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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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스로서도 그와의 재회가 이렇게도 우연히 극적으로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은 적당한 때에패밀리어를 회수하고그 핑계로 그를 만나러 간다든지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녀는 그런 뜬금없는 방문으로 인해서 한스에게 괜히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직접 만든 패밀리어는 안타깝게도 회수하지 않으면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까, 한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같이 있을 필요 또한 있었다.

 

결국 계획을 짜고다시 짜고실행 전에 파토내는 식으로 벌써 몇 주를 보내버렸다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더 나은 상황이라고 위안하면서.

 

그런데이런 상황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가 지금 보는 것처럼... 그녀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그것도 그녀 앞에 무릎 꿇은채로.

 

리코리스가 당황하는 와중에한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도 절대로 부탁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아직도 너희들이 밉고 두려워... ”

 

 

리코리스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그의 사무친 목소리에는그가 말한 그대로의 감정이 들어있었으니까

그 적의의 예리함은 무감각한 그녀에게도 닿았다

 

 

네가... 당신이 얼마만큼의 실력을 갖췄는지그래서 당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선 얼마나 지불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지만내 힘으로는 죽어가는 동생을 살릴 수 없어.”

 

 

한스의 과거에 대해서 리코리스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증오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는 그를 다시 만난 그 날 느꼈다.

 

그렇기에 그가 내뱉은 말의 무게 또한 그가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한 후 그에게 물었다

 

 

한스... 라고 하면 되려나분명 한스나는 당신에게 언제든지 내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내 이름을 알려줬지그렇지만 그걸 다른 사람을 위해 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당신이 대충 짐작하듯이내 도움은 꽤나 값이 비싸.”

 

한스는 약간 불안한 듯한 의문을 담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서였을까리코리스는 다음 말을 꺼내는 데에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당신한테 준 거야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에게그러니까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어째서야어째서그저 혈육이라서미안하지만 그런 이유론 납득이 어려워그러니 도움을 바란다면 나를 납득시켜주길 바래.” 

 

 

잠시였다아주 잠시동안만 그는 그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았다그러나 이번 일에 그의 증오를 드러내서 좋을 것은 없었다그는 발톱을 감추고 가시를 가라앉혔다

 

그녀의 말은 물론그녀의 진짜 생각과는 달랐다한스가 원한다면 사실 어떤 부탁이든 몇 번이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코리스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지만한스는 돌덩이같은 사내였으니까그런 사내를 이렇게 비굴하게까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동생이 미쳐버린건전적으로 내 탓이야.” 

 

 

한스는 고개를 떨구고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리코리스의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여동생은 미쳐버렸고나만 보면광증이 도져버려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어언젠가 제 정신이 돌아올 거라 믿으면서.”

 

 

리코리스는 가슴 한켠에서 약간의 쥐어뜯는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녀로서는한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다그러나 느꼈다.

 

여동생이 죽기전이든내가 죽기전이든해야 할 말이 있어그 말을 전해주기도 전에 가버린다면... ...”

 

 

한스의 마지막 말은 거의 흐느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스는 차고 있는 검을 그대로 풀어놓더니 그녀의 발치 위로 놓았다그리고 한층 더낮게 엎드려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동생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다 할게... 그러니까...”

 

 

한스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들어리코리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그녀는 그런 부탁은 거절할 수 없었다리코리스는 생각했다.

 

 

이건 반칙이야.’

 

 

리코리스는 무릎꿇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그가 흐느끼는 와중에도 그런 손길에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불쾌감과 떨림이 느껴졌다.

 

그러나그것을 그는 견뎌내었다리코리스 역시도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

 

 

어느 인적없는 빈 집의 방.

 

셋의 존재만으로도 좁게만 느껴지는 방은광증에 걸린 한스의 여동생이 격리된 방이었다.

 

그의 여동생을 진찰하던 리코리스는 한켠으로 지팡이를 치우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까다로운 상황이었다.

 

환자는이미 그 날숨으로 깃털 하나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미약하게 호흡하고 있었다.

 

이미 한스의 여동생의 숨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숨쉰다는 것은 영혼이 그 사람의 몸에 깃들어있다는 증표그리고 그것이 약해진다는 것은...

 

영혼이 육체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잠시나마 몸의 힘을 더해서 억지로라도 영혼을 붙잡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시도다부족한 끈을 억지로 당겨서 사용하는 것만큼이나의미없고 한계만이 가득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스이건 의술의 영역이 아니야어떤 의사도 이걸 치료할 수는 없어.”

 

“...”

 

 

온 세상을 뒤져봐도 그녀 수준의 의사는 한 손에 꼽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이것은 가망이 없었다

 

한스는 얼굴을 감싸쥐고 괴로워하고 있었다리코리스는 그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그녀가 관심있는 것은 오직 한스 그 뿐이기에그 외의 것들은 알 바 아니었다.

 

다만 한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느꼈다그리고 그것은 비록 그 이유는 알지 못하더라도리코리스에게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건... 또 다른 느낌이네한스 당신을 만나지 못할 때처럼 아프면서도그것과는 다른 아픔이야...’

 

 

아까처럼 가슴 한 켠이 시큰거리는 것은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이었다.

 

 

한스는 벽 한곳에 걸터앉아절망한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조금만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한스는 절망하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합당한 반응이었다.

 

의사로서의 그녀라면손을 놓고 이후의 일들은 모두 가족들에게 맡겼을 것이다.

 

그렇지만그것은 리코리스가 약속한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의 여동생을 살려내기로 약속했으니까

 

의술이 지닌 패를 전부 내려놓아도다른 패가 하나 남아있었다.

 

 

한스.”

 

“...”

 

방법이 없지는 않아.”

 

 

한스는 놀란 듯 눈을 치켜뜨고는 리코리스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의술의 영역은 분명 아니야그렇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삶으로 끌어오는 방법에는 의술만 있는 건 아니니까.”

 

 

리코리스는 자리에서 일어서서지팡이를 주웠다그것을 움켜쥐어 바닥에 세운 그녀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한스는 자신이 부탁한 상대가 다름아닌 수백년을 살아온 리치임을 떠올리고는잠시나마 절망을 잊고 긴장감에 몸이 굳었다

 

 

설마...”

 

그래지금부터 시도하려는 건 의술 보다는 강령술의 영역에 가까워.”

 

 

한스는 강령술이라는 말을 듣자치를 떨었다그에게 강령술이란 가족을 앗아간 사악한 마법이었다그것이 동생을 미치게 만들었다

 

거기에만일 그녀가 하려는 것이 죽은 동생을 되살리려는 행위라면...?

 

만일 그런 방법을 시행하려는 것이라면한스는 리코리스 이전에 그녀를 데려온 자기 자신을 죽도록 원망하게 될 것이었다.

 

리코리스는 그런 그의 우려를 파악하고빠르게 덧붙였다.

 

 

동생이 언데드가 되지는 않을 거야이건 그런 종류의 마법이 아니니까... 적어도 이 의식이 끝난 직후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해. ” 

 

 

한스는 일순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리코리스는 단호하게 경고했다.

 

 

그렇지만다른 강령술보다도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야그러니까당신의 의지와 각오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만 해.”

 

 

굳어진 한스의 가슴팍에리코리스는 지팡이의 끝을 겨누었다.

 

 

어떤 위험이 당신에게 닥치더라도동생을 구하는 선택을 할 거야?”

 

 

그래.”

 

 

리코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시 한번 대답할 기회를 줄게이건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야당신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위험을 크게 무릅써야만 하는 방법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방법이기도 하고이걸 하는 건 오직 당신이 바라기 때문이야그러니까 잘 선택해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마주하고도 침착을 유지할 수 있겠어공포 대신 이를 악물고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해?”

 

 

한스는 잠시동안 머뭇거렸다그러나 잠시뿐이었다이내 그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할 거야.”

 

어째서?”

 

“나는 그날 여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로 지금까지 살아왔어.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꼭 동생을 구하고 싶어. 그게 도박이라면, 내 목숨을 판돈으로 걸어야 한다면, 기꺼이 걸 거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것을그 강인한 결의를 리코리스도 느꼈다그렇기에 그녀는 서서히 지팡이를 내리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렇다면 됐어.”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말했던 의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진이 그려지고그녀가 그려놓은 소환진에서 각종 재료들로 보이는 것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그녀는 그것을 지켜보던 한스를 불렀다.

 

 

당신의 결의를 확인했으니이제 뭘 할지 당신도 알아야겠지.”

 

말해줘.”

 

 

리코리스는 잠시 손을 멈췄다그리고 날카로운 칼을 집었다

 

 

한스이제부터 우리는...”

 

 

창백한 달빛이 가득 담긴 듯한 새파란 칼날에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당신 여동생에게로 빙의할거야.”




그동안 마법사, 약사, 의사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리코리스의 본직은 사실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