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도서관 가운데, 나는 지금 기분이 그닥 좋지는 않았다.


"이 식을 치환하면... 보기에 없네."


난 최시현, 대학생이다.

문제가 하나 있는데, 대학 시험까지 약 일주일, 나는 문자 그대로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가방에 절반이 소설책, 이쯤 되면 컴공과가 아니라 문예과로 갈껄 하 후회하는 지경이다.


수학 책을 덮고 가방에 욱여 넣은 채, 나는 다른 책을 꺼내들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친구의 추천을 받고 읽은 지 4일째, 시험 공부를 대가로 읽었던 탓인지 오히려 내 이야기 보다 편할 지경이었다.


공부는 글른거 같아, 가방을 싸고 집을 향해 걷던 중이었다.


[@!~$#!~]


하늘에서 들려오는 노이즈, 스마트폰으로 수십번을 본 괴이한 털뭉차.


[죄송합니다. 한국어 패치가 조금 늦었군요.]


"뭐야? 인형인가?"

"엄마! 저거 뭐야?"

"야 대박 인스타에 올려 얼른!"

"이거 뭐야? 왜 국무총리가 연설하는 건데?"


이제서야 김독자가 느끼는 감정을, 확실히 알 것 같아다.

처음에는 설마 했었다. 그러나.

흰 빛의 푹신해 보이는 털과, 눈앞에 떠있는 창만이 내 생각을 확실히 해주었다.


[채널에 성좌들이 입장합니다.]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


분류: 메인

난이도: F

클리어 조건: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 시간: 30분

보상: 300코인

실패 시: 사망


전독시도 아니고, 읽던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


* * *


당장 나에게 이점은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여기가 야외라는 점

두번째는 내가 전독시의 내용을 안다는 점


대충 둘러보니, 반경 1km 정도가 한 구역인 듯 싶었다.

군데군데 작게 사각형으로 나뉘어진 구역마다, 도깨비들이 시나리오를 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도깨비가 손가락을 튕기자, 인형이냐며 비웃던 사람의 머리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길거리는 비명에 휩싸였다,

학생들은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고, 아이는 울며 엄마는 눈을 가렸다.


하하, 그랬지.


나긋나긋한 말투에 잊었지만, 저 녀석은 도깨비. 이야기의 악마였다.

나는 조용히, 가방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전독시 단행본이 손에 닿은 순간. 쿠궁- 벼락에 가까운 천둥이 가방에 내리꽃였다.

도깨비를 보아하니, 내 단행본이 개연성에 어긋난듯 했다.

...근데 김독자는 텍본 잘만 들고 다녔지 않나.


[음, 아무래도 동기가 필요할 듯 싶군요.]


동기가 뭔지는, 말 안해도 알고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친구의 목을 조르는 흑발의 소녀

실제로 보니, 글이나 그림 따위와 비교가 안되는 절망이 몸을 파고들었다.


[태풍여고 생존자: 이지혜]


옆에 학생들이 울기 직전이었다. 교복을 보니, 같은 태풍여고 였나본데.


[앞으로 10분, 최초에 살해 행위가 벌어지지 않을 경우. 여러분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 말하고는, 도깨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녀, 여고생둘, 그리고 나. 배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 일라나.

나는 침착하게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주위 화단을 망가트리세요. 인간이 아닌 생명체라면, 풀이나 벌레도 생명체로 인정될 겁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판단을 인정합니다.]


오, 익숙한 성좌다.


[성좌, '사자의 아들'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성좌, '자신을 아는 철학가'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수식언 인데.

뭐, 지금은 이런 걸 고민할때가 아니긴 하다.


나는 근처 화단에 가선, 잡초를 한 움큼 뽑고 뿌리를 뜯어냈다.


[생명체를 살해했습니다.]

[추가 보상 100코인을 획득합니다.]

[생명체를 살해했습니다.]

...

[추가 보상 100코인을 획득합니다.]


"모두들 보셨죠? 우리 모두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일제히 주변 화단을 문자 그대로 찢어 발기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상태창'


이름:최시현

나이:24세

배후성(背後星):없음(현재 2명의 성좌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용 특성:독자 (일반)

전용 스킬:[빠른 읽기 Lv. 2] [상황 분석 Lv.4] [독자를 바라보는 벽]


성흔:-


종합 능력치:[체력 Lv.5] [근력 Lv.4] [민첩 Lv.3] [마력 Lv.1]


보유 코인:1000C


체근민이 12라, 원작 이현성이 23임을 감안하면 나름 높은 수치다.

문제는, '독자를 바라보는 벽', 내 전용 스킬이다. 이름으로 보건데 아마 제 4의 벽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


우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900코인을 '근력'에 투자합니다.]

[근력 Lv.4 -> 근력 Lv.7]


팔이 조금 더 튼튼해지는 기분과 함께, 나는 주위 풀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 * *


그 후, 도깨비와 함께 이름 5개가 떴다.

내 이름이 있던걸 보면, 아마 생존자 명단이겠지


[이 구역은... 5명이라, 많이 살아 남으셨군요]

[허나 그런 여러분은, 매우 허약합니다.]

[7급 견형종인 베르시스는 커녕, 9급 지하종 땅강아지에게 찢길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저 드높은 하늘의 성좌님들이 여러분의 배후성이 되어드린다고 합니다.]


원작대로라고 해야하나, 그 누구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한번 보시기를.]


그리고 눈앞에, 창이 하나 나를 비추고 있었다.


<배후 선택>

-당신의 배우를 선택하세요.

-선택한 배후는 당신의 든든한 후원자 되어줄 것입니다.


1.자신을 아는 철학가

2.잡배의 군주

3.천국 공원의 뱀


[10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창을 보자,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

...나 뭐 잘못했나?

우선 천천히 목록을 보았다.


첫번째 자신을 아는 철학가

수식언을 보건데, 진명은 '소크라테스'일 가능성이 크다.

전투 관련 능력이 전무하겠지, 일단 보류다.


두번째 잡배의 군주

전독시 봤으면 미치지 않는 이상 이걸 고를리가


세번째 천국 공원의 뱀

천국 공원, 즉 에덴 소속이라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에덴에 존재하는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인 에덴에 뱀밖에 없으니까.

이거 고를 바에는 잡배의 군주가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할 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김독자'의 정보가 있으니까.

거기에, 전용 스킬 '독자를 바라보는 벽'이 있으면 배후 계약이 큰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염없이, 시간이 다 지나가기 만을 기다렸다.


Q.이거 왜씀?


A.가끔 가다 이 인물은 성좌로 어떻게 나올까? 라는 생각에 씀.

필력이고 자시고, 처음보는 성좌들 많이 나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