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좀 춥네…”

 

고요한 밤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센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튼튼한 기둥과 벽 안에서 잠을 청하는 이에게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단잠을 이따금 방해하는 날이었겠지만, 이곳 저곳 구멍이 뚫려 반쯤 그 의미를 상실한 바람벽에 기댄 한스에게는 꽤나 고된 밤이 될 것 같았다. 

 

 

 

 

몇 시간 전 마이어와의 작별을 고한 뒤 한스는 어딜 가도 쉴 수 있는 방을 – 그러니까 마물들이 없는 깨끗한 여관을 – 찾을 수 없었다. 마물들을 의심하는 이가 더 이상 이 마을에는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한스는 불쾌한 방식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당장 그가 오늘 밤 잘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몇몇 눈치 빠른 마물들은 행동에 나섰다.

 

“낭군님~♡ 마침 소첩의 집에 방이 하나 비어있는데…”

 

“우리 집에서 쉬다 갈래요? 사양하실 것 하나 없답니다. 그저 쉬는 것일 뿐이니까요…♡”  

 

물론 한스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아쉬워하지만, 그를 강제로 붙잡을 무모함까지는 없었던 그녀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그가 여관을 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져오며 하나 둘씩 거리의 불들이 꺼지자 어쩔 수 없이 한스는 마을 외곽을 서성이며 적당히 하루 정도만 몸을 숨길 장소를 찾았다. 용사였던 한스에게 노숙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으니까.

 

‘적당한 크기의 토굴, 나무 등치 정도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그가 숲 속에서 머물 수 있는 집을 발견한 것은 그날 그에게 일어난 일중에서 가장 행운이었을 것이다. 

 

숲 한가운데에서 나타난 집은 어떻게 보아도 주인이 있는 집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여러 해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보이는 집은 여기저기 비바람에 마모된 흔적들과 거미줄이 가득한 지붕로 그를 맞이했다. 한스는 적어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다 떨어져가는 문을 저 상태로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도 얼마나 낡았던 간에 한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새벽 이슬만 피할 수 있다면 과분했으니까. 그는 얼마 안 되는 짐을 다시 챙겨서 이 집에서 오늘 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한스는 숲 한가운데서 야영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도 안은 생각했던 것처럼, 깨끗하진 않았다. 주인 없이 버려져 쓸쓸히 하루하루를 낡아가야만 했던 가구들은 꽤나 처참한 몰골로 남아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충 구석으로 가구들을 밀어버리니 겨우 몸을 누울 만큼의 바닥은 마련이 되었다. 몸을 덮을 요같은 것이 있을 리 없으니 몸을 웅크리며 잠을 청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잠든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날따라 그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자리는 영 편하지 않았다. 그는 잠들 수 있을 정도의 따스함을 얻기 위해 몸을 계속 뒤척였지만 그의 잠을 방해하는 건 추위가 아니라 깊어진 생각이었다. 

 

‘엊그제만 해도 사람들을 죽이려고 앞장서던 족속들이 이제는 남편감을 구한다고 아양을 떤다고?’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한스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 사실을 믿을 수야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한스는 길드에 들르고, 마이어를 만나면서 완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비록 그가 바라지 않았을지라도 그렇게 됐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본디 이름조차도 없는 무명 용사, 이제는 그마저도 의미를 잃은 그저 한 남자가 돼버린 한스.

이제는 소녀들이 된 마물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복수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쉬는 한숨이 너무나 무거웠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이 담긴 한숨이었다.

 

따로 모아둔 돈도 없어서, 오늘 길드에서 수령한 퇴직금이 전 재산의 거의 전부였다. 

집 한 채도 못 살 돈으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따랐다.

 

한편으로 그는 조금이나마 희망이 닿을 수 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질문에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은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질문이리라.  

무겁게, 피로가 그의 눈꺼풀을 짓눌렀다. 한스의 눈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번 오래 감겼다가, 다시 반쯤 열렸다. 

또다시 눈이 감기었을 때,  아침 햇살을 맞을 때까진 다시 뜨이지 않았다. 






꿈 속에서 한스는 코흘리개 아이였다. 몸에 비해 너무나 큰 갑옷을 입고, 길다란 장검을 땅에 끌고 다니는.

 

그 꿈 속에서 그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꾼 꿈에서는 유일하게, 상처없이 온전한 모습들로.

 

가족의 품안에 안긴 한스는, 정겨운 따스함과 향기를 꼭 끌어안았다.  따스하고 향기로워서 있는 힘껏 꼭 끌어안았다. 

 

그를 쓰다듬는 상냥한 손길과 함께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자애로운 목소리, 그가 기억하는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많이 힘들어 하고 있구나, 아가.”

 

‘외로웠어요. 무서웠어요.’ 

 

“가엾은 우리 아가.” 

 

‘더는 못 할 거 같아요. 포기하고 싶어요. 전부 놓아 버리고 싶어요.’ 

 

“잘 이겨내야만 한단다. 모든 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니까.”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꿈속에서만큼은 한스도 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창문을 통해 밝은 아침 햇살이 한스의 눈가에 드리웠다. 

밤새 영문모를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꼈던 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가에는 있을 리가 없는 커다란 이불과 침대에 누워있는 듯한 푹신함을 얼핏 느꼈던 것 같았다. 

따스하고 향기로워서 있는 힘껏 꼭 끌어안았다. 잠결에 그런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어제 대충 한쪽으로 밀어 놓은 가구의 다리들, 그리고 깨진 창이었다. 그는 어제 입은 옷 그대로 몸만 웅크린 채 누웠고, 당연히 폐가에는 푹신해보이는 무언가는 있을리가 없었다. 

 

대충 그런가 하고 한스는 그의 몸에 붙은 먼지를 날리지 않게 조심히 쓸어내렸다. 

바닥의 오랜 먼지가, 그가 누웠던 공간만큼만 쓸려있었다. 밤중에 바닥 먼지를 쓸고 잠들 여유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로브에 달라붙은 먼지를 마저 털던 그는 그가 누웠던 자리의 옆에 무언가 그의 키보다 길다랗고 커다란 무언가가 남긴 자국을 발견했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바닥을 뒹굴었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자국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후 그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느정도 기운을 회복한 그는 폐가를 떠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의 발이 향하는 곳이 어딜지는 그도 몰랐다. 당장 생각이 든 것은 마물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딘가겠지만… 그가 머물고 지내던 마을은 이미 마물 점령지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운좋게 마물을 만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꽤나 긴 여행이 될 것이지만, 평소처럼 그가 그런 여행을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될대로 되라 정도의 마음이면 모를까.

 

한참을 그렇게 걷던 그는 어제 길드의 접객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일은 꼭 맞는 의뢰를 찾아드릴게요!!’

 

“그러게. 어쩌면 이런 나한테도 꼭 맞는 의뢰 같은 걸 찾아놨으려나.”  


큰 기대는 가지지 않은 채지만, 일단 한스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는 정처없던 발걸음을 다시 마을로 되돌려, 걸어나갔다. 




몇달동안 스토리를 썼다 지웠다 반복한 후 내린 결론: 다시 쓰자


전에도 말했다시피 늦더라도 완결까지는 어떻게든 내고 갈게. 


몇 달 걸려도 끝내는 게 맞는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