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https://arca.live/b/reversal/103761644?p=1

2화: https://arca.live/b/reversal/103786508?p=1

3화: https://arca.live/b/reversal/103814880?p=1

4화: https://arca.live/b/reversal/103858354?p=1

5화: https://arca.live/b/reversal/103872955?p=1

6화: https://arca.live/b/reversal/103886670?p=1

7화: https://arca.live/b/reversal/103932514?p=1

8화: https://arca.live/b/reversal/103968119?p=1

9화: https://arca.live/b/reversal/104003922?p=1


이 글 보고 쓰는글임:

https://arca.live/b/reversal/103754360?p=1



정수연은 지금 상당한 오묘함을 느끼고 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오늘 하루는 완벽했다.

데이트를 나서기 전, 화장은 유달리 더 잘 먹었으며 오늘을 위해 신발까지 새로 구입했다. 

뭐 진영이가 자신의 옷을 보고 혀를 차는 것 같긴 했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데이트 코스도 무난했지만 그만큼 정석적이었다.


영화관, 카페, 인생네컷과 길거리 구경까지.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연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꿈꿔오던 로망을 오늘에야 비로소 충족한 느낌.


심지어 진영과 스킨십을 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처럼 뛰었다.


데이트 시작부터 손을 잡았고, 인생네컷에선 사진을 핑계로 이리저리 그를 만져댔다.

평소의 자신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대담한 시도였지만, 다행히 그도 잘 받아주었다.


그리고 데이트의 마지막 일정, 저녁식사 자리.


수연은 내심 자신의 남자 친구가 파스타 얘기를 언제 꺼낼지 기다렸다.

남자애들은 흔히 파스타라면 환장을 하는 족속들이니까.


물론 평소의 자신이라면 파스타 같은 것은 쳐다도 보지 않았을 테지만, 17년 모솔 인생에 강림한 첫 남자친구와 함께라면 파스타가 아니라 밀웜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파스타 얘기를 꺼낼 것 같아서 미리 파스타 맛집도 찾아놨는데.’


그러나 진영의 선택은 그녀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 간다.


고깃집이라니.

고깃집이라니!


‘진짜 남자애 맞아?’


진영이 운동을 해서 단백질을 꾸준히 챙겨먹어야 하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첫 데이트에서마저 고깃집을 선택할 줄이야.


태생이 고기러버였던 수연은 사실 진영과 자신이 전생부터 이어진 관계가 아닐까 망상했다.


이런게 천생연분인가?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분위기 좋게 고기집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그래도 시동생이 될 수도 있는 사이인데 불청객이라고 표현하는게 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항상 감정과 이성이 비례하지는 않는 법이다. 현재 자신 입장에서 그의 동생의 등장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마지막까지 아껴놓은 메인 반찬을 홀라당 뺏어 먹은 언니년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이진아라고 했지.‘


자신네 커플과, 이진아와 그녀의 친구.

4명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둘 뿐이었다.


이진영과 이진아.


현재 진아는 진아의 친구와 자신은 뒷전인채로 그녀의 오빠만을 챙기고 있었으니까.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다.

내 인생 첫 데이트의 저녁 식사 자리인데… .

진영 역시 당황했는지 연신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오빠 챙기는 걸 뭐라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는가?


“하하, 진아는 오빠랑 사이가 참 좋네.”


그녀로선 나름 뼈를 담은 말이었다.


“자, 여기 오빠. 아~해. 아~. 오빠 취향대로 다 담았어. 마늘2개, 쌈장, 깻잎, 고기 2점.”


진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그걸 일단 받아먹고 있다.


“당연히 좋죠. 저랑 오빠는.”


진아가 여전히 시선은 진영에게만 고정한채로 말했다.


“오빠가 저를 엄청 챙겨주거든요. 어렸을 때이든, 지금이든.”


지금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 같다고 느끼면 과대망상일까?


수연은 어딘가 특이한 남매라고 생각했다.


진아는 중2라고 했다.

사춘기 여자애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그것도 성별이 다른 제 형제와 저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나?

괜히 중2병이라는 단어가 있는게 아닌데.


“흠.”


“그,그만. 그만 줘. 이진아. 난 됐어.”


제 눈치를 보던 진영이 그녀의 동생에게 겨우 말했다.


“아, 내가 너무 오버했나? 오빠 첫 데이트인데. 죄송해요 언니. 근데 평소 집에서 식사할 땐 이러거든요.”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진아였다.


“야! 너 무슨 개소리야!”


“크흠, 큼!”


진영이 진아의 입을 막으려하고, 수연은 헛기침을 하고, 지연은 어쩔 줄 몰라하며 수연과 진아 사이에서 수연의 눈치를 본다. 


*


그날의 저녁 식사는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정확하겐 1명의 행동거지 때문에 나머지 3명이 불편했던 식사자리.


‘하, 고기 얹힌 것 같은데. 속 안좋아.’


식사 내내 고기가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이진아의 훼방은 , 그래 그건 분명 훼방이다. 

이진아의 훼방은 나로서도 예상 밖의 사태였다.

그래서 대놓고 불편함을 내비치는 수연이 때문에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식사자리가 끝나자마자 나는 이진아에게 집에서 보자는 말만 남기고 수연의 손을 잡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죄의 말이라도 해야하니까.


우린 지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미안해, 수연아. 내 동생 때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변명하는 것 같긴 한데, 원래 저렇게 경우 없는 애는 아니거든. 평소엔 어른스러운데 내가 어렸을 때 좀 업어 키운 애라 나를 좀 좋아하는 편이야. 나도 오늘 왜 저러는진 모르겠는데 동생 관리 못해서 진짜 미안해!”


첫 데이트의 마지막이 망가진게 정말로 면목이 없어서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으음, 난 괜찮아. 진영아.”


수연이가 미소를 지어보인다.


“동생이 너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가족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지. 난 외동이라 평소에 진아같은 동생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보기 좋았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나를 위해서 저렇게 말을 해주는 건진 모르겠으나, 참으로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버스 왔다. 나 가볼게. 학교에서 봐 진영아.”


분홍빛 벚꽃나무 아래에서 한쪽만 보조개가 팬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예뻐 보였다.


수연이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고 한다.


“수연아.”


“응?”


쪽-


“?”


“자,잘가! 학교에서 봐!”


나보다 살짝 큰 그녀의 볼에 발을 들어 입을 맞춘 나는 당황해서 그녀를 보지도 못한채 집 방향으로 그대로 뛰어 들어간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


이진아는 방금 자신이 본 광경을 믿고 싶지 않았다.


‘오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