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운 침실의 침대에서 금발의 소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근육이 가득한 강인하고 거대한 악마와의 전투였다. 하늘 높이 떠올라있던 악마의 내려치는 공격에 바닥이 일그러지고 도로는 완전히 파괴되어 이미 그곳은 왕도 내부라고 부를 수 없는 장소가 되었었다. 브레인과 자신이 앞에 서서 그 악마를 막았으나 겨우 일격 한 번에 전선이 붕괴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 여기는... “


" 일어났구나? “


눈을 뜬 자신의 옆에서 의자에 앉아 이불을 덮어준 것은 트레이시였다. 처음에는 라나 공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남모를 본심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그것을 겨우 억누르고 상체를 기울여 일어났다.


" 윽! “


갈비뼈가 몇 개 정도 부러진 것인지 가슴이 아프다. 손을 얹어 어디가 제일 아픈 것인지 살펴보려 했지만, 트레이시가 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 상처가 나을 때까지 무리하지 말랬어. “


" 그건... 앗! 여긴! 저는...! “


클라임은 고개를 숙였다. 보호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기절하여 깨어난 장소가 왕성이라니 참으로 한심했다. 왕성이 안전한 것으로 보아 얄다바오트는 무사히 격퇴되었음이 분명했지만, 라나 공주가 맡긴 임무를 무사히 끝마치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트레이시의 만류에도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상처가 꽤 큰 탓인지 금방 그 자리에 주저앉아 트레이시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 저는... 저는... 아무도 지키지 못 한 겁니까...? 그 거대한 악마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트레이시 씨. “


" 브레인 씨가 무찔렀어. 그리고 너는 모두를 지켰는걸? 다들 무사히 살아서 돌아갔거든. “


클라임이 듣기엔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분명 자신이 기절하기 직전, 기억대로라면 브레인 또한 악마에게서 겨우 공격을 받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로 향하는 붉은색의 광채가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레이시는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그녀가 블러디 소드의 능력을 발동하여 공격한 것은 맞으나 딱히 위력이 강한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격 덕분에 틈이 생겨 브레인이 공격할 수 있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 그런데 어째서 트레이시 씨는 여기에... “


클라임이 물었다. 분명히 전투에서도 승리하였고 모두를 지켰으며 자신만 다쳤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거대한 악마를 쓰러뜨린 공적이 있음이 분명한 트레이시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 전투가 끝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불꽃의 벽이 사라졌거든, 그 후로 다친 너를 브레인 씨가 업고 왕성까지 옮겨 주셨어. 라나 공주님께서 너를 여기까지 옮겨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아무래도 브레인 씨는 이전에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있던거 같아서 내가 옮겨줬거든. “


" 옮겨 주신 다음에는 트레이시 씨도 가셔도... “


" 응~ 나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봤자 별로 재미없거든. 오히려 너를 돌봐준다고 좋은 핑계를 댔지. “


" 아... 감사합니다... “


클라임은 마음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평민 출신의 인간이 라나 공주의 호위 기사가 된 후로 이렇게까지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녀는 재미없다는 핑계로 이곳에 남았다고 했으나 분명히 자신을 위해 그녀 자신의 시간을 희생했음이 분명했다.


" 클라임! “


" 아, 오셨다. 그럼 안녕! “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라나 공주가 클라임에게 달려들었다. 라나는 침대 근처에 앉아 클라임의 손을 잡고 안부 인사와 함께 떠나는 트레이시에게 감사 인사를 동시에 표했다. 클라임은 자신의 손을 잡은 라나의 따듯한 손길에 당황하여 금방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트레이시는 문을 통해 나와, 성의 정문을 나왔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분명 밤이었음에도 이제는 해가 중천을 넘어 저녁이 되어가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팔을 들어 올려 손을 선캡처럼 만들어 눈이 부신 해를 가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 음! 이제 어떻게 돌아가지? ‘







사실 그녀가 클라임을 옮겨 이곳에 온 이유는 어디로 가야할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만히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번 전투에서 자신의 역할은 마음껏 날뛰어도 좋다는 등의 이야기였으니 데미우르고스의 이야기대로 마음껏 날뛰었고 기적처럼 어디 하나 조금도 다치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아인즈 및 데미우르고스의 지시대로 트레이시에게는 손끝 하나도 대지 않고 전투를 이끌어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직접 듣지는 못한 트레이시는 아직 그것을 스스로 터득할 만큼의 학습을 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아인즈와 함께 전이문을 통해 오고 가는것이 전부였기에 나자릭으로 들어가는 길은 태어났을 때 주입받은 기억이 전부였다. 그녀의 기억 속의 나자릭은 넓은 평야와 들판 사이에 숨겨진 거대한 흙더미. 그것이 지도상에서 어디에 있을지를 찾아보는 것은 분명히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왕궁에서 나와 벌써부터 재건을 시작한 도시의 도로변을 따라 걸어 번화가 쪽으로 나아간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가짐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그녀조차 모르겠으나 처음으로 느껴본 자유로움에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여태까지 자신은 시키는 대로만 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딱히 시키는 대로의 삶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아인즈의 지시를 받을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끔은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에 남모를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 어이, 트레이시잖아. 이봐! “


저 멀리에서 지나가는 트레이시를 눈치챈 브레인이 소리쳤다. 그의 옆에는 수많은 여성이 즐비했다. 물론 그의 창부나 그러한 것은 아니며 하나같이 강인한 눈빛이 서려 있어 그들이 모험가라는 것을 트레이시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들은 아다만타이트 모험가인 청장미였다.


" 브레인, 이쪽은 누구냐. “


브레인에게 다가가자 가면을 쓴 여성, 이블아이가 말했다.


" 이번 싸움에서 나와 클라임이랑 같이 다닌 녀석이야. 트레이시 소개하지, 이쪽은 아다만타이트 모험가 청장미다. 다들 인사해두라고 언젠간 이 녀석도 너희들 같은 아다만타이트가 될지도 모르니까. “


" 라퀴스야. "


" 호오, 이녀석이 말이냐? 전혀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만... 이블아이다. “


" 티나. “


" 티아. “


" 가가란이다. 잘 부탁한다. “


모두가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 중 이블아이는 웃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말이다. 가가란이 건넨 악수를 받고 트레이시 또한 웃으며 고개를 허리까지 숙여가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 우리가 아다만타이트 라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 “


라퀴스가 허리를 숙인 트레이시를 말렸다.


" 높은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는거 아닌가요? “


트레이시는 이전 수호자들이, 그리고 자신이 아인즈를 맞이할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아 하고 손뼉을 치더니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예의 자세를 표했다.


" 이렇게 인가요? “


" 우아아아아 그만! 그만! 높은 사람 아니야! “


" 역시 사람을 무릎 꿇리는 귀신 보스. “


" 무서운 힘의 사용자 어둠의 귀신 리더. "


" 너희도! 둘 다 그만해! "


티아와 티나의 협공에 당황하는 라퀴스가 황급히 트레이시를 일으켜 세웠다. 트레이시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여전히 몰랐으나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 클라임은 괜찮은거냐. “


브레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 뭐... 조금 아픈것 같지만 깨어났어요. “


" 그런가, 다행이군... 미안하다. 너에게 떠맡겨서. “


브레인이 트레이시에게 클라임을 맡기고 떠난 이유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을 재건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보면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준 가제프 스트로노프를 위해, 자신도 힘든 몸을 이끌고 억지로 나선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는 클라임에게 라나 공주가 붙어있을 것이 분명했으니 따로 만나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붙어있다면 안전하리라 판단해 청장미 일행과 함께 술집을 향하고 있었다.


" 너도 갈거냐? “


" 브레인! “


브레인이 손으로 술을 들이켜는 포즈를 취하며 묻자, 미성년자 같은 트레이시의 외모에 라퀴스가 다급하게 다그쳤다. 브레인은 딱히 술이 아니더라도 회식 자리에 참여하는건 문제가 없다며 대답했지만, 트레이시는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거절했다. 아인즈가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모임에 참가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되리라,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 그러냐. 그럼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보자구. “


손으로 가볍게 인사하고 떠나가는 그들 중, 푸른색의 리본을 단 닌자. 티아 만이 트레이시를 지긋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가 '또 보자' 라는 단어를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만으로 트레이시에게 보냈으나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청장미와 브레인이 떠난 지금,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아 자신의 위치를 살폈다. 이번 전투에서 몇 마리의 악마를 쓰러뜨리긴 했으나 자신이 제대로 얻은 것은 없었다. 혼자서 무엇을 이뤄낸 것은 몇 개나 되겠는가. 갖고 싶다고 마음먹은, 겨우 인간 한 명인 클라임 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칠드런 메이커에서 지원하는 기본적인 캐릭터 세팅과 이세계 라는 특수성 그리고 아인즈라는 스켈레톤 종족의 언데드의 자식이라는 설정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트레이시는 아인즈에게서 감정이나 마음이라는 것을 반쯤은 제대로 물려받지 못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여기 계셨습니까. “


어떻게 해야 자신만을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트레이시가 고개를 돌렸다.



***



나자릭으로 돌아온 아인즈는 자신의 방에서 이마를 짚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데미우르고스의 계획을 멋지게 해결했다고 잘했다 나 자신,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하나의 존재를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샤르티아부터 데미우르고스까지 빠뜨린 것은 없다고 생각하려던 찰나에 이곳에 한조가 복귀해 트레이시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 이 바보! 분명히 주변에 한조를 대기시켜 두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까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


왕성에서 그녀와 헤어진 후, 아인즈는 용병인 한조에게 소환해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주변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절대로 남들에게 들키지 말고 그녀를 도우라는 명령을 내려주었다. 그것이 트레이시 일행이 스케일 데몬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후 한조는 사건이 끝나 복귀. 그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 아니, 지금이라도! 한시라도 빨리 트레이시를 나자릭으로 데려와야 해! 갑자기 가제프 수준의 적이라도 만난다거나 해서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


그녀가 죽으면 자신의 레벨을 잃는다. 그러한 끔찍한 설정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지 확실치는 않았으며 그것을 자신이 직접 실험해 볼 만큼 아인즈는 멍청하지 않았다. 위그드라실에서의 설정이 대부분 유지되는 이세계에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결과를 확인하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인즈는 샤르티아를 세뇌한 미지의 적에게도 들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인벤토리에서 여러 가지 탐색형 주문이 담긴 스크롤과 함께 탐색 방지형 스크롤 등을 뭉텅이로 꺼냈다.


' 내 레벨이 떨어진다는 것은 내가 약해진다는 것. 더불어 나자릭의 지배자라는 나의 위상이 떨어질 염려도 있어, 이건 보통의 손실이 아니야. 그러니 지금은 어떤 손해라도 감수하고 사용해야 해! ‘


그렇게 생각하고 스크롤을 사용하려던 순간에 그의 머릿속으로 전언이 울렸다.


『아인즈 님.』


" 뭐냐, 알베도. 지금은 굉장히 바쁘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아니, 무슨일인지 들어보마. “


이전 샤르티아의 건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때 엔토마의 전언을 끊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섣부른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빠르게 몸소 익힐 수 있었다.


『트레이시 아가씨가 아인즈 님과의 면담을 요청 하였습니다만...』


" 그런가. 알았다 금방 가마. “


전언이 끊긴 아인즈는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조금 전과는 달리 아주 천천히 스크롤들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어딘가 로브에 먼지가 묻은 곳은 없나, 거울을 바라보며 자세는 잘 잡혀있나 한참을 뜸을 들이고 나서야 전이문을 통해 응접실로 나섰다. 자신의 걱정이 괜한 걱정이었나 같은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단지 걱정한지 몇초도 지나지 않아서 해결이 되어버린, 약간은 어이없는 상황과 더불어 지배자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트레이시가 나자릭 내에서 지내고 있는 방은 9계층의 로열 스위트중 한곳이지만 대부분은 아우라와 마레가 수호하고 있는 6계층의 암피테아트룸에서 훈련을 하며 지낸다. 알베도가 따로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의 6계층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 아인즈는 암피테아트룸의 한가운데에서 전이문과 함께 나타났다. 아인즈가 나타남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 리자드맨들과 트레이시 그리고 아우라와 햄스케가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 평소의 그 모습인가, 그보다 대체 트레이시는 언제 와서 이러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보다 이번엔 딱히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훈련을 시작한건가? '


" 괜찮다. 하던것을 계속 해라. “


리자드맨 면면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훈련에 들어갔다. 그 옆에서 자신이 이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 맨 처음 소환했던 죽음의 기사 또한 햄스케의 옆에서 그들과 함께 훈련을 재개했다. 훌륭 하구나 우리 회사는 하고 아인즈는 흐뭇한 표정으로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본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인즈에게로 직접 찾아오는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아인즈가 그녀만큼은 예외로 둔 이유는 부모라는 이유의 변덕이었을까 무언가 자식이라면 조금 특별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던가 어디에 있든지 달려가는 부모의 마음을 체험해보기 위해 당분간만 유지하던 내용이었다.


' 하지만 몇 번이나 스스로 찾아와 봤지만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란 말이지... 다음부터는 그만둘까. ‘


아인즈는 평소보다 진중한 표정인 트레이시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먼저 어떻게 돌아왔는지부터 물어볼 생각과 무슨 목적으로 면담을 요청했는가, 마지막으로 이후의 방침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 오셨습니까! 아인즈 님! “


아우라가 말했다.


" 고생이 많구나, 아우라. “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인즈 님께서 명령하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맡겨만 주세요! “


아우라가 기쁜 얼굴로 팔을 들어 올려 손을 꽉 쥐며 기합을 넣었다.


" 그래서, 우선은 트레이시. 전투는 잘 끝냈느냐. “


아우라와 여러 인원이 근처에 있는 이상 데미우르고스에게 일임했던 이번 일에서 그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대놓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아인즈는 그녀의 안위만을 적당히 물어보는 선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로 결정했다.


" 네! 아니... 아니요... 무언가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진중했던 그녀의 표정에는 서글픔이 담겨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 음? “


그러나 아인즈는 이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 이전과 같은 걱정인것이냐. “


트레이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포츠에서 자신과 체급이 맞지 않는 상대를 연속으로 만나 계속해서 패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은 나락으로 내려갈 것이다. 만약 위그드라실 에서 자신이 PVP로 실력에 맞지 않는 상대를 연속으로 만나 전부 패배했다면 아이템이나 경험치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마음 쪽이 먼저 무너졌을 것이다.


" 이전에도 말 했었지 않더냐,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


"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이번에는 나약한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에요! “


"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것은 정신적으로 한걸음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아인즈는 트레이시가 어떻게 여기에 혼자 돌아온 것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으나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스스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자신을 불렀다는 것에 있었다.


" 그래서, 무슨 용무지? 아, 참고로 이후부터는 너도 다른 수호자들처럼 나를 직접 찾아와야 한다. 네가 이번에 나자릭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지. “


" 예? 그럼... 항상 나베랄 씨에게 부탁해야 하나요? “


" 아. “


아인즈는 그제야 어떻게 왕도에 있던 트레이시가 이곳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모험가 칠흑 팀이 에 란텔로 복귀한 뒤, 자신은 나자릭으로 복귀하고 나베랄만이 왕국 내부에 남아있었다. 그러니 그녀와 연락을 취할 수단은 나베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데려왔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 깊게 생각해서 데미우르고스가 연락을 취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 아니, 그것보다는... 흐음... “


' 트레이시가 전언이라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럼 적어도 가까운 장소는 혼자 내보내더라도... 역시 그건 너무 위험한가... '


" 그, 그건 스스로 배워보도록 하려무나. 어쨌든 자꾸 말을 끊게해서 미안하구나, 무슨 용무더냐. “


" 이대로는 저는 너무 느려요! 더 강해지고 싶어요! 적어도... 마법의 수행을 하고싶어요! “


" 마법... 을 말이냐? “


" 네! 코퀴토스 씨는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고 하시고... 엔토마 씨는 아버지 같은 지고의 분들께 창조된 순간부터 마법을 쓸 줄 알게 되었다고 하시니까... 아버지라면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


그녀가 마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지 몇 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그녀가 생각이라도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방금 자신이 그렇게도 생각한 만큼 그녀가 바라는 마법 성장의 방향성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조차도 마법을 가르치는 것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인가... “


아인즈는 생명정수를 사용해 그녀의 HP를 확인해 보았다. 레벨이 올랐음에 따라 분명히 클래스를 습득했을 터다. 리자드맨과의 전투를 제외한 대부분은 근접 무기를 빌려주었기 때문에 전사 계열의 클래스를 습득하고 있으리라 생각되고 있었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이전 그녀가 리자드맨과의 전투에서 그리고 그녀가 느낀 감정에 따라, 명령을 내리는 커맨더 계열, 그것도 아니라면 적을 지배하는 도미네이터 계열의 클래스가 분명히 올랐으리라.


" <마력정수(魔力定數) 「Mana Essence」> “


다음으로는 마력정수를 사용해 그녀의 MP를 확인해 보았다. 본래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직종은 MP나 마법공격력이 늘어나는 일이 없다. 현재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에 마법과 관련된 작업은 없었으니, 위그드라실에서의 레벨업과 마찬가지라면 그녀의 클래스에 따라 딱히 MP가 늘어나지는 않았으리라. 혹시 아예 MP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아인즈의 걱정은 다행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약하지만 최대 MP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 하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위그드라실에서는 간편하게 창을 열고 버튼을 몇번 누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으나 현실이 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아인즈는 마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것은 당연하게도 이미 자신이 배운 마법은 전부 마음속 깊이 떠오르며 자신이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할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니, 어쩌면 그렇다고 멋대로 단정 짓고 있었을지도 몰라. '


아인즈 또한 이 세계에서의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 세바스의 조사에 따르면 이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마법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부유판 이나 경보 등은 위그드라실에는 없는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인즈는 자신이 배운 마법의 갯수제한 그 이상을 배울 수 있는가, 그러한 오리지널 마법들을 자신은 배울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했다.


" 미안하구나, 나도 너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좋은 기회로구나. “


아인즈는 곧바로 데미우르고스에게 전언을 보냈다. 아인즈는 이 근방 국가 중에서 마법사를 육성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어디인가 하고 물었다.


『네, 세바스에게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주변 국가 중에서 마법에 가장 견문이 높은건 바하루스 제국으로 예상됩니다. 그들은 마법사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기관도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예상은 했습니다만, 코퀴토스에게 들은 대로 아가씨께 마법을 배우게 하시려는 겁니까.』


" 음? 어어, 역시 데미우르고스로구나,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아인즈 님, 저는 그러한 인간의 교육 기관에 아가씨를 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어떤 지식이 주입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효율적이지 못한 일대 다수의 교육은 성장 속도를 느리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보다는 나자릭의 수호자들에게서 일대일의 속성 과외를 함이 어떨까 싶습니다.』


확실히 데미우르고스의 의견은 효과적이다. 학교에서 배우기보다 학원이나 과외에서 가르치는 정보가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아인즈는 그녀의 성장도 할 수 있고 이 세계에서의 학습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음, 역시 그렇겠지. "


' 역시 그런건 직접 경험해보는 쪽이 좋은가... ‘


『아! 설마 아인즈 님께서는 그 이후를 보고 계시는 겁니까!』


" 음? “


고민에 빠져 약간의 뜸을 들인 아인즈에게 데미우르고스가 소리쳤다. 전언을 통하고 있음에도 놀라움과 기쁨에 찬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이 데미우르고스 아인즈 님께서 생각하시는 미래를 보지 못한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언으로 할 수는 없겠죠. 바로 가겠습니다!』


" 아니, 아니! 괜찮다 데미우르고스! 정말로 오지 않아도 괜찮다! 전언으로도 충분하다! “







아인즈는 여태까지 그러한 적은 없었으나, 또 자신만 알지 못하는 이야기로 데미우르고스가 신나게 떠들면 어딘가에서 일이 잘못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언을 통해 데미우르고스와 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우라와 트레이시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져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인즈 님께서는 추구하시는 세계 정복이라는 발판 중에서 바하루스 제국의 밑바닥부터 씨앗을 심어두시려는 것이로군요!』


' 세계정복이라고? '


『확실히 외부의 조사만으로는 내부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리 에스티제 왕국 내부에서 정보를 조달해줄 내통자가 필요, 바하루스 제국의 내부에는 아직 까지는 따로 작전을 펼치지 않았습니다만... 아인즈 님께서 바라신다면 그녀를 여덟 손가락에게 지시해 왕국내 시민으로 변장시켜 잠입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아! 아인즈 님께서는 여기까지 보신 겁니까!』


데미우르고스의 말에서 아인즈가 이해할 수 있었던 내용은 겨우 트레이시를 인간으로 잠입시킨다는 내용뿐이며 그 외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인즈는 차라리 이렇게 모르고 있을 바에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어필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아니다, 데미우르고스. 너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그저 순수하게 그녀의 성장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녀를 제국이든 왕국이든 마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아니 그녀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그러니 딱히 입학 같은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잘 알아들었겠지. 정말로! 다른 목적은 전혀 없다! “


데미우르고스는 침묵했다. 주인의 말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숨어있다. 그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 지혜라는 선물을 내려주신 지고의 존재에게 바칠 유일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며, 다른 목적은 없다. 처음에는 아인즈가 그녀를 바하루스 제국의 마법 학교에 입학이라도 시키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자 그와는 반대로 딱히 입학과는 관계없이 성장에만 집중한다는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 음? 데미우르고스? "


『이해했습니다! 설마 이미 제가 제안할 계획까지 눈치채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어쩌면 아인즈 님이나 되는 분이라면 이미 같은 계획을... 그 이상을 가지고 계셨던 걸지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아인즈 님! 그럼 계획을 시작하기 위해 지금부터 바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 ... “


데미우르고스의 말에 아인즈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 부탁하마, 데미우르고스. “


' 될 대로 돼라. ‘


아인즈는 전언을 종료했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 헛웃음을 내 짓는 아인즈의 모습에 아우라만이 침을 꿀걱 삼켰다.



***



나자릭의 제 9계층의 집무실. 알베도는 이번 얄다바오트 사건의 후처리를 위해 아인즈 대신 남은 잡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모습은 정돈되어 있으나 서두르는 기미가 보이는 데미우르고스가 다가왔다.


" 무슨일일까, 데미우르고스. “


" 아인즈 님께 직접 지시받은 내용을 하달하러 왔습니다 알베도. “


" 아인즈 님께서 직접!? "


알베도가 크게 놀라 자신이 하던 업무도 멈추고 데미우르고스에게 물었다. 그런 알베도에게 데미우르고스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심 자랑했다.


" 그럼 우선... 그 리자드맨들부터 호출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