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 채널

비록 왕국의 성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다른 소부족의 성원이었던 백성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자들의 경우 왕국의 운영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국왕'인 타키누시의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으므로, 나이에 비해 매우 총명할지언정 정무를 돌본 경험이 없는 타키누시의 걱정은 날로 깊어져 갔다.


대체 이를 어쩐다?


무슨 일이 있느냐, 타키누시?


문득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타키누시의 시선은 자신이 거하는 막사의 입구 쪽으로 향하였다.

언제 장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 것인지, 그곳에는 한때 자신을 대신해 집단을 통솔하던 아카산무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솔직히 말씀하세요, 아카산무이씨. 사실 장님이라는 거 거짓말이지요?


매번 자신이 머무는 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그의 재주에 경의를 표하듯, 타키누시는 혀를 내두르며 그에게 물었고, 그런 그에게 아카산무이는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크게 웃으며 답하였다.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상대가 내는 소리, 상대의 체취, 몸이 맞닿을 때의 느낌, 때로는 상대가 은근히 뿜어내는 기척 같은 것도 훌륭한 단서가 될 수 있지. 하여, 무엇이 그리 걱정인 게야?


한동안 넋을 잃은 것처럼 아카산무이의 장광설을 듣고 있던 타키누시는, 마지막 문장이 제 귀에 꽂힌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타키누시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은 아카산무이는 차분하게 그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쉰 타키누시는 이내 자초지종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한테 이런 자리를 떠맡기셨어요?


그렇게 한참을 이어지던 눈물 어린 하소연은 결국 아카산무이를 비롯한 동료들에 대한 가벼운 원망으로 끝이 났다.

내내 진중한 얼굴로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아카산무이는, 이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잠시 침묵하다 느릿하게 운을 떼었다.


아무래도 이 섬의 사람들에게 완전한 왕정은 아직 이른 모양이다.


오랜 고민에도 쉽사리 해결책이 나오질 않자, 결국 아카산무이는 타키누시와 함께 막사 밖으로 나가 건국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그 수는 자신들을 포함해 총 일곱이었으며, 그 명단은 아래와 같았다.


총아, 타키누시(聰兒, 竹主) 953년생


맹겸, 아카산무이(盲鎌, 赤山) 944년생


화객, 이미투이(話客, 夢鳥) 951년생


전보, 티다사(電步, 日下) 949년생


화귀, 틴간(火鬼, 天鏡) 951년생


탐금, 누이신(探金, 明眞) 950년생


일학, 코우진(一學, 古仁) 939년생



애초에 동행 중이던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이들이 집합하는 데에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누이신의 집에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아카산무이는 자신이 들었던 타키누시의 고민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국가의 안정화 방안'이라는 안건을 발의하였고 곧이어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죄다 생매형에 처하자는 과격한 의견부터 그냥 다시 국가를 해체하자는 자포자기성의 의견까지, 실로 다양한 말들이 오간 끝에 채택된 것은 그들 중 최연장자인 코우진의 의견이었다.


지금 저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기득권이 없었던 평민들은 진즉 충성을 맹세했겠지요.


이어진 그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지금 저들은 나이가 어리고 정무 경험이 부족한 타키누시를 깔보고 있다.

2. 솔직히 여기 모인 이들 중에 정무 경험이 풍부한 자는 없다.

3. 그러나 우리들 각자는 작은 집단을 어느 정도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4. 그러니 우선 각자가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을 모아 7개의 새로운 부족을 결성하고 모든 정치적 안건에 대하여 서로 간의 조율을 거치자.


문제는 이로써 논의가 완전히 일단락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제 그들은 각자 거느릴 집단의 규모 등을 상세히 논의해야 했으며, 더불어 백성들을 직접 설득, 혹은 협박하여 충성의 맹세를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매우 까다로운 적수로 예상되던 상류층의 연장자들은 아카산무이와 틴간의 적극적인 겁박에 의해 수월하게 그들의 무리로 편입되었고, 그렇게 수 개월이 흐른 후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타키누시의 치치니무라(狐村)족은 주로 그의 동년배에 속하는 남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수는 총 8000명이다.

아카산무이의 쿠라이미(暗目)족은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상류층 연장자들을 대거 흡수하였으며 그 수는 총 2만 8000명이다.

이미투이의 미치시바(蜜舌)족은 그의 인망을 대변하듯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수만 무려 3만 2000명에 달한다.

티다사의 시루카게(白影)족은 대개 평민이나 천민에 속하는 유소년들을 흡수하였으며 그 수는 2000명이다.

틴간의 아카산이와(赤巖)족은 쿠라이미족이 흡수하고 남은 이들을 포함한 1만 3000명으로 구성되었다.

누이신의 타카라스와(寶座)족은 7인 중 가장 풍부한 재력을 이용해 1만 2000명을 포섭하였다.

코우진의 투라후미(虎文)족은 500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기존의 지식인이나 글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렇게 하여 타키누시의 정치적 부담은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으나 그는 결국 이후의 추가적 논의에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카니무이의 명목상 국왕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를 통하여 카니무이의 정치 체제는 과거 중국 대륙의 춘추시대가 그러했듯 봉건제에 가까워졌으며, 후일 카니무이의 백성들은 이렇게 탄생한 일곱 부족을 '칠관족'이라 칭하게 되었다.


/토 나오는 분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