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참전 50% + 미국 핵폭탄 45% + 독립운동 5%. 당시 제국들의 식민지 관리책이 직접 관리에서 간접 관리로 이미 바뀌었었지만.. 그래도 독립의지가 독립국 건설에 작은 영향이라도 끼쳤었던 것 같다. 미소입장에서 뜯어먹을 것도없는 거지들이 징징대는 거시 귀찮았을 거시여.
나도 처음 알았는데 타이완인이 원래는 한족보다는 하와이 계열(?)쪽에 더 가깝다더라. 그리고 한족이 유입되었을 때가 포르투갈이 타이완을 발견하고 네덜란드 통치시기때 많이 유입되었는데 그때가 대략 1620년대 쯤이니까 이제 막 청나라가 생겼을 때 쯤인 것을 감안하자면... 거기에다가 국공내전 이후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섰을때 본성인들은 외성인들에 비해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고함.
사실 1929년까지 문화통치에 다이쇼 데모크라시 영향도 있고 3.1운동 실패에 임시정부도 유명무실 해지고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도 와해되고...제대로 독립운동이라고 진행하는 건 의열단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식민통치를 변경하는데는 아무 영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봉창이 직접 임시정부를 찾아가 천황 폭살을 건의하고 한인애국단 1호로 천황 폭살을 시도했는데...전 이게 실제 광복을 일으킨 직접적인 나비효과의 첫 시작이라고 봅니다. 그 뒤 중국 신문의 기사(천황 안죽어 유감) -> 1차 상해 사변 -> 홍구 공원 에서 윤봉길 의거 -> 국민당 정부의 지원이 있었고 그 뒤 장개석은 모든 연합국 모임에서 한국은 독립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사실 루즈벨트는 한반도를 신탁통치 할 것이라고 했고 독립을 시켜줄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일 장개석의 주장이 없었다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어도 한반도는 1931년 이전 영토이므로 그대로 일본국에 귀속된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에 직접 기여한 단 하나의 사건이라면 전 이봉창 의거를 꼽고 싶습니다.
김원봉의 의열단 활동은 솔까 지금의 IS 테러에서 보이는 행태랑 그리 다를 것은 없었고(물론 무차별 민간인 사살은 없었으니 그점은 다르지만) 의열단 자체도 한국민 전체를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는 단체 였죠. 하지만 임시정부가 직접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일본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면서 국가 대 국가의 전쟁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게 되었고 그게 한국 독립을 연합국이 생각하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사회주의 노선의 독립활동은 언젠가는 그 역할을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올겁니다. 아무 제대로 된 기여도 없이 분열만 야기했다고 대차게 까이는 건 이미 김구쪽 노선에서도 나온 얘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