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미군이 고의로 한 건 아니었지. 이때는 자국군이 아니라 외국군에 의한 사고였기에 말이 많았다. 심지어 그때 김대중이랑 아키히토랑 술잔 주고 받은 이후로 일본이랑은 사이가 정말 좋았지만, 그 대신 반미 감정이 대대적인 유행이라서 나 초딩 때 피씨방에서 디아2할 때 소리바다로 Fucking USA 노래 틀고 그랬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억해야 하는 게, 앞으로의 사고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경각심을 위한 것도 있고, 또 당시 미군은 사건 초기에 책임자 처벌을 굉장히 소극적으로 하려 했다. 만약 자국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결코 한국에서의 사고 뒷수습과 같지 않았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집요하게 이걸 정치화해서 반미 감정을 부추겨 선동하는 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맞다.
그렇다면 다른 거 다 떠나서, 그 안전불감증을 없애기 위한다는 뜻에서 사고를 기억하는 게 좋을듯. 사고 사례를 상기시켜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반면교사는 없으니까.
근데 진짜 이 문제 때문에 당시 NL들이 물 들어왔다고 주한미군 철수 주장하고 뜬금없이 통일의 시대가 왔다고 노저었던 거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천하의 개쌍년놈들. 결국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지들 종북 정치판에 제물로 삼은 것밖에 안 됨.
?? 저 좌파 노선이 우파계로 많이 흡수됐다고? NL은 2000년대 중반부터 거의 없어져가다가 통진당 해산을 끝으로 완전히 소멸됐음. 그리고 물론 민노당의 계보를 잇는 자들이 정의당과 한 때 정치적 스탠스가 비슷한 진영이긴 했지만, NL과 PD는 오히려 민주당을 비롯한 우파들과의 관계보다 훨씬 사이가 안 좋았음.
이 둘이 그나마 친했던 건 '87년 789노동자 대투쟁 때, 그 이후로 좀 서먹하다가 IMF 이후 산별노조 생겼을 때 말고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음. 뭐냐면, 임진왜란 끝나고 이산해, 이이첨이 류성룡을 파직시키는 데 앞장섰던 거랑 같은 상황임. 역시 NL과 PD는 같은 정파에서 시작됐더라도 완전 앙숙 지간이었는데? 동시에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도 NL과 PD는 완전히 갈라선 상태였고.
그리고 지금 정의당 지역구 선출 의석이 심상정이랑 여영국 둘뿐 이고 나머지 4명은 다 비례대표임. 이자들이 민주당계랑은 거리가 정말 먼데? 정의당이 민주당으로 흡수됐다? ㄴㄴ아님 아님. NL, PD, 우파가 한 몸이라니..
내가 말했잖아, 반미랑 반일은 미국과 일본이 미워서가 아니야, 그들의 진정한 마음의 조국인 북중러가 걱정되고 지키고 싶어서 그런거지, 그들이 제일 두려워 하는게 북중러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이니까.......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미군 공병전차 조종수의 잘못의 크기문제가 아니라니까...
뻐킹 USA... 진짜 씨벌 할말은 많은데 참는다.
노래는 존나 중독성있는데 ㅅㅂ....
이 현상을 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다.
다른 교통사고들과 마찬가지로, 미선이 효순이 사건 역시 단순 교통사고다. 승용차가 아닌 땅끄에 치였다는 점만 빼면. 근데 문제는, '사회적 강자' 가 일으킨 사고로 '사회적 약자' 가 피해를 보았으니 미개한 국민정서를 자극시키기에는 충분했고, 이게 반미감정을 더 Trigger한 것 같다.
참 이해가 안간다고. 군인들 수도없이 죽어나가고 PTSD로 곶통받는 건 좆도 안 생각하면서 이 사고 하나로 반미 감정 유발하면서 징징 짜는거 말이다.
한국에 성역화된 대상들이 상당히 많잖아? 근데 왜 거기에 군인은 포함이 되지 않냐고.
감성팔이 그리고 선동이라는 게 참 무섭지. 그리고 왼쪽 애들이 이런거 잘하기도 하고.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감정? 개인적으로 갖고 있을 수는 있다. 근데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회적으로 반미 반일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우리 국가가 찌질하다는 것을 자랑할 뿐.
한국이 찌질한 국가가 되는 것 원하지 않잖아. 그럼 이런 감정들은 속으로나 쳐갖고 있으라고.
FTA도 훨씬 잃는게 많은 한EU는 언급도 안하고 한미FTA만 걸고 넘어졌었지
뭐 여러가지 상황이 겹쳤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 미국 대통령이 죠지 부시 아들이어서 미국 이미지가 좀 많이 망가진 것도 있었고
전교조 피교육세대가 막 자라나서 성인이 된 것도 있고
쇼트트랙이나 뭐 이런거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면 민족주의 자극질을 할께 아니고 비지성주의를 욕했어야 하는건데
나 군 복무할 때도 국방부 앞에 가끔 지나가면 전투기 '전'자도 모르는 인간들이 몰려와서 F-15K 반대 시위하고 그랬음
그 때 당시 일어난 도로 지점을 보면 그 당시엔 좁디 좁아 터진 1차선 도로에 인도 조차 없었는데다가
그 도로 폭 너비길이는 3.3 미터, 사고차량은 3.65미터임.
위키백과의 나온 문구를 따오면 >> 사고가 난 도로는 인도도 따로 없는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로, 주민들은 평소 갓길을 인도삼아 통행해 왔다. 2002년 6월 13일 사고가 난 이후 유족들은 "당시 사고 차량의 너비가 도로 폭보다 넓은 데다 마주오던 차량과 무리하게 교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이미 예견된 살인행위였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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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10년 후엔 심미선 양의 부친은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미군이) 애들이 미워서 낸 게 아니지 않나"라며 "얼굴도 모르지만 그 미군들도 이젠 마음의 짐을 덜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라고 했고 여중생의 부친들은 정치적인 반미운동행사엔 불참했어.
당시 압사사건 날짜는 2002.6.13일인데 노무현 이회장 등 대통령 후보들이 이 사건에 입에 오르내리면서 비판을 하며 당시 정권은 김대중이였으니 반미여론집중조명해서 사실상 표심팔이를 한거였음. 참고로 노무현 재임기간은 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
결론은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은 당시 변변찮은 도로 상황 + 도로 폭을 넘긴 차량 너비 폭에 주민들은 평소 갓길을 인도삼아 통행 + 민주당계 정치인들과 다음 대선을 위한 선거도구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압사사고이후 2004년~2006년까지 다니던 회사근처 (효촌리) 사고현장 숱하게 많이 지나다녔는데 사고때문인지 그도로는 인도가 쭈욱 생겼고 항상 다닐때마다 무언가 마음속이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음.
그쪽근무할때 심심하게 보는게 탱크랑 자주포였음. 근처에 포병훈련장이 있어서...
그래서 더욱 사고날 확률이 높은지역인데 지금은 모자이크 사진만 보일테지만 당시는 인터넷에 모자안된 원본사진도 많이 돌아다녀서 정말 끔찍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