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여관, 모두가 긴장을 늦추고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지만 그들 중 네 명은 그러지 못하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들의 동료 한 명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를 하는 한 소녀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긴장한 이유는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 가진 돈은 이것뿐이라 부탁해도 될까? “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 자리에 동전을 몇 개 꺼내 들었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로 어떤 금액으로 매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바텐더에게서 자신들의 정보를 캐낼 정도의 재력이다. 아마 금화 몇 개 정도 나오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 이 여자 진심인가? ‘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다고 생각 합니다만... ‘


헤케란과 로버딕이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앞에 있는 탁자에 떨어진 동전은 백금화. 한 개나 두 개 정도가 아닌, 수십 개의 금화와 교역공통백금화였다. 금화는 제국의 동전은 아니었으나 왕국의 화폐로도 제국에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그들이 더욱 놀란 것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가진 돈은 이것뿐이라고 말했으나, 동전을 꺼낸 뒤 주머니를 다시 집어넣을 때 들린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진심이야? “


이미나가 탁자를 탁 치며 일어섰다. 사실 포사이트 그 누구라도 그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것은, 이만한 재력의 소유자가 이 정도의 돈을 주기로 했다면 여기 있는 누구라도 그 돈을 바랄 테니까. 그것을 자신들만이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조용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 아! 너무 적었어? 그러면... “


" 그런게 아니야! “


" 이미나! “


" 읏... 뭔데! “


헤케란이 조용히 이미나에게 눈치를 준다. 이미나가 눈을 흘깃 돌려 주위를 살펴본다. 다행스럽게도 누구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이미나가 천천히 자리에 다시 앉고, 헤케란과 로버딕이 트레이시를 살펴보며 뜸을 들였다.


" 뭐, 솔직히 돈은 갖고 싶긴 하지만... “


헤케란이 그렇게 말하며 아르셰에게로 눈을 돌렸다. 따지고 본다면 이것은 의뢰, 그것도 아르셰를 지목한 지명의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번 안건은 순전히 아르셰의 의견에 달려있었다. 또한 받는 돈은 전부 아르셰의 것이다. 아르셰는 묵묵히 탁자에 올려진 백금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음... "


그녀가 제국의 귀족이라면 이야기가 빠르겠지만, 트레이시ㆍ울ㆍ고운 이라는, 이 주변에서는 이름이나 성도 처음 들어보며, 자주 볼 수 없는 아인종을 노예로 두 마리나 데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이 근방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수상함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워커의 존재였다.


" 어떻게 할래 아르셰. “


" 받을게! “


" 와! 정말이지! “


트레이시가 기쁜 얼굴로 아르셰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 대신 이 돈은 선금으로 받겠어. “


" 응! 물론이지. 그러려고 꺼낸 돈인걸. “


" 하지만 나한테서 큰 기대는 안 하는게 좋아. 나도 가르치는 건 잘하지 못하니까. “


" 괜찮아~ 괜찮아~ 그럼 바로 시작할까? “


"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시작하자. “


" 음... 그래,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로 다시 올게, 그러면 될까? “


트레이시의 말에 아르셰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시는 기쁜 얼굴과 함께 입에서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리자드맨 노예와 함께 노래하는 사과를 나갔다. 트레이시가 떠난 탁자에서는 헤케란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탁자에 올려진 백금화를 한데 모아 양손에 올려 짤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동전을 흔들었다.


" 그만좀 해. 그 돈은 아르셰 꺼잖아. “


" 아얏. “


장난치는 헤케란의 머리를 이미나가 크게 한번 후려쳤다. 다시금 동전이 탁자에 떨어져 소리를 낸다. 로버딕이 작게 웃으며 동전을 모아 아르셰에게 건넸다.


" 내일부터 바빠지겠군요, 아르셰. 그러니 이 돈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


" 응, 고마워. “


" ... 무슨 일 있는겁니까. “


" 응? “


투닥거리는 헤케란과 이미나를 놔두고, 로버딕이 조용히 아르셰에게 물었다.


" 금화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괜찮으신거죠? “


아르셰는 말없이 동전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음료를 들이켰다. 가득 찬 컵을 한 번에 비우고는 거칠게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이미나와 헤케란도 싸우는 것을 멈추고 잠시 아르셰에게 집중했다.


" 빚이 있어. “



***



조금 전의 여관과는 비교될 정도로 어두운 거리. 해는 저물어 미약한 거리의 등불과 달빛만이 이곳을 비추고 있었다. 검은 갑옷의 여성과 그 뒤를 따르는 두 마리의 도마뱀. 트레이시는 자신이 묵을 곳을 찾기 위해 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아아아~ 미리 여관도 찾아둘걸. “


그녀가 마법 학원이나 다른 장소도 아닌 아르셰에게 까지 찾아 가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리자드맨의 호위와 동시에 마법 학원에 입학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마법 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마법을 배우기 위해 제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리 에스티제 왕국에는 마술사 조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들었으나 제국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결국 마지막 방법으로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모든 여관과 주점에들려 근방에서 유명한 매직 캐스터에 관한 정보를 돈으로 매수했다. 대부분은 플루더 파라다인 이라는 제국의 궁정 마술사를 이야기했으나 그자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고, 포기하려고 할 때쯤 발견한 것이 아르셰였다.


" 하지만 아가씨, 저희는 아가씨의 결정에는 무조건 따르겠습니다만... 그렇게나 많은 돈을 내어줘도 괜찮은겁니까? “


" 응? 무슨 소리야? “


거리를 향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트레이시에게 자류스가 물었다. 본래 리자드맨의 사회에서는 화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슬류는 트레이시가 건넨 화폐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자류스는 리자드맨 부족들 사이에서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지식을 습득했기에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폐라는것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 여관에 들르실 때마다 그 주인에게 백금화를 건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응. “


" 백금화라는 것은 하나만으로도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몇 달,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을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나 많이 주셔도 괜찮으신지요? “


" 뭐라고? 아우여, 그 작은 동그란 철 덩어리가 그렇게나 귀중한 것이란 말이냐! “


그제야 자류스가 놀라며 물었다. 자류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걸어가던 트레이시가 걸음걸이를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앗, 결코 아가씨의 심기를 거스르려던 것은 아닙니다! 부디... “








" 그... 그... 그렇게나 귀중한 물건이야!? “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두 리자드맨이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뜬다. 골목에서 지나가던 작은 동물이 놀라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렸다.


" 나... 나 사실 돈이라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몰라서...! 아버지는... 아버지가 마음껏 사용하라고 주신 거라서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아... 아아... 으아아아아! “


고개를 돌린 트레이시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나만으로도 오랜 기간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물건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나 낭비해 버렸다. 그런 죄책감이 그녀의 마음을 옥죄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내게 하고 만다.


" 앗! 일어나세요, 아가씨! “


주저앉은 트레이시를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 자류스와는 대비되게 사슬류는 침착히 주변을 파악했다. 혹여나 이야기가 새어 나가거나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한 소음이었기 때문이다.


" 아인즈 님께서는 분명 아가씨께서 그렇게 했으리라고 이미 생각 하셨을겁니다. "


자류스가 다독였다.


"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많은 돈을 주셨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아가씨께 돈의 가치를 판단하게 하기 위함이 틀림없을 겁니다. “


" 정말...? “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분의 지혜는 저희가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


" 그렇겠지!? “


" 읏. "


방금까지 울고 있던 소녀는 온데간데없이 해맑게 웃으며 트레이시가 자류스를 껴안는다. 이래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류스에게 사슬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형의 조언을 받은 자류스가 트레이시의 등을 토닥여 어리광을 달래준다. 설정상으로는 그녀의 나이는 정해져 있으나 실질적인 나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만큼 정신적인 면에서 그녀의 성장은 완성되지 못한 채였기에, 큰 감정 기복은 이따금 이렇게 주변 인물을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 그러면 이제부터 아껴 쓰도록 할까! “


" 좋은 생각입니다. “


더 이상의 낭비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찾은 숙소는 낡아 빠진 빈집이었다. 마법사를 찾아서 수소문하던 찰나에 찾아둔 뒷골목 사이의 작은 집이다. 현관의 문은 부서져 활짝 열려 있으며 밖으로 난 창문은 깨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유리의 파편이 창문 주변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근처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라고 적힌 팻말만이 그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팻말을 무시하고 들어서자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사슬류가 발을 딛자마자 부서져 빠진 발을 꺼내는 것이 집에서의 첫 일이었다.


" 돈을 쓰지 않고 자려고는 해봤는데, 역시 이런 곳에서 자는 건 무리일까... “


그동안 자신은 나자릭 내부에서 호화로운 방에서만 지냈다. 그렇기에 밖에서의 생활은 거의 해보지 못했으며 밤이나 새벽에 다급히 일이 생겼을 때나 혹은 밤새 훈련할 때는 아인즈가 건네준 수면이 필요 없어지는 장신구를 착용해서 버텼었다. 이전 얄다바오트의 동란 때도 그 장신구의 힘으로 피곤함 없이 견딜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밖에서의 삶을 경험해 보겠다는 자신의 의지로 그 장신구를 나자릭에 두고 나왔다.


" 아가씨, 저희는 원래 밖에서의 생활도 익숙하니 저희는 밖에서 자도 괜찮습니다. “


" 아니오, 형님. “


" 뭐냐, 자류스. “


" 실은, 이곳에 오기전에 데미우르고스 님께 이곳 바하루스 제국의 노예법 이라는 법률에 대해 들었는데... 제국은 노예를 다루는 법이 각박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 우리가 좋다고 해도 그게 인간들의 법에는 안되는 모양이야. ”


" 그런가... 섣불리 괜한 짓을 했다간 귀찮은 일에 휘말리거나 이목을 끌 수도 있단거로군. “


" 아가씨, 방금전까지 돈을 아끼는데 찬성한다곤 했습니다만... 이렇게 버려진 집에서 주무시는것 보다는 가격이 싼 여관이라도 찾는 것이... “


" 여기서 뭐 하고 있어? “


문턱에 앉아 있는 트레이시와 그녀의 앞에 서 있던 리자드맨의 등 뒤에서 어딘가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발과 푸른 눈동자, 커다란 스태프가 눈에 띄는 소녀. 아르셰였다. 리자드맨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천천히 트레이시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두 리자드맨은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트레이시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 설마, 여기가 당신 집이야? “


아르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허름한 집. 그리고 흘렀음이 분명한 눈물 자국과 어딘가 슬퍼 보이는 얼굴의 소녀. 그녀의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이 떠올랐다.


" 아, 아니 여긴... “


" 됐어. 따라와. “


트레이시의 말을 끊은 아르셰가 트레이시의 손을 잡아 끌었다.


" 잠깐, 아가씨는 데려갈 수 없다. “


그리고 그것을 막아선 것은 두 마리의 리자드맨.


" 이런 곳에서 자면 안돼. 우리 집으로 가자. “


" 뭐? 그치만 그런곳에 쓸 돈은... “


아르셰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진 돈은 이것 뿐이라』 그것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전 재산을 자신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부유한 가정이라면 마법 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그녀는 학원이 아닌 자신을 택했다. 학원에 다닐 경제적인 여유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처럼 어린 소녀 한 명을 노예 둘과 함께 먼 장소에 내버려 둔 부모가 과연 어떤 사람일지 상상하며 아르셰가 자신의 처지를 곱씹었다. 아니, 이런 상황까지 내몰렸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두 노예는 그녀에게 물려준 유산이 될 것이다. 그런 복잡한 생각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 필요 없으니까 따라와! 공짜로 재워줄테니까. 당신 사실은 돈 같은거 없잖아? “


" 그, 그렇지 않아! 그저 돈을... “


" 전혀 그렇지 않다! "


" 무례하군! 아가씨 께서는 그저...! "


" 그만해! 그만... 그만해... 변명같은거 안해도... “


트레이시와 자류스, 사슬류가 차례로 변호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아르셰의 모습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아르셰는 트레이시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울고 있었다. 자신의 빚 때문에, 돈에 눈이 멀어 섣불리 그녀의 돈을 받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째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지 셋은 알 수 없었다.








" 아아! 자, 잠깐만! “


멈춰달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착한 장소는 이 세계인의 기준에서 으리으리하다고 할 만큼 거대한 저택이었다. 수백명은 족히 들어갈 만큼의 거대한 정원. 그 가운데에는 분수를 기준으로 십자로 길이나 길의 양옆에는 화려하게 대칭된 장식용 나무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과는 다르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늦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경비를 서는 인원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인형의 집처럼 겉을 치장하는 것에 치중된 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이쪽이야. “


아르셰가 먼저 나서 거대한 문을 열었다.


" 저기, 아가씨...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지... "


자류스가 물었다.


" 나도 끌려온 입장이란 말야. 뭐, 어차피 잘 곳도 필요했는데 잘된 거 아닐까? “


" 그렇습니까? “


사슬류는 동족이라고는 하나 이렇게나 선뜻 자신의 보금자리를 건네는 인간들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의구심만을 키웠다. 트레이시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사람이 사는 곳임을 증명하듯 늙은 집사 한 명이 아르셰를 반겼다.


" 돌아오셨습니까. 음... 저 분들은? “


두 리자드맨의 모습을 살펴본 이 집의 집사장, 자임스는 목에 달려있는 쇠사슬을 통해 그들이 노예임을 재빠르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 둘의 앞에 있는 검은 갑옷의 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 아가씨의 지인분이십니까. 저는 이곳의 집사, 자임스 라고 합니다. “


아르셰가 하는 일은 자임스 또한 알고 있었다. 워커라면 전투와 전열에 필요한 노예로 이종족을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인간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부모님들은? “


" 안주인님께서는 주무시며 주인님은 접견실에 계십니다. "


" 아버지는 안 주무시는거야? “


" 실은... “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말을 흐리는 자임스가 지을 표정이 아르셰의 눈에 훤했다. 또 어딘가에서 사채를 끌어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르셰는 조금 머뭇거리며 안쪽 주머니에서 트레이시에게 받은 동전이 들어가 묵직해진 작은 보따리를 자임스에게 건넸다.


" 일단 오늘 벌어온 돈이야. “


" 고생 많으셨습니다. “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트레이시 일행에게 아르셰가 고개를 돌려 급히 사과했다.


" 미안, 먼저 방으로 안내해 줄게. 나는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자임스. “


" 알겠습니다. 그럼, 노예를 둘 공간을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


" 아, 괜찮으니까 같은 방에 부탁할게요. “


자임스가 보이지 않게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이내 수긍하고 트레이시를 빈방으로 안내했다. 침대는 두 개, 하나는 2인용으로 이전에는 누군가 한 가족이 지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문을 기준으로 왼쪽의 탁자에는 고급품으로 느껴지는 화분이 두 개, 그 맞은편에는 가치는 알 수 없지만 풍경이 그려진 그림이 벽에 걸려 침대의 바로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 그럼 좋은 밤 되시길. “


자임스가 문을 닫고 나가고 약 1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


이쯤 되면 떠났으려나 싶은 찰나에 사슬류가 소리쳤다.


" 형님, 상대의 선의를 그런 식으로 무시하면 안돼. “


" 인간이라는 종족은 이해하기 어렵군. “


" 평소에 있던 장소도, 이전에 있던 부락도 주변에서는 리자드맨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


" 음, 어디 가십니까 아가씨? “


둘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트레이시는 다시 문을 열어 복도로 향했다.


" 글쎄, 우선은 정보 수집? “


" 그럼 저희도... “


" 따라오고 싶다면 그래도 돼. "


어째서일까 새로운 장소에 오게 되자 그녀의 마음속에서부터 끌어나오는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본능대로 지리를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아주 간단한 작업, 자신의 방은 어디를 기준으로 어디에 있는가, 화장실은 어디인가, 식당은 어디인가. 이곳과 나자릭을 비교하자면 이곳은 1점을 주기도 아까운 수준이지만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었다고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남은 방들을 둘러보았다.


" 자꾸 그렇게 빚을 늘리면 더 이상 갚을 수 없어요! “


큰 소리가 귀에 들어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약간의 틈만 벌어진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껏 불이 켜져 있는 방은 누군가가 있으리라 생각해 지나쳐왔으나 이번만큼은 지나칠 수 없었다.


" 많이 빌리지도 않았다. 고작 금화 100닢 정도로... “


" 항상 같은 말이지... 그만 빌리세요! 돈을 갚는 것도 한계가 있다구요! "


자리에 앉아 있는 남성은 왕국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귀족풍의 옷과 작지만 멋들어진 콧수염이 양옆으로 난 금발의 남성이었다. 남성은 작은 종이와 함께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 올려 아르셰에게 자랑하듯 흔들었다.


" 얘 아르셰! “


" 읏! "


부모로 보이는 그런 남성에게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거칠게 문을 연 아르셰는 문 앞에 서 있던 트레이시와 눈이 마주쳤다. 약간의 쓴웃음과 함께 트레이시는 딱히 자신에게는 관계도 없으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걸음을 옮겼지만 아르셰는 그런 트레이시의 팔을 붙잡았다.


" 어디부터 들었어...? “


" 어? “


" 탓하지 않을테니까 괜찮아. 어디부터 들은거야? “



***



아르셰의 저택의 정원 분수대. 흐르지 않는 분수대에 두 명의 소녀가 앉아 있다. 그중 한 명의 얼굴은 침울해져 있어 무릎에 올려진 양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 두 소녀의 시야에서 겨우 보일 정도로 멀리에 두 마리의 리자드맨이 각각 왼편과 오른편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본래는 가까이에 서서 있으려 했으나 둘만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아르셰의 완곡한 부탁에 둘과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위험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시야에만 들어오는 위치에 서 있도록 트레이시가 허락했다. 


" 실은 우리 부모님은 항상 저런식이셔... 이젠 귀족이 아닌데... 귀족이라는 칭호는 박탈당한지 오래라고! 그렇지만... 분수를 모르고 계속 돈을 낭비하고 있어. “


관심 없는 이야기라면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으나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자신이 겹쳐 보여 트레이시는 움직일 수 없었다.


" 사실 처음에 당신을 봤을 때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 왜 굳이 나를 찾아왔을까 하고... “


제 3위계를 사용할 수 있는 인재는 드물다. 그러나 아르셰는 바로 그 제 3위계의 사용자로 워커들 뿐 아니라 모험자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가끔은 그녀에게 자신의 모험자 팀으로 오라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녀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돈이었다.


" 사실은 처음엔 마법학원에서 배우고 싶었어. “


" 응, 분명 그랬겠지. “


한동안의 침묵.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며, 장신구의 효과로 크게 느껴지진 않지만 찬 바람을 맞고만 있는 그저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한 트레이시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 모험자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없었어. 일정 금액은 조합에서 가져가고, 형식적이지만 쓸데없는 절차도 거쳐야 하고, 금액의 최소치와 최대치도 정해져 있었어. 게다가 나를 찾는 팀은 전부 내 마법을 이용하려고 들기만 했지... “


아르셰가 한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포사이트는 달라. 헤케란도 로버딕도 이미나도 모두 겉으로는 자기 자신만을 챙기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어. "


아르셰가 고개를 치켜들어 살며시 트레이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에 달빛이 반사되어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 그렇지만, 왜 정작 가족은 그렇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 부모님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냐고! “


" ... 저기 있... 아... “


" 노력했는데! 죽기 살기로 발버둥 쳤는데! 어째서야!? “


어째서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느냐, 그런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찰나에 아르셰의 얼굴이 트레이시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매일같이 희망을 품고 살던 사람의 눈. 굳센 마음으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깨지기 일보 직전인 그녀의 모습이. 그리고 뛰기 시작하는 자신의 가슴에, 트레이시는 말을 멈추었다.


" 힘들었겠구나... “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이 진심이었는지 아닌지 자신조차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녀를 갖고 싶다고.


" 미안해 갑자기 이런 말을 해서, 하지만 아까 당신을 봤을때... 어째서인지 당신의 모습에서 내가 겹쳐 보였어. 그래서 당신을 집으로 부른거야. 당신의 사정도 모르고 그냥 설움을 털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앗! “


조용히 트레이시는 아르셰를 껴안아 주었다. 그녀의 품은 딱딱한 갑옷이지만 아르셰에게는 어째선지 아주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아르셰는 조심스럽게 팔을 올려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안겼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마음을 다잡은 아르셰가 트레이시의 품에서 벗어나며 일어섰다.


" 고마워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아. 있지 사실 나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마법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탤런트라고 불리는 능력이야. “


" 오, 그래? 그러면 나는 어때? "


트레이시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아르셰를 바라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르셰 또한 트레이시를 똑똑히 쳐다보았다. 이 세계에서 드물게 갖고 있다는 특별한 능력인 탤런트.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아주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그녀의 마법적 능력이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을.


" 처음에는 당신, 마법 같은건 사용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재능은 있었던걸까? “


아르셰는 흘렀던 눈물을 장갑으로 슥 닦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제대로 훈련이야, 솔직히 처음엔 별생각 없었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하기로 내 마음대로 정했어. 내가 아는 것에 한해서 철저하게 훈련시켜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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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부터는 분량을 조금씩 줄이고 연재 주기를 단축 시켜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