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염구(火炎球) 「Fire Ball」>! "


둥근 화염의 구체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불길로 이루어진 길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수십미터를 날아가 공중에서 폭발한다. 바하루스 제국과 카체평야의 사이, 사람의 손길이 딱 끊어질 위치에서 두 소녀가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근처에서 두 리자드맨이 주변을 끊임없이 수색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 이제 좀 익숙해졌어! "


" 정말로 굉장해... 어떻게 제 3위계 마법을 그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거야? "


자신은 그 정도의 마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사용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반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나타나 거액의 돈을 건네며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던 소녀는 더 이상 자신이 가르쳐야 할 존재가 아닌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단 하루만에. 아르셰는 혹여나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닐까 하고 그녀의 마법 위계를 확인해 보았으나 여전히 보이는 것은 1에서 2위계. 그런 그녀가 3위계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에 조금 의구심은 들었으나 자신이 보는 위계의 척도는 이쯤에서 이쯤이다 정도의 어림짐작이기에 약간의 차이는 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가 사용하는 화염구는 아버지가 주신 이 지팡이에서 사용하는 거라니까! "


" 그건 나도 알아... 그렇지만... "


아르셰가 보아온 마법의 무구들은 하나같이 소유자가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지지 않으면 발동할 수 없는, 쉽게 말하면 직업과 레벨의 제한이 걸린 장비들 뿐이었다. 그러나 아인즈가 건네준 초보자용 스태프는 위그드라실에서 초보자가 저 레벨에서도 사냥하기 쉽게 딱히 MP 소모 없이도 화염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기에 아르셰가 그 점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까 이따금 당신은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


아르셰는 아차 하고 거기에서 말을 끊었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서슴없이 꺼낸 모습에 자신이 이렇게나 풀어질 줄이야, 하고 자책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 듣고싶어? "


트레이시가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 표정은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르셰는 한번 더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거절했다.


" 필요하지 않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 "


" ...그래. "


트레이시가 생긋 웃었다. 그 모습에 아르셰가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 자, 자! 이번에는 다른 마법을 배워보자. 분명히 물어봤던 마법이... 인간종 매료였지. "


트레이시가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행동에 아르셰가 살짝 당황했다.


" 그렇지만, 나는 그 마법은 사용할 줄 몰라. 이러한 마법이 있다 라는 정도는 알지만... "


화염구라면 자신의 뇌격과 비슷해 그것을 응용해 가르쳐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전혀 모르는 마법 계열이라면 달랐다. 인간종 매료는 정신계의 마법.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들 대부분은 공격계열이나 보조계열이었기에 그것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뿐 아니라 정신계 마법은 때에 따라서는 범죄로 취급되기에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거리낌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정신계 마법이라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


워커들 사이에서도 마법사는 드물었다. 하물며 워커가 상대하는 대부분의 적들은 카체평야의 언데드와 하급 몬스터였다. 언데드는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고, 하급 몬스터는 정신계 마법 보다는 공격계 마법이 상대하는 편이 쉬웠다. 그런 워커들에게 정신계 마법을 배울 여력은 드물었다. 고민하는 아르셰의 대답을 기다리며 트레이시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공격을 연습했다. 다음에는 이렇게 휘두르면서 날려볼까 저렇게 휘둘러 볼까, 적이 가까이 온다면 휘둘러서 공격하는 것도 연습해야겠지 하며 마치 봉을 다루듯 지팡이를 돌리다가 떨어뜨려 그것을 줍기를 반복했다.








" 아야! "


" 풋... 후후후... 후하하하하. "


공중에서 지팡이가 떨어져 트레이시의 머리를 콩 하고 찍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아파하는 트레이시를 보며 아르셰가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트렸다. 이렇게 크게 웃어본 것이 얼마 만일까. 아르셰가 지팡이를 주워 트레이시에게 건넸다. 트레이시가 고개를 위로 돌려 자신을 보는 아르셰에게 웃으며 지팡이를 받아들고 일어섰다.


" 창술이라도 배울 셈이야? 뭐, 정신계 마법은 어쩔 수 없지. 그건 다음에 해보자. "


" 어쩔 수 없나... "


트레이시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슬슬 점심시간인데 돌아갈까. "



***



노래하는 사과로 돌아온 아르셰와 트레이시를 반겨준 것은, 진중한 얼굴로 모여있던 나머지 포사이트 멤버들이었다. 어딘가 무섭기도 한 표정에서 아르셰가 의아함을 느껴 마찬가지로 표정을 굳혔지만 헤케란이 금세 표정을 풀며 아르셰를 반겨주었다.


" 오늘의 연습은 끝난거야? "


" 으응 아니, 우선은 점심시간이라 복귀했어. 저기... 무슨 일 있어? "


" 우선 자리를 구석으로 옮기자, 오늘 들어온 의뢰에 관한 일도 있었고 너가 없는 동안 로버딕이 애좀 썼거든. 아, 그리고 트레이시 당신도 와 줬으면 해. "


" 나? 나는 왜? "


" 중요한 이야기니까 부탁하지. "


아르셰가 트레이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길래 그녀까지 말려들게 하는 것일까.


" 괜찮겠어? "


아르셰가 물었다. 트레이시는 딱히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자, 그럼. "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병풍 같은 나무 칸막이를 빙 두르고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은 포사이트와 트레이시에게 헤케란이 지도를 꺼내 펼쳤다.


" 우선은 이번에 새로 맡은 의뢰부터 이야기할게. 이번 의뢰주는 페멜 백작. 의뢰 내용은 유적, 지하분묘로 보이는 건물의 조사야. "


" 지하분묘? "


지하분묘라는 말에 트레이시가 귀를 쫑긋 세웠다.


" 보수는 선금 200 후에 150. 선금이 더 높은 특이케이스에 또 결과에 따라 추가 보수도 준다고 해. "


이러한 이야기가 흘러가 포사이트의 평소 일과가 흘러갔다. 의뢰를 내건 사람의 배경과 의뢰의 내용을 조사하고 목표를 조사한다. 이러한 행위는 일류 모험자 팀이었어도 똑같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지하분묘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트레이시가 집중해서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그러나 로버딕이 꺼낸 지도에 표시된 X 마크는 분명히 나자릭을 향하고 있었지만, 근방의 지리나 지도를 볼 줄 모르는 트레이시는 그것이 나자릭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아르셰. 널 만나러온 남자가 『푸르트의 계집에게 전해둬라 기한 다됐다고.』 하고 이야기 했어. "


로버딕과 이미니가 아르셰를 바라보았다. 아르셰는 이전 포사이트 멤버들에게 자신이 큰 빚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헤케란은 이번 임무의 보상을 이야기하고 아르셰에게 보상의 값어치를 미리 알려준 것이다.


" 설마 다들 나 때문에 임무를 맡으려는 거야? "


" 그럴리가 있냐. 너 때문에 맡는게 아니야. 너 덕분에 맡는거지. 우리를 그동안 도와준건 너라구. "


" 뭐 좋은 기회잖아~? 오랜만에 제대로된 임무인걸. "


" 미지의 분묘니까요. 분명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을겁니다. "


" ... 고마워. "


아르셰가 한번 작게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 이전에 트레이시 덕분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받은 그 날 또 돈을 빌릴 줄은 몰랐어. 그러니 이제는 부모님께 직접 이야기하겠어. 더 이상 돈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여동생들은 데리고 나갈거야. "


" 갈 곳은 있는거냐. "


헤케란이 물었다. 아르셰는 조금 고민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트레이시를 향했다.


" 응. "


트레이시가 아르셰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 ... 그래. 좋아, 그럼 이번 임무는 다 같이 찬성하는걸로. 라고 하고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만. "


이야기가 끝나가려던 찰나에 헤케란이 다시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 트레이시, 이번 임무, 당신도 와주지 않을래? 선금은 무리겠지만 대신 보수로 받는 금액은 절반 줄게. "


" 헤케란, 그게 무슨 소리야? "


아르셰가 깜짝 놀라 물었다. 


" 실은 아르셰가 없는 동안, 빚쟁이가 찾아왔을 때 모두가 의논했습니다. 아르셰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거라고 말이죠. "


로버딕이 물을 한잔 벌컥 들이켰다. 그럼에도 자신의 긴장은 풀리지 않아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 아르셰, 이번 의뢰가 끝나면 당신은 여동생을 데리고 간다고 했죠, 그렇다면 더 이상 모험자나 워커로 일하기는 힘들겁니다. 그러니... "


즉 포사이트에서 아르셰를 제외하고 트레이시를 영입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이해한 아르셰는 조금이지만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당연히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해 말을 잇지 못하는 로버딕을 대신해 헤케란이 자신의 품에서 금화로 가득한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 이번에 받은 선금이야. 모두 너한테 줄게. 퇴직금이야. "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나를... "


" 해고 같은게 아니야 아르셰. "


당황하는 아르셰의 손을 이미나가 살며시 잡았다.


" 동생들이 있잖아. 너의 능력이라면 밖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 돈은 너에게 주는 우리 포사이트의 이별 선물이야. "


말을 잇지 못하는 아르셰를 포함해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트레이시는 선뜻 주머니를 잡아 들고 아르셰에게 건넸다.


" 자! 너 준다고 하잖아. "


딱히 큰 의미는 없었다. 단지 자신을 부른 목적을 떠나 다른 이야기로 인해 진행이 멈춰있는 것이 답답해 빨리 끝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게 전해졌다. 여기서 선뜻 아르셰에게 이제 팀에서 제외한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포사이트는 오랫동안 함께해온 팀이며 반쯤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 이별은 각별했고, 또한 누구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떠나보내야 할 때는 필요한 법이며 그것이 지금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그들에게서 트레이시의 작은 행동은 아르셰를 제외한 포사이트가 바라는 결과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 그치만 난... 나는... "


" 뭐, 걱정 하지마. 이번 임무까지는 함께니까. "


이미나가 활짝 웃었다. 아르셰는 그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거대한 저택의 응접실에서 귀족풍의 옷을 입은 두 명의 남녀가 한 명의 소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 이제 난 당신들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겠어! 여동생들과 집을 나갈거야! "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아르셰는 방을 나섰다.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그녀의 부모가 한소리를 하는 듯 소리쳤으나, 마치 동물이 짖는다는 듯 그 소리를 듣지도 않고 방문을 쾅 닫으며 방의 문에 기대었다.


" 부모라는 사람이 참 너무하네. "


그런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트레이시였다. 조금 옆에서는 리자드맨의 노예들이 아르셰의 동생들을 팔에 얹고 놀아주고 있었다.


" ... 이제 부모같은 것도 뭣도 아니야. 빚 때문에 망하든 죽든 이젠 상관하지 않겠어. "


아르셰가 입술을 깨물었다.


" 이전에 한 이야기... 이번 모험이 끝나면... 가도 될까... "


" ... "


트레이시가 아르셰의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얼마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