여드름이 조금 나있고 꽤나 마르고 안경을 쓴. 걔는 나와 까마득한 1학년 시절들 같이 보낸 ○○이다. 그때 까지만 해도 걔가 나의 첫사랑이 될줄은 몰랐다. 아무튼, 다들 기뻤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와중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아니? 저분은 5학년때도 나의 담임선생님 이셨던 ○○○선생님 이시다. 아하.. 2년째 남자 선생님과 학교를 다니게 되구나... 그렇구나 하며 첫 날을 보냈다. 걔하고는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런데 하루하루 반에서 볼수록 걔하고 친해졌다. 약간 잘 맞았달까, 매우 친해졌다. 그러다 보니 하굣길도 함께하고, 학교에서 무언가 할때마다 항상 같이 하고, 같이 놀았다. 그때는 내가 핸드폰이 없었기에 사실 기록된 기억이 얼마 없어서 지금 최대한 끄집어 내서 쓰고있다.

6학년 때 어느 순간이었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왜 남자랑도 같이 잘 수 있을것 같지, 왜 남자가 더 익숙한것 같지,,,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리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니.. 그럴리가 없지. (라고 그때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스스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해보니 난 결국 대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합리화 하는 심보로 난 양성애자 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그 친구가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운동을 하거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거나, 수업시간에 잡담을 한다던가,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가까이 접근해서 맛있는것도 사주고 또 잘 대해줬다. 그리고 학교에서 음담패설을 나눈다든지 내가 좀 과하게 스킨십을 했다. 그 아이는 전혀 그런걸 의식하지 못하는듯 했다. 그러면서 몇개월쯤 지났을까, 난 그 아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조금 걸끄럽게 비유하자면 큐피트의 화살이 한 1000발은 명중한것 같달까.. 난 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분명히 난 내 감정을 밝혔지만 그는 날 계속 오해하게 했다. 그런데 어라. 어떤 여자 녀석에게 고백을 받았다. 그때 써내려놓은 대로 난 또 실수를 범하여 고백을 수락해버렸고 그 아이에게 비밀 관계를 제일 먼저 발설해 버렸다. 그러니까 바로 날 놀렸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할까라고 물어보니 알아서 하라는둥 별로 신경쓰지는 않았다. 결국 그 여자 아이와의 관계가 이상하게 끝나고, 난 계속 짝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나의 스킨십은 점점 늘어가고 더 강도가 세졌다. (좀 미안하네)

난 이젠 내가 바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에게 알리고 싶었다. 걔가 정확히 날 좋아하는지, 아닌지 또 나같은 사람들(소수자)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래서 계속 생각했다. 걔와 안전하게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 중에서도 뭔가 상징적인 시간이 언제일까 라고. 그러다 점점 6학년 수학여행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동네의 다른 학교들과는 다르게 멀리 경기도 까지 가서 수원화성과 에버랜드를 간다는게 확정이 되었다. 아이들은 전부 기뻐했지만 안전교육이라면서 강당에 모아놓고 선생님들이 고함지르며 꾸짖는건 분명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때가 기회다 싶어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이 되자 일부러 몇시간씩 고민해서 각 날마다 무엇을 입을지, 잠옷까지 코디를 짜고 캐리어에 짐들을 쑤셔 놓고. 또 내가 생각하기에 최대한 괜찮게 옷을 입고, 머리도 드라이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가을 향이 부는 버스 바깥은 높고도 높은 파란하늘과 넓게 펼쳐진 충청도의 평야가 가득 채웠다. 그렇지만 나의 시선은 주로 내 옆자리 그녀석에게 갔었다. 짐을 달라고 하면 바로 꺼내주고, 맛있는 간식도 조금 주고. 그리고 휴게소에서 내리면 먹을거리도 조금 사줬다. 그는 매우 좋아했다. 그리곤 다시 버스에 자니 그는 잠들어 있었다. 잠든 모습이 왠지 귀여워서 볼을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몰래 다리를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손도 몰래 잡아서 깍쥐 껴보기도 하고.. 뭔가 정말 남자친구 사귀는 느낌이 이런건가 싶었다. 맨 뒷 자리에 둘이 앉은거라 누가 보지도 않으니까 나의 손이 말을 잘 안들었던것 같다. 아무튼 몇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버스에 내려서 식사를 하고, 수원화성행궁을 먼저 관람 했다. 내가 역사 만큼은 자신있어서 해설 한답시고 친구들을 이끌었는데 ㅋㅋ 꽤나 재미있었다. 그러곤 수원화성 성곽을 따라 장안문부터 쭉 방화수류정에서 홍화문까지 이런식으로 걸어갔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이 나에게 생기를 준것 같다. 수원화성 관람이 끝나고 에버랜드 내의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때가 되서 에버랜드에 들어갔다. 조끼리 나뉘어서 움직였는데, 우리 조는 4명인가? (나, 걔, ㅅㅈ, 깐족이)이렇게 였는데 다른 조 조장이 좀 이상한 얘여서 동글이, 부르주아 이 두 친구가 합류해서 같이 다녔다. 우린 너무 시장한 나머지 밥을 먼저 먹자고 했다. 그때 선생님들이 식권을 나누어 주셨는데 가격이 7000원 쯤인가 했던것 같다. 그래서 어느 식당갈까 생각하다가 이름이 가장 멋있어 보이는 식당에 가자고 내가 해서 그 식당으로 갔다. 음식은 먹을만 했었다. 그리곤 이런 저런 놀이기구 타면서 수학여행을 즐기던 참에 머리에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다. 말 해야지.. 그렇지만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게 재미있었던 나머지 둘이 있을 기회가 있었지만 놓치고 계속 놀기만 했다. 이제 밤이 다 되니 에버랜드는 정말 멋있었다. 퍼레이드도 보고 다채로운 조명들을 보곤 하니까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리곤 다시 시간이 되서 숙소로 모였는데, 불꽃놀이를 보고 장기자랑을 하러간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난 그냥 숙소에 있고싶은 나머지 꾀병을 부렸다. 조금 쎈 감기에 걸린척 하니까 선생님이 그냥 숙소에 있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혼자서 누워가지고 핸드폰을 보다가 불꽃이 팡팡 터지는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의외로 친구들은 빨리 돌아왔다. 그러고는 TV를 켰는데 몇명끼리 무슨 채널을 볼지 협상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서 뉴스를 틀어버리니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다 같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씻을 순서를 정했다. 한방에 샤워기가 하나뿐이었으니까 최대한 빨리 씻어버리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가장 마지막에 걸려버렸다. 이런. 아무튼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이때 기억으로는 막 노래틀면서 놀았던것 같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서 들어가서 씻는데 갑자기 방문이 덜컹 열렸다. 시끌벅적했던 방에 적막이 들자 욕실에 있는 나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듣는데... 가장 무서었던 선생님이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셨다. 그렇지만 그냥 그러고 나가셔서 몸을 다 씻고 나갔다. 그러니까 바로 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토를 했다. 난 놀라서 바로 선생님을 불러왔다. 선생님께서는 약을 쥐어주시고 이런저런 말을 해주시고 돌려보내셨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또 토를 했다. 그래서 놀라가지고 남선생님들 계신 방에 달려가서 노크를 했다. 그러니까 그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 나오셨다. 난 좀 놀라서 말이 잘 안나오긴 했지만 침착하게 설명을 하니 담임 선생님을 불러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부장선생님까지 오셔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가 병원은 절대로 가기 싫다고 해서 그냥 좀 나아질 겸 복도를 계속 왔다갔다 돌라고 하셨다. 결국 난 먼저 방에 들어와서 뜬눈으로 누워있었고 어떤 잠꼬대 하는 친구가 걔속 굴러대면서 피해 끼치는 모습을 보면서 있는데 그가 들어왔다. 그가 대충 옷을 갈아입고 누워 있으면서 조금 이야기를 했다. 난 이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남자 좋아하는것 같아' 이말을 하고 싶었다. 근데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한마디도. 뇌는 하라고 하는데,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난 조용히 속삭였다. "나 너 좋아해."

다음날이 밝고, 그는 한결 나아 보였다. 그날 지갑을 어쩌다 잃어버려서 계속 왔다갔다 수소문만 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버렸는데 운이 좋게도 분실물 보관 센터에서 찾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가서 현금 한푼도 안사라진 지갑을 찾고 기쁘게 수학여행을 끝냈다.

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깊이 생각했다. 왜 말하지 못한걸까.. 그리고 정말 말하지 못한게 후회스러웠다. 아무튼 몇달 후 졸업 시즌이 오니 마음이 더 다금해졌다. 그래서 계속 말하려고 학교에서 불렀지만 불렀던 모든 순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의 난 준비가 덜 되었던것일까. 그러다가 졸업식날, 난 조용히 걔를 불렀다. 그리고 말해버렸다. "나, 남자도 좋아하는것같아. 사실 널 좋아했어." 이렇게 말하자 그는 웃는듯 하면서 "넌 그럼 너가 여자라고 생각해?" 이랬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난 날 남자라고 생각하고 남자를 좋아해."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듯 했다. 어정쩡한 그의 반응을 듣고 결국 졸업식은 끝났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연락 하면서 가끔 만나서 노는데, 그럴때마다 조금씩 터치 하기도 하고 음담패설도 나눈다. 근데 걘 만날때마다 날 오해하게 했다. 내가 어딘가를 만지면 복수랍시고 갑자기 내 물건을 만지거나 그랬었기 때문이였다. 언제는 내가 손 잡으니까 거부 하지도 않고 같이 잡아주고. 그는 날 계속 오해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저 헤테로섹슈얼일 뿐이었고 얘가 중학교 들어와서 직접 고백해서 여자친구도 만났었고 해서.. 내가 그와 관계가 된다는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했던 것이었다.

난 결국 몇달 전에 1년 가까이 된 이 짝사랑을 접기로 마음 먹었다. 걔한테도 접는다고 말도 했다.


돌아보니 난 정말 이기적이었다. 날 좋아하지도 않는 한 남자를 그렇게 혼자서 사랑하고 스킨십 하고는 오해시킨다고 착각하고,.  그 녀석에게 미안함만이 남는 심야이다.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난 더 성숙해 졌는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난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짝사랑 하는 사람이 없는 지금 난.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긴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