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루스 제국에서부터 나와 카체평야를 향하는 길. 도시로부터 이어진 도로도 끊겨 이제는 황량한 사막과도 같은 땅에 일곱 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날씨는 유독 덥고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앞서 나아가던 두 명의 남성, 헤케란과 로버딕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전진했다. 그 둘을 따라서 이미나와 아르셰, 그 뒤로 트레이시와 자류스 샤샤, 사슬류 샤샤가 뒤따랐다.


" 아가씨, 마법을 배우러 가시는게... “


조금 전, 둘만의 훈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두 리자드맨은 트레이시와 아르셰가 보이는 높은 바위산에서 모습을 감춘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헤케란이라는 인간 남성이 나타나고, 그다음 자신들에게 다가온 그녀가 건넨 말은 출발하자 였다. 전후 사정도 듣지 못하고 그녀를 따라서 카체평야를 향하고 있는 자류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 응! 지금도 수련하러 갈꺼야. 이 사람들이랑 같이. “


트레이시는 고개를 살짝만 돌려 그들에게 대답한 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 그렇지만... 아가씨... 외부인을... 읏. "


자류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사슬류가 보이지 않게 그의 손을 건드려 말을 끊었다.


" 아가씨의 결정이라는 겁니까. 형님. "


사슬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상대가 코퀴토스나 데미우르고스였다면 과연 그들은 같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하물며 그녀는 자신들이 이제는 신이라고 받드는 존재의 자손이다.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비로소 진언을 하는 것이 충신이며 큰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그녀의 의견이 우선이었다.


" 뭐, 그 쪽에게 선두로 나서서 싸워달라고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 하지마. 우리, 생각보다 꽤 강하거든? “


헤케란이 뒤를 돌아 뒤로 걸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헤케란에게 로버딕이 앞을 보며 걸으라고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 모험자로 치면 글쎄... 아다만타이트 까지는 아니어도 오리하르콘 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


이미나가 헤케란의 귀를 꼬집으며 몸체를 앞으로 돌렸다.


” 뭔가 보기 좋네. “


어째서일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임에도 그리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스즈키 사토루로부터 물려받은 감정임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아버지는... 항상 이런 것을 느끼고 싶으셨던 걸까. ‘


고개를 뒤로 돌려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갖고 싶어서 받은 선물. 그러나 이들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 둘은 자신이 지배자임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받은 수행원일 뿐.


' 아니, 정말로 수행원 정도인가? ‘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고 스스로 얻어낸 보상이 아닌 어린아이가 갖고 싶다고 떼를 써서 받게 된 장난감 그 이상 이하의 존재도 아니었다. 확실히 처음에 받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는 받아냈다는 성취감뿐이었다. 트레이시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런 둘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존재.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존재.


" 거의 다 왔어. “


아르셰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 것일지 단순히 우연일지는 알 수 없었다. 아르셰가 작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트레이시는 손을 잡으려다가 조금 머뭇거리고 웃으며 아르셰의 손을 잡았다.


" 다 왔다. 언제나 그 장소. “


헤케란이 마지막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미나가 활을 꺼내 들어 바닥에 주저 앉아 주변의 기척을 읽기위해 눈을 감았다.


" <악에 대한 방어 Anti evil protection> <악에 대한 방어 Anti evil protection> “


로버딕은 헤케란과 이미나에게 각각 악에 대한 방어 마법을 사용해 방어력을 높였다. 이미나가 조용히 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을 세워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키며 각각 손가락을 두개, 세개 펼쳐 각 방향에 적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렸다. 작업이 시작되자마자 흐트러지거나 약간의 지체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그들이 단순한 초보자가 아닌 숙련된 모험자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 저기... 그럼 이제 시작인거 같은데... 난 뭘 해야돼? “


그런 그들의 뒤에서 트레이시와 두 리자드맨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헤케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는 마법 지원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며 말하고는 아르셰에게 눈치를 주었다.


" 뒤에 있는 리자드맨들은 당신의 노예니까 당신을 지키도록 해. 당신을 데려온건 나니까 당신이 다치는 꼴을 볼 순 없어. “


"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아가씨의 목숨을 지킬 생각이다. “


" 음. “


자류스와 사슬류의 말에 아르셰가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시의 손을 들어 올렸다.


" 자, 우선은 아까 했던 마법의 복습이야. 아마도, 이제 주변에서 좀비나 스켈레톤 따위가 잔뜩 몰려올 거야. 언데드에게는 대부분 검이나 활 같은 베거나 찌르는 무기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로버딕의 메이스나 신앙계 마법, 그리고 우리들 매직 캐스터의 힘이 중요해. “


" 응! 열심히 해볼게! “


트레이시는 미소 짓는 아르셰에게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땅에서부터 천천히 기어 올라오는 팔과 다리. 아르셰의 말대로 좀비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척을 감지하는 언데드에게 그들의 존재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헤케란과 로버딕이 앞장서 전열을 섰다. 좀비가 다가오기 전부터 이미나가 화살을 좀비에게 날려 그들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춘다. 단순한 찌르기 무기인 화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좀비 한 마리가 손쉽게 쓰러져 그 자리에 눕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무기의 화살촉은 날카로운 촉이 아닌 오목한 철의 덩어리가 촉을 대신하고 있었다.


" 쌍검참격(雙劍斬擊)! “


화살을 맞지 않은 좀비 두 마리가 다가오는 것을 헤케란이 무투기 쌍검참격을 사용해 두 마리를 동시에 베어낸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종이를 베듯 좀비의 몸이 반토막으로 시원하게 잘려나간다.


" 오오~! 굉장하다! “


트레이시가 감탄했다.


" 아! 뒤에! "


이미나가 뒤로 돌아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신의 뒤에 있던 아르셰의 너머 트레이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땅속에서 뼈만으로 이루어진 손이 나타나 트레이시의 발치에서 나타나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좀비와는 다르게 아주 빠르게 모습을 드러낸 스켈레톤. 그녀의 다리를 잡고 있는 녀석을 포함해 세 마리가 동시에 그녀를 노렸다.


" 뭐야!? “


아르셰가 깜짝 놀라 급하게 뒤를 돌아 팔을 스켈레톤에게 향했다. 놀란 것은 트레이시 또한 마찬가지 였으나 그런 둘이 반응하기도 전에.


" 하압! “


" 히아아압! “


두 리자드맨의 반응이 더욱 빨라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스켈레톤을 제외한 두 마리를 손쉽게 베어냈다.


" 언데드라면 이미 충분히 상대해 본 몸이다. "


" 음. 그리고! 핫! “


자류스가 마지막으로 트레이시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스켈레톤의 팔을 프로스트 페인으로 잘라낸다. 잘려 나간 손은 증발하듯 사라져 트레이시의 다리는 다시금 자유를 되찾았다.


"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


" 응 고마워. “


당연한 듯 혹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트레이시가 대답했다. 아르셰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트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다리를 살펴보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차례대로 살피더니 이내 주머니에서 꺼내려던 포션을 집어넣었다.


" 괜찮아!? “


" 응. “


" 대담하네... 보통 사람들은 언데드를 처음 보면 놀라거나 하는데. “


" 익숙해서. “


아르셰가 기운 빠진 웃음과 함께 다시 뒤를 돌아 자세를 잡았다.


" 확실히 네 신변은 리자드맨에게 맡겨도 괜찮겠어. 그러니까 나는... <마법 화살 Magic arrow>! “


아르셰의 손에서 마법 화살이 날아가 헤케란과 로버딕의 앞에 마지막 남은 좀비에게 명중한다. 그것만으로 완전히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약간의 틈을 만들어내 그 틈에 로버딕의 메이스가 좀비의 머리를 완전히 짓뭉개 버린다.


" 이미나! 적은 얼마나 더 있어? “


" 두 마리 정도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에서부터 좀비가 한 마리 솟아올라 헤케란을 향해 덮쳤다. 다른 좀비와는 속도가 달라 이 좀비가 일반적인 좀비가 아닌 하이레벨의 좀비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헤케란이 급하게 검을 휘둘러 좀비를 베어내지만 좀비는 언데드, 상처를 입어도 큰 무리 없이 그의 팔을 향해 이빨을 세웠다.


" <갑주 강화 Reinforce armor>! “


" 육체향상(肉體向上)! "


아르셰의 버프 마법과 헤케란의 무투기로 헤케란의 방어력이 올랐다. 좀비의 이빨로는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딱딱한 갑옷을 문 것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 트레이시! 지금이야! 마법 화살이야! “


" 아, 응! 하아압! <마법 화살 Magic arrow>! “


마찬가지로 트레이시도 지팡이와 함께 손을 올려 좀비를 향해 마법 화살을 날렸다.








" 두 발!? “


아까까지는 분명히 한발이었다. 그녀가 여태까지 한 것은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전부. 그 사이에 그녀의 마법이 성장했다는 것일까. 혹은 전력을 내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위계에 대한 설명과 위계를 강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마법 화살을 사용한 다음 이었으니까.


" 오, 됐다! 정말로 두 개가 나갔어! 아르셰의 말 대로야! “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후자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기에 아르셰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좀비를 바라보았다. 헤케란의 공격과 트레이시의 공격으로 체력이 줄었음이 분명한 좀비에게 이미나가 화살을 날려 다리를 노린다. 화살에 맞아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좀비를 향해 로버딕이 달려가 메이스로 머리를 노린다.


" 쓰러지세요! “


그렇게 마지막 남은 좀비는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훌륭한 연계와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공격에 모두가 피해 없이 언데드를 물리칠 수 있었다. 헤케란과 로버딕이 엄지를 치켜올리지만 그런 둘을 이미나가 긴장을 풀지 않고 노려보았다.


" 내가 두 마리라고 했잖아! 한 녀석 더 있을거야! “


" 위치는! “


" 몰라! 하지만 기척은 강해! 아까 그 녀석보다 강할거야! “


" 서쪽이다! 고개를 돌려라! “


" 뭐라고!? "


위치를 감지하지 못한 그들에게 소리친 건 자류스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사슬류 또한 적의 존재를 눈치챈 듯 팔을 들어 올려 마법의 준비를 했다. 이미나가 급하게 서쪽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황량한 대지에서 느껴지는 불안함 기척. 확실히 그것은 서쪽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확실히 느껴지는구나 동생아, 그때와 같다... “


" 아아, 기억하고 싶진 않지만... 한 번 기억한 몸은 잊혀지지 않는군. “


둘은 과거의 전투를 떠올렸다. 그 둘이, 아니 더 많은 자들이 온 힘을 합쳐 겨우 쓰러뜨린 강대한 존재.


" 이 느낌은... 엘더 리치! “


이미나가 소리쳤다. 서쪽에서부터 자그마한 실루엣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하프엘프인 이미나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어두운 로브를 두른 채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가죽만 남은 언데드의 모습이 그리고 그 언데드가 웃고 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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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엘더리치 다음편에 바로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