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1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593


2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26


3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57


4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88


5화 : https://arca.live/b/monmusu/101477707


6화 : https://arca.live/b/monmusu/101861677







“용사여, 이곳은 어디인게냐? 성당 무료급식소가 아닌 것 같다만?”


“네 년의 전두엽엔 쳐 먹는 것만 들어있나? 분명 사건 조사 하러간다고 말했을텐데?”


“쿠후후…! 날카롭게 반응하는 꼬락서니가 용사, 네 놈도 생리를 하는 모양이구나.”


“이런 미친 여우 년…”


“용사여, 생리통이 고통스러우면 짐에게 의논하거라. 하해같은 마음으로 약을 추천해주마!”


“네 년이 그러니까 왕위에 쫒겨난거다.”


대가리에 밥 쳐먹을 생각만 든 양친부재 여우 년과 함께 ‘암컷타락 한 시장’ 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한 이 몸.


그 대장정의 시작으로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양 수인 공무원으로 주소를 전해받고 시장의 저택에 방문했다.


아니.


거주자가 없을태니 방문이라기 보다는 비동의적 수색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겠군.


“시장놈…아니 시장년은 주말 동안에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지.”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일 그저 평범한 저택 외경.


어디 창문이라도 부숴지고 외경 주변에 잘 가꾼 화분들이 엎어져있는, 일련의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겉은 깔끔하다…그렇다면 처음부터 강압적인 방법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건가?”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에 불과하다.


고작 외부 전경을 살펴본 것으로 시장이 겪은 일들을 속단하기엔 무리니까.


본디 불법적인 추심을 하는 것들은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해서, 최대한 조용히 일처리를 하려고 하니까.


“아마 진실은 굳게 닫힌 대문 너머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끼이이이익ㅡ!


그렇게,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손잡이를 돌려 문을 활짝 젖힌 이 몸.


어느정도 예상했던대로 잠금 장치가 해제되어 아무렇지 않게, 쇠 긁는 경첩 소리와 함께 대문이 개방되었다.


“흠…”


정오를 알리는 뜨거운 햇살이 스며들어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내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살펴본 내부의 상황은…


“흐으음!”


자연스래 침음을 토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상당히 거친 녀석들이군.”


뭐, 어떻게보면 악덕 고리업자다운 행동양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체를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박살난 가구들.


폭력의 현장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찢겨진 쇼파와 갈 곳을 잃어 덩그러니 놓인 가구들.


실랑이 도중에 쏟아진 것으로 추정된 붉은 와인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방증하는지 나무 바닥에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뒤엎어진 서랍장은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남기고 있었으니.


“오호~ 완전 난장판이 아닌가? 돼지우리도 여기보다 깔끔 할 것이니라.”


마왕 역시, 이 몸이 느끼는 심정을 공감하는건가?


집 안에 들어온 여우년 역시, 참혹한 내부를 보고는 혀 끝을 차며 짧은 소감을 토했다.


“우선 집안을 천천히 수색하도록 한다. 분명 시장년이 이번 일을 겪게 된 정황상 흔적이 있을태니까.”


고리대금 업자놈들도 대가리가 있으면 필시 증거인멸을 했을 터.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완벽할 수 없기에 어딘가에 그들이 인지하지 못 한 작은 단서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증거를 최대한 모으고, 조합해서 어떻게든 실마리를 잡아야한다.


“마왕, 이 몸은 침실을 수색하겠다. 네 년은 거실 수납장을 중점으로 거실을 확인하도록.”


“쿠후후…! 마침 좋은 기회구나.”


“흐음? 좋은 기회? 네 년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거지?”


“쿠후후! 쿠후후후!!”


음흉한 낯색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마왕년.


그 모습은 누가봐도 악독한 간계를 속에 품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나, 일단 흘려 듣기로 했다.


저 년이 대가리 속에서 품은 생각이라봤자, 냉장고 털어먹을 생각 정도 하고있는게 분명하니까.


“…병신같은 년.”


그렇게, 마왕년을 뒤로 침실로 발걸음을 향한 이 몸.


삐꺽ㅡ!

 

끼기기기긱…


“흐음…”


반 쯤 부숴져 재기능을 못하는 문을 바닥 긁는 소리와 함께 억지로 열고 침실에 진입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들이군.”


대문에서 본 광경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굳게 닫혀진 침실 내부는 상상했던 그 이상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새 하얀 침대에 불규칙적으로 흩뿌려진, 상당한 양의 혈흔.


딱딱하게 굳어버린 검붉은 핏자국은 시간이 제법 흘렀음과 거칠었던 상황을 오롯히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무자비해도 정도를 넘은 무자비한 녀석들이다!”


얼마나 뒤지게 팼길래 무수한 강냉이들이 침대 맡에 굴러다니는건가?


이빨 요정이 단체 회식이라도 조진 듯 한 상황은 이 몸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머리털도 다 뽑아버리다니.”


바스락거리는 이질감에 무심코 시선을 발 밑으로 향한 이 몸.


러그 카페트 구석 구석 엉켜있는 샐 수 없는 머리카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잠자코 관찰하니, 작정하고 뿌리 통 째로 뽑아버린게 분명하다.


“잔인한 녀석들…! 메뚜기때도 초목 뿌리까진 뜯어먹지 않는 법이거늘!”


이빨을 보고선 반신반의했지만, 비참하게 뽑혀진 머리털을 보니 반신반의함은 확신으로 가득찼다.


뿌리까지 뽑아먹는 이런 잔악무도한 짓을 할 녀석들이라곤 고리대금업자 밖에 없을태니까.


이는, 다 년간 축적된 용사 빅데이터가 증명하는 바이다.


“쯔쯔쯧…! 용사여, 이 광경이 도대체 무엇이더냐? 지옥도 그 자체가 펼쳐졌구나.”


저 극악무도한 마왕성의 최고 경영자 출신마저 몸서리 칠 정도이니 탑급 중에서도 탑급인게 확실하다.


“우리 마왕군도 콧구멍으로 고추가루 푼 스프를 먹일지 언정, 머리카락은 건들지 않는 법이거늘…악마보다 더 한 자들이로다.”


“코로 스프 먹이는 것도 충분히 악마같은 짓이다, 이 머저리 같은…으음?”


마왕년에게 쿠사리를 먹이던 찰나, 순간 코 끝을 강렬하게 찌르는 스파이시한 흙 냄새.


잠시 스쳐갔음에도 후신경과 후세포가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냄새는 뇌리에 무언가 스쳐지나가게 만들었다.


“이 냄새는 뭐지? 여우 년의 정수리에서 나는 냄새인가?”


“으흠? 무슨 헛소리인게냐. 용사, 그대의 아가리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니더냐?”


당연히 당사자인 줄 알았던 년이 되려 의문을 던지는 상황.


어이없어하는 낯색을 보니, 진심으로 본인이 풍기는 냄새가 아니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여우 년. 진위파악에 나서야하니 재자리에 가만히 있도록.”


“진위…파악?”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오직 단 하나.


진위 파악이다.


지금 이 썩어문들어진 냄새의 원인이 저 년인지, 아닌지 분간해야하니까.


“용사여 진심인게냐? 진심으로 짐의 체취를 맡으려고 하는게냐? 가…가까이 오지말거라! 당장 멈추지 못할까!!”


“아가리 여물고 재자리에 얌전히 기다려라.”


“아…아무리 그대라도 짐의 체취를 맡는 건 아직 허…허용 할 수 없는 일이로다!”


“허용하고 안하고는 이 몸이 정한다.”


“오…오지 말라고 짐이 분명히 말했노라!!!”


기가 차서 낯색이 새파랗게 질린 마왕에게 가까이 다가간 이 몸.


콰아아악ㅡ!


“히꺄아아아아악!!! 지…지금 어딜 만지는게냐!!!”


“꼬리 털 뽑아서 세차용품으로 만들기 전에 가만히 있도록.”


“꺄아아아아악! 변…변태!!! 당장 놓아라! 당장 놓아라아아아악!!!”


“오래 걸리지 않으니 가만히 있도록!”


“끼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발버둥 치는 여우 년의 양쪽 귀를 쌔게 붙잡고는, 이윽고 정수리에 코를 들이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만약, 저 년이 풍긴 냄새라면 당장 수사를 멈추고 염산통에 집어 넣어 정화시키겠다는 각오를 하며…


“…꼬순내가 난다.”


…는 틀렸다.


이 몸의 추측이 완전히 틀렸다.


여우 년의 정수리에서 풍기는 냄새는 분명 대기중에 떠도는 스파이시한 냄새와 격이 다르다.


저 스파이시한 냄새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냄새니까.


그렇다면, 이 냄새의 주범은 누구인건가?


이 격실엔 오직 둘 만이 존재할 뿐인데, 어찌하여 이런 냄새가 나는건가?


“흐으윽…! 흐으으윽…! 쓰으으읍! 정절을 잃었다! 끄흐으으윽!! 용사에게 정절을 잃었다!!!”


“미친 년. 정수리 냄새 맡은 걸로 처녀 잃은 것 마냥 엄살피우지마라.”


“그대는…그대는 진짜…! 수인족에게 있어서 귀가 어떤 의미인지 정녕 모르는게냐!”


“귀가 귀지, 별 의미를 담고 지랄이군.”


“의미가 없다? 정녕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게냐!!!”


안색이 새파랗다 못해 시체마냥 파랗게 물든 채, 바닥에 주저앉은 마왕을 뒤로 또 다시 사색에 잠긴 이 몸.


“모쏠아다 강간마!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쓰레기 같은 새끼!!”


고작 귀 좀 잡힌걸로 빽빽대며 지랄 염병을 떠는 마왕 년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지만, 애써 무시하고 사색에 전념했다.


‘처음은 아니다. 분명, 이 냄새를 맡은 기억이 뇌 세포 한 켠에 자리잡아 있다.’


떠올려야한다.


지금 오감을 자극한 이 냄새야 말로,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을 단숨에 좁힐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니까.


‘…그래, 이건 도시에선 맡을 수 없는 특유의 흙 냄새다.’


흙 냄새임을 간파한 그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면.


문명의 이기가 닿이지않은 순수 그 자체의 대 자연.


그 대자연 속에서, 바람에 흩날려 바닥에 떨어지는 나뭇잎들.


그 나뭇잎들이 검게 물들어, 이내 바스라지며 만들어지는 토양.


분명 그 토양이 풍기는 냄새다.


혹자 ‘부엽토’ 라 칭하는 흙에서 나는 냄새다.


그리고, 이 부엽토하면 당연히 연상되는 존재는…


“…잡혔다.”


자극적인 냄새는 결국 망각했던 뇌 세포의 기억을, 편린의 기억을 되살렸다.


“진실이 잡혔다.”


드디어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이 비극을 초래한 존재의 실마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