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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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 지도 있지지도를 좀 보여줘.“

 

아 네여기요!”

 

 

멍하니 있던 에들레이드는 황급히 길드 내에서 쓰는 이 근방의 지도를 그녀에게 내밀었다그리고 리코리스는 그것을 보고 잠시 고민하는 듯 중얼거렸다.

 

 

북서 방향으로던가그게 아니면...?”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지도의 한쪽 지점에 펜으로 점을 찍은 뒤 말했다.

 

 

주변 지형과 방위를 고려하면 아마도 여기.“

 

 

에들레이드는 그 장소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리코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게 그녀가 표시한 곳은아무런 인적이 없는 숲의 한 가운데였으니깐.

 

그곳은 그저 이곳 도시와 가까운미개척지의 숲일 뿐사람이 살만한 시설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긴아무것도 없는 숲 한가운데인걸요!“

 

 

리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 봤을 때는 어디엔가 누워있었어동굴이나 나무 등치는 아냐.“

 

그럼 대체 어디에?“

 

아마도그는 폐가에 자리를 잡은 듯 해.”

 

여기에는 아무런 마을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니야기억이 나한 17년 전 쯤에 이 곳에도 마을이 하나 있었어.”

 

“17년 전이요...?”

 

그때도 난 이 근방에 살았었으니깐.”

 

 

에들레이드는 그제서야 자신이 수백 년을 살아왔을지도 모를 리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문분출하는 리치였기에 존재감은 없었을지라도그녀는 여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을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누워있다니요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그건 괜찮을거야숨을 쉬는 것까지는 봤으니까아무튼 그는 이곳에 있어당장 확인하러 갈래.”

 

 

그녀는 그녀의 짐과 스태프를 집어든 뒤에들레이드에게 말했다

 

 

아무튼 자호의의 대가야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너한테 넘겨줄게.” 

 

 

그가 살고 있는 곳의 위치그것이 선명하게 지도 위에 한 잉크 점으로 찍혀 있었다

 

그렇게 떠나려는 그녀의 옷깃을 붙잡은 것은그저 견제심의 발로였을까그게 아니면 무언가 이 리치가 그에게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아서였을까

 

둘 다 였을것이다.

 

 

뭐야?”

 

“...”

 

방해하지 말아줘.”


가면 안 돼요...”



에들레이드는 적당한 변명을 생각해내야 했다옷깃을 붙잡는 이 소극적인 행위가 그녀를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니까.

 

 

다른 마물들이 마법을 몰라서 그의 위치를 알아내지 않은 게 아니에요!”

 

 

스스로도 궁색한 변명이라 생각했다사실 방금 전에 리치가 시전한 마법을 할 줄 아는 이가 한스의 추종자들 중에 한 명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에들레이드 그녀는 아니다.

그리고 그 구차한 변명에리코리스는 그저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그럴 용기나 배짱이 없었나보지.”

 

“...”

 

필요하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아그뿐이야배려나가책같은 건 나와는 관계없으니까.”

 

 

에들레이드는 옷깃을 놓았다

 

스르르 손에서 빠져나가는 감각이그녀를 더 겉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그것이 그녀가 오늘 겪을 최악의 일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리코리스는 나가기 전프론트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괜한 조언 하나 해줄게.”

 

 

에들레이드는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하찮은 견제 행위에 대한 매도그게 아니라면...

 

 

그는 마술에는 소질이 없다고 말했으니까그러니까한동안은 인간인 것처럼 속일 수 있겠지.” 

 

 

에들레이드는 리치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그것은 오늘 그녀를 하루종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 주제이자제발 모른 척 넘어가 줬으면 하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무심한 듯 있었던 리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하는 것이든그렇지 않든 에들레이드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속이다가 들통나면그 뒷감당은 차라리 처음에 받는 미움이 나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클 거야.”

 

 

그 말에 에들레이드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버린 것처럼떠나는 그녀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덤불과 수풀을 헤치며 리코리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동한 마법은 성공적이었지만 탐색의 범위가 넓어지면 아무리 70개의 눈동자라도 거의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주변의 풍경을 지나치게 된다.

 

그렇지만그런 순식간의 장면을 금새 잊어버리는 여타의 마법사들과는 달리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녀는 그럭저럭 그 근방의 풍경 정도는 뇌리에 기억해둘 수 있었다.

 

그것이 다는 아닐지라도 그런 비상한 기억력이 그녀가 이뤄낸 업적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기 때문에그녀는 그런 일들에는 익숙했다최소한그녀는 의식하고 기억해두려는 것은 잊지 않았으니깐.

 

그리고덤불을 한 꺼풀 더 지나쳐 가자 비로소 그녀가 기억하는 풍경이 나타났다.

아마도 여기서 조금만 더 간다면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물음에 해답을 가지고.

그녀의 감정에 정의를 내려주려고.

그토록 무방비하고 취약한 상태로 있는....

 

 

멈춰라.”

 

 

그리고그곳을 찾은 이는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에 리코리스는 들고 있던 스태프를 비스듬히 쥐고 주변을 경계했다.

 

 

경계를 풀어라만일 네가 적대적으로 임한다면이 아이도 휘말릴 테니까.”

 

 

목소리의 정체도그것이 말하는 아이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적어도 이 근방에 한스가 누워있는 것은 확실했으니리치는 반쯤 완성 되었던 주문을 스스로 취소하고 경계를 풀었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은 그 정체를 저 어둠속 그림자에서 서서히 드러냈다.

 

리코리스를 불러세운 그녀의 정체는...

 

 


부기?” 

 

 

천과 솜으로 누벼진 커다란 봉제 인형과 같은푹신한 인상의 마물그것이 리코리스를 막아세운 목소리의 정체였다.

 

그리고 부기는 자신의 등 뒤편에 무언가 있다는 듯그 커다란 덩치로 무언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너도 그 아이를 보러 온 것이냐?”

 

당신이 말하는 그 아이가 누군지는 몰라도나는 여기 누군가를 보러 왔어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줘.”

 

 

부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허락할 수 없다이 아이는 지금 아프니까.”


어디가 아픈데?”

 

과로로 인한 열병이다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만나게 해줘난 치유술도 할 줄 아니까.”

 

안 된다.”

 

 

부기는 단호하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열병은 며칠 충분히 휴식과 적절한 영양을 섭취하면 나을 것이다그 동안은 조금 고통스러울지라도그렇지만 마음 속 상처는네가 그 아픈 부분을 후비고 소금을 뿌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나?” 

 

 

리코리스는 없던 심장이 거세게 뛰는 듯한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약이 오른다는 감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마물을 혐오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그렇지만당신도 마물이잖아?" 


"나는 그 아이가 잠든 새벽에 찾아와, 깨기 전 여명에 떠난다. 그 아이는 맨 정신으로 나를 본 적이 없다."


"당신이 뭐길래? 마치 그 사람의 보호자처럼 허락한다 만다...”

 

나는 그 아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그리고 그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

 

 

그 말이 담고 있는 정체불명의 숭고한 위엄 때문에 잠시나마 리코리스는 쏘아붙이려던 말을 잊었다

 

그러나잠시 후 그 영향에서 벗어나자그녀는 하려던 말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한다면그 사람에게 구혼해마물들의 방식대로 사랑하란 말이야나는 나대로 그에게 묻고 확인해야 할 게 있으니까.”

 

 

어쩌면 리코리스의 착각이었을지 모른다그러나 그녀가 보기에 그 부기는 싱긋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여러 번 찾았다그리고 이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아니나는 그런 방식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그런 방식의 사랑은 나보다는 네가 품고 있는 것에 가깝겠지.”

 

내가... 품고 있는..?”

 

 

이제 리코리스가 품고 있는 감정은 혼란에 가까웠다

 

 

그것이그 감정이 연모였다고...?’

 

 

그리고 그것이 익숙치 않았기에 그녀에게는 더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몰랐나그래서 확인하러 온 것인가?”

 

 

리코리스는 점점 할 말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휘몰아치는 감정들이 그녀의 머리를 마비시키고 혀를 굳게 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부기의 말은 준엄한 질책에 가까웠다마치 부기 자신이 생생히 기억하는 과거에서 리코리스의 허물을 지적하듯이 말이다

 

 

난 너를 안다사악한 리치야너는 기억 못할지 몰라도나는 너를 기억한다살아서도죽어서도.” 

 

“...”

 

그렇기에 묻는 것이다내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료할 수 있겠나더 큰 상처를 입히고거기에 못까지 박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나?”

 

 

한참을 고민해서야 그녀는 겨우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난 그런 건 몰라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나는 그 사람을 몰라그렇지만확실한 건 치료라면 전문 분야야아니 어떤 분야든 내가 못 하는 건 없어그렇다고 자부해그러니비켜줘그를 만날거야만나서 확인할 거야당신이 말하는 그 감정이정말인지그게 아니면 어떤 부기의 헛소리인지는 보아야 알 수 있겠지그러니까 비키란 말이야!!” 

 

 

부기는 깊게 한숨을 쉬더니 말 없이 고민하는 듯그녀를 계속 응시했다.

 

이에 리코리스도 부기를 노려봤다이대로 시선을 내려버리면 부기의 방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되돌아 가버릴 것만 같아서.

 

 

어쩌면이게 최선일지도 모르지묶은 것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조금 더 망설이더니  말했다.

 


"결국은 그것도 그 아이의 선택에 달린 것이니까. 더 이상 이렇게 막아서도 안 되겠지." 



그리고 부기는 그 몸으로 가리고 있던 공간이 보이도록 옆으로 몸을 비켜주었다

 

 

네 고집이 내 아이의 치료약이 되기를 바라겠다.”

 

 

리코리스는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앞만을 노려보며 걸어나갔다.





이제야 서서히 전개가 되는 기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