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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점[편집]

드라이제는 혁신적인 소총이었음에도 전장식에 비하여 밀폐가 잘 되지 않았기에 가스가 새어나오거나 공이가 부러지는 등의 문제가 자주 발생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노리쇠 폐쇄기술은 근대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프랑스의 그라스 소총같은 단발식 볼트액션 소총의 등장 후부터 도입된 것이다. 이 당시엔 그런 장치를 금속 성형 할만한 기술이 없어서 사실상 전장식 총에다가 총알넣을 구멍내고 볼트달린 뚜껑으로 닫았다 열었다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스가 새는 게 오히려 당연한 정도였다. 그걸 막으려고 고무링에 왁스 바른 명주실까지 동원하였으나, 고무링이나 실이 먼저 녹아내리는경우가 더 많았다. 사수가 패킹이 녹아내린지도 모르고 발포하면 사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얼굴에 큰 화상을 입는 문제가 발생하는것이다. 그리고 종이탄피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9]가 있었기에 비전투손실이 무시못할만큼 커진 프로이센군은 1870년 벌어진 프랑스와의 보불전쟁에서는 보다 향상된 성능의 프랑스식 니들건인 샤스포 소총과 이들의 신식 기관총에 의해 보병대 보병으로 붙기만 하면 녹아내리게 된다.[10][11]
그래도 어쨌든 퍼커션캡 방식의 전장식 라이플들 보다는 훨씬 이점이 많았기에 보오전쟁 이후 돈 좀 있고 육군 좀 쌔다는 나라들은 후장식 소총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보불전쟁 이후에는 아예 돈이 없는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열강들이 후장식 소총을 장비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금속 가공기술과 무연화약 제조 기술이 발달하며 더 훌륭한 기술이 자리잡자마자 프랑스가 그들이 사용하던 종이탄피 샤스포 소총을 그라스 소총이란 금속탄피 단발식 소총으로 개조하여 종이탄피식 소총들을 퇴역시켰듯 1871년부터 마우저가 개발한 금속탄피 사용 소총인 게베어 1871로 대체된다.
개사기까지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