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셴카 채널

[이 글은 익명의 제 친구가 쓴 글에 제가 뒷이야기를 덧붙여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좆됐다. 내 머릿속을 휘젓던 다른 생각들보다 좆됐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리고 이게 나의 결론이었다.


우리는 거리에서 간단한 군것질을 하다 갈 곳을 정하기 시작했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난 금세 네 얄팍한 수를 눈치채고야 말았다.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16시 48분. 시간이 없었다. 모르는 척 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난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 따위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냥 내 입으로 뱉었다. 모텔로 가자고.


다행히도 모텔엔 주인이 있었다. 능숙하게 대실을 해달라고 했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주인은 여러 핑계를 늘어놓으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내겐 신분증이 없다. 주인이 멍청해서 다행이다. 네 신분증만 확인하고는 쉽게 들여보내줬으니까.
우리는 객실로 들어왔다. 먼저 씻어... 아니야 네가 씻어... 이따위 말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네 욕구를 풀어주고 집에 가 편하게 휴대폰을 하며 누워 쉬고 싶었다. 그냥 대충 너 먼저 씻고 오라고 한 뒤 침대에 걸터앉아 아무 알림도 뜨지 않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때 시간은 17시 21분. 아. 시간이 없다.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네 지갑을 찾기 시작했다. 쉽게 찾을 수 없어 설마 네가 화장실로 들고 들어갔나,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건 아니었다. 네가 벗고 들어간 바지 뒷 주머니에 있었다. 얼마가 있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량한 자존심이었는지, 다 빼오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손에 집히는 지폐들을 꺼내 빠르게 내 가방 안으로 구겨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뭐 더 할 게 없나, 생각하다 문득 네 가방 안이 궁금해졌다. 네가 매일 들고다니는 그 메신저백. 평소엔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열었다. 씨발. 육성으로 내뱉지 않고서야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가방 안엔 약 병과 주사기가 가득했다. 물론 무슨 약인지는 모른다. 가방 깊숙한 쪽엔 가죽으로 된 끈인지 벨트인지 모르는 것들이 가득했다. 서둘러 안주머니를 확인하니 영수증이 고이 접혀있었다. 동네 마트, 편의점 등에서 락스나 시트지 따위를 구매한 영수증이었다. 왜?


씨발. 이게 도저히 꿈이 아니라면 뭘까. 뭐여야 할까. ADHD 환자처럼 끊임없이 네가 있는 화장실 문을 쳐다봤다. 당장 꽂힌 키를 뽑고 객실 문을 열어젖혀 긴 복도를 달려 로비에 있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까. 아, 주인이 멍청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겠구나. 너도 속으로는 쾌재를 외쳤겠지. 그냥 경찰에 신고를 해야할까. 아니, 만약 이게 내 착각이라면? 그렇다면 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이 비현실적이고 끔찍한 상황은 점점 나를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착각한 거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내 잘못인 거다. 아니, 애초에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침대 옆에 걸려있던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 그 째깍재깍 소리가 가슴이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 무거운 시계 초침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고 손 발이 차가워져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내 청각은 시계소리를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뭐라도 좋으니 다른 소리를 듣고 싶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순간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기에서 흐르던 물줄기가 끊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인즉슨 곧 네가 그 화장실에서 나온다는 걸 의미한다. 네가 있는 화장실은 내게 구치소 감옥 같아보였다. 네가 그 안에 있는 한 난 안전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네 지갑에서 돈을 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영악한 갑"이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너무도 추악했다. 휴대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17시 36분. 익숙한 이름으로 카톡이 와 있었다. 도와달라고 해야할까.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굳게 닫힌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치 그게 내 미래라는 것 마냥. 문은 아주 처참히 열렸다. 그리고 그 문 앞엔 네가 서 있다.

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거슬리는 머리들을 귀 뒤로 넘겼다. 네 동공이 커지는 게 보인다.


좆됐다. 이게 내 결론이다.


나는 들고왔던 가방에 너를 넣었다. 너의 몸속에는 나의 정액과 수액이 가득했다. 너는 몸집이 워낙 귀여웠기에 내 가방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나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한 마디를 건네며 조용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18시 32분. 나는 그제 막 산 중고 마티즈에 올라탔다. 아, 오랜만에 사람 한번 죽여보니까 성욕도 풀리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이 한결같은 도심의 밤,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가 이걸 봤으면 아주 기분 째졌을텐데, 그렇지 않아?ㅋㅋㅋㅋㅋ 아, 괜스레 하나님께 죄송해지네. 뭐, 교회 가서 회개해야지. 난 나름대로 성경책 들고다니는 남자거든. 멋지지 않아?


널 놔두기에는 어디가 좋을까. 강? 바다? 산? 폐가? 넌 어디든 좋아하겠지.나는 들고왔던 가방에 너를 넣었다. 너의 몸속에는 나의 정액과 수액이 가득했다. 너는 몸집이 워낙 귀여웠기에 내 가방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나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한 마디를 건네며 조용히 모텔을 빠져나갔다. 18시 32분. 나는 그제 막 산 중고 마티즈에 올라탔다. 아, 오랜만에 사람 한번 죽여보니까 성욕도 풀리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이 한결같은 도심의 밤,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가 이걸 봤으면 아주 기분 째졌을텐데, 그렇지 않아?ㅋㅋㅋㅋㅋ 아, 괜스레 하나님께 죄송해지네. 뭐, 교회 가서 회개해야지. 난 나름대로 성경책 들고다니는 남자거든. 멋지지 않아? 널 놔두기에는 어디가 좋을까. 강? 바다? 산? 폐가? 넌 어디든 좋아하겠지. 맞아, 넌 산을 좋아했지? 나한테 산으로 놀러가고 싶다고 했잖아. 소원대로 산을 평생동안 보게 해줘야겠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걸. 19시 01분. 난 너와 함께 고속도로 드라이브를 하러 출발했다.


21시 35분. 동해, 태백...그리고 대현리. 나는 샛길로 들어간다. 쭉 산을 내려가다 낡은 아파트를 보았다. 낡은 아파트 뒷켠에 있는 버려진 물탱크에 너를 두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마지막으로 너의 창백한 눈을 보았다. 너는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참 징그럽다 징그러워. 그렇지 않냐? 솔직히 거기서 그렇게 있었으면 지금쯤은 죽어줬어야지.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을걸 바라냐? 난 너랑 섹스하는게 애초에 목적이 아니었거든. 너를 죽이는게 목적이었지. 나는 너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너에게 보여줬어.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죽이고 싶다고. 근데 너는 나랑 만나줬잖아. 그러면 너도 이거에 동의한거 아니야? 알았으면 피했어야지. 이건 너도 나도 다 원하던 거잖아. 아, 야밤에, 죽어가는 너의 몸을 보고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네.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나는 너가 춥지 않게 너의 몸에 불을 지폈다. 어두웠던 밤은 갑자기 밝아졌다. 나는 차를 타고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갔다.


1시 45분. 3시간 반동안 구닥다리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대충 공항에서 때우자.

아침에 일어나보니 TV에 익숙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 새벽, 경북 봉화군의 한 폐건물에서 불이 나 1명이 숨졌습니다.
'거기가 새벽에 사람도 안 다니고 전기도 끊긴지 10년 됐습니데이.'
'이 동네 사람들만 안다 안했나. 마 분명히 석포사람 아니면 태백사람이 쓰레기 태운다 카면서 불 지른기다.'
경찰은 이 폐아파트의 물탱크실에서 누군가가 방화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


뭐, 모르겠지 아무도. 대충 버거킹에서 점심을 때웠다. 이젠 핸드폰 보고 있는 것도 지겹다.


15시 10분. 드디어 카운터가 열렸다.

타슈켄트. 17C. 게이트 21. 아시아나항공. 16시 48분부터 게이트 오픈.


그리고 17시 21분. 비행기는 우즈베키스탄을 향해 출발했다.


자기야. 지금 보러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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