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이젠 용사 아니야

글모음집




사람 아닌 것들이 내지르는 포효울부짖음이 들렸죠.

 

먹혀 죽은 이들은 그대로 좀비가 되어그들의 무리에 합류했어요.

 

도망치지 못한 마을주민들을 사냥했고비명소리보다 먼저 그들의 피와 살이 비산했어요.

 

해가 뜬다면모조리 이 악몽은 끝날 것이라지만.

 

해가 뜨기 전에살아있는 것들이 이 마을에 남아있긴 할까요.

 

 

엄마!! 아빠가... 아빠가...!!”

 

 

그중에 한 어린 소년은 운 좋게도 집으로 도망쳤어요.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아버지의 처참한 몰골을 발견했지요

 

어머니를 찾아 집안을 뒤지는 그는어머니를 곧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괴물들의 우두머리의 손에 붙들린.

 

 

선택해라선택하면한쪽은 살려주마.”

 

 

연약하고 힘없는 소년은 공포 속에서 고민했어요그리고 무거운 선택을 내렸어요.

 

엄마를... 살려줘,”

 

 

괴물은 오른손을 꽉 쥐었습니다오른손에 들려있던 어머니의 목을 꺾어버렸어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소년은 풀려난 자신의 여동생을 올려다 보았습니다여동생은 공포가 가득 담긴 증오로 오빠를 바라봤지요.

 

어째서...?”

 

 

괴물은 말했어요.

 

네가 버린 여동생을너는 어떤 감정으로 맞이하려나?” 

 

 

...

 

 

리코리스는 마음을 가다듬었다서로간의 감정동요가 거세지고 있었다

 

그 동요가 극에 치달으면 혼과 혼사이의 연결은 흔들린다그리고 그 흔들림이 연결을 끊어버리기라도 하면 다시 복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 되어버린다

 

단 한 방울의 물방울이 잔잔한 연못을 뒤흔드는 것처럼한스의 악몽 속에서 발견한 것의 존재는 그녀를 흔들었다

 

그러나 한스에게 닥친 위협이라는 상황이 그녀 감정의 흔들림을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제압했다수백년간 감정이라고는 느끼지 못한 존재치고는 능숙하게 잘 해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한쪽이나마 동요가 진정되니 연결이 한결 선명해졌다희뿌옇기만 하던 심상세계쪽 상황을 아직 흐리지만 형태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감은 있겠지만 그녀의 의지 또한 전달될 것이다.

 

 

선택해라.”

 

 

그것이 무감정한 눈으로 한스를 바라보며 양 손을 뻗었다그 양 팔에는 아까처럼 한스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존재와여동생이 들려있었다.

 

순간 그녀들을 본 리코리스는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떠올렸다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혀 한스.

 

선택한다면 한명은 살려주겠다.”

 

《그저 악몽일 뿐이야저건 강령술사가 아니야그저 강령술사의 패밀... 아니꼭두각시 같은 존재일 뿐이야.

 

 

그녀의 말은 그에게 들렸겠지만 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쥔 점을 더욱 강하게 쥘 뿐이었다

 

곧 그 칼이 휘둘러질 것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빠르게 목을 노려인형 따위에게 재생능력 같은 건 없으니까.

 

 

한스는 마침내 대답했다.

 

 

“...알겠어.”

 

 

한스는 고개를 들어 그것을 마주했다.

 

그것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한스의 악몽에 나왔던 것과는 달리 어떤 가학적인 웃음이나잔혹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어느 쪽을 가져가겠냐는 상인의 무미건조한 물음처럼 느껴질 정도로그것은 기계같았다.

 

한스는 그것이 인형일 뿐이라는 리코리스의 말을 조금씩 납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이 괴물아.”

 

 

그는 증오와 저주를 담아 그렇게 내뱉었다

 

그리고 그의 휘둘러진 검의 궤적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세 번 휘둘러진 검은 그것의 목을그리고 오른팔을마지막으로 왼팔을 잘라냈다.

 

그것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한스의 검이 양팔을 베었다.

 

평생을 마법만을 기예로 삼아왔던 리코리스는 그런 그의 움직임에 들리지 않을 탄성을 질렀다.

 

그가 동요한 것은 악몽을 직면한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었음을 리코리스는 비로소 깨달았다그에게서 흘러들어오는 씁쓸한 만족감이 그가 이 순간을 오랜 세월 고대해왔음을 알려주었다.

아무런 손도 써보지 못하고 가족을 잃었던 어린 소년의 후회는 이로서 끝을 맞은 것 같았다

 

한스는 검을 바닥에 내던지고 그것에게서 풀려난 여동생을 안아올렸다마침내 지켜낸 여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안나,”

 

한스... 오빠...”

 

안나미안해그날 너를 구해달라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

 

살아줘제발 살아줘나를 원망하고 미워해도 좋으니까.”

 

 

한스의 여동생 안나는 그런 그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오빠나는...”

 

 

그러나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그들 사이에서 되살아났다.

 

 

“...선택... 해라.”

 

 

한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검을 주으려 했지만 그것이 더 빨랐다한 손에는 검을 들고한 손에는 그의 어머니의 목을 쥐고 있었다마치 가로베인적 없다는 듯이 온전한 상태로.

 

 

네 선택은네 여동생인가?”

 

리코리스어떻게 된 거야...?”

 

《저,저건... 강령술사의 본체가 아니야그럴 수가 없어...

 

 

리코리스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그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차라리 끝끝내 몰랐다면자책은 하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당신의 여동생의 악몽이라면... 그렇다면 저건... 당신의 여동생이 생각하는 강령술사에 대한 모든 공포의 집합체... 

 

 

한스 쪽의 연결이 요동쳤다리코리스 본인도 자신의 상태도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억제하고 진정시킬 수 없었다.

 

짙고 검은 안개가 그들 사이를 가렸다더 이상 한스의 시선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외침은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그렇지만 리코리스는 절박하게 외쳤다.

 

 

《한스내가 틀렸어제발 그 곳에서 도망쳐야 해그건 당신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야!

 

《한스!!

 

《한스...?

 

 

어떤 응답도 없었다그저 일방향에 외치는 공허함뿐이었다.

 

연결이 끊어져 축축하고 어두운 골방으로 리코리스는 다시 추방되었다.

 

지팡이를 쥔 창백한 그녀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낡은 고목들의 껍데기는 그녀의 세게 쥔 손아귀 힘을 견딜 수 없었던 만큼 낡았던 건지 바스락거리며 부숴져갔다.

 

그녀는 지금껏 그래본 적이 없는 것처럼 섬뜩한 안광을 뿌렸다그 눈빛은 한스의 여동생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이 방법은 실패했다한스의 여동생은 다시금 자신의 심연으로 삼켜졌고한스는 그 심연의 아가리에 물려 깊은 바닥으로 끌려들어갔다.

 

한스가 기적적으로 제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거나그녀의 영혼의 동의따위는 얻지 않는 막강한 힘으로 그녀의 몸에 강령해 한스의 영혼을 꺼낸다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리코리스로서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에 리코리스는 분노했다그따위 선택밖에 강요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분노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저 그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을 뿐인데... 이 년이고 저 년이고...하나같이 훼방만 놓고 있잖아.’

 

 

그리고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이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녀의 책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분노했다수백년간 분노하지 않았던 죽은 혼에 그토록 선명하고 확실한 격노가 자리잡았다.

 

그녀의 강력한 마력이 한스의 여동생을 헤집고폭력적인 강령을 시전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리코리스는 고개를 반쯤 뒤로 돌려격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이런 때에만 너를 마주치는지는 모르겠지만빨리 말해네 아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까.”

 


 


그녀의 뒤에는 어느새 이전날 리코리스를 막아세웠던 부기가 조용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