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여름날, 한 대의 트럭이 휴게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막아! 막으라고!” 


휴게소 입구에는 버려진 버스와 가구를 엮어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엽총과 석궁 따위로 잡다하게 무장한 여자들이 늘어서 침입자를 막아서고 있었지만, 철판과 시멘트를 둘러친 대형 트럭을 알량한 총알과 화살 따위가 뚫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트럭이 휴게소 진입로 내리막을 타며 우렁찬 경적을 울리기 시작하자, 그 부질없는 발악마저 끝나고 말았다. 


[빠아아아아아앙— ]


“이쪽으로 온다!”


“으아아 돔황챠!”


“도망치지 마 이 새끼들아! 맞서 싸워!” 


하얀 완장을 두른 독전대가 권총과 칼을 빼들고 버스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을 도로 올려보내려 했지만, 서부극의 증기기관차에서 볼 법한 철제 쐐기가 버스와 버스 사이에 틀어박히자 그것도 허사가 되었다. 


낡은 관광버스 두 대가 굉음과 함께 터지듯 튕겨나가며 길이 열렸고, 아직까지 바리케이드 위에 남아 저항하던 여자들이 하늘을 날았다. 


멀리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면 스펙터클한 파괴의 현장일 뿐이겠으나, 유감스럽게도 내 왼쪽 손목은 바로 그 트럭의 운전대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내 목에 걸린 가죽 목줄과 운전석 등받이를 연결하는 여유 있는 길이의 쇠사슬은 덤이었다. 


사흘 밤을 새 가며 용접한 낡은 5톤 트럭 기반의 충각돌격용 장갑차가 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내 솜씨가 부족했다면 지금쯤 납작빈대떡이 된 채 벽과 트럭 사이에서 죽어가고 있었을 테니. 


“와아아아아—후우우우우우우우!!”


잔해를 밟은 트럭이 붕 떠오르자 조수석에 앉은 레이첼이 환호했다. 찰랑이는 갈색 단발에 새까만 프릿츠 헬멧을 눌러쓰고, 밀크초콜릿 색으로 탄 피부를 가죽 자켓과 청바지로 덮은 여자였다. 짝이 맞지 않는 인라인 스케이트용 보호구와 문 옆에 꽂아둔 새까만 원형 진압방패는 덤이었다. 


충격으로 트럭이 붕 뜨며 천장에 헬멧을 박아도, 정체를 생각하기 싫은 무언가를 밟고 미끄러진 덕에 차체가 좌우로 휘청거려도, 그녀는 마냥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 여자의 본성을 알기 전이었다면, 유원지에서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대학생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얘가 장갑차 제작 담당이라고? 정비팀 애들 돌려먹으라고 데려온 창놈이 아니라?’


‘씨발 좆탱이 봐라. 아니 진짜로, 넌 이런 고철 말고 애기를 만들어야 한다니까?’


…왜 입에서 나오는 건 음담패설뿐이고,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고릴라 주제에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사람을 심란하게 할까, 이 인간은.  


내가 백미러에 비친 그녀에게 새삼 짜게 식은 눈길을 던지는 사이, 고철 장갑트럭은 천막과 판잣집으로 가득 찬 주차장을 쓸어버리며 그대로 휴게소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각종 잡동사니가 하늘로 치솟고, 얼마 없는 세간살이를 잃은 헐벗은 빈민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대부분은 남자였고, 드문드문 있는 여자들은 늙었거나 너무 어렸다. 도덕과 사회를 유지하는 모든 전제조건들이 무너진 세상에서, 약자들의 삶이란 대체로 이러했다. 


 그래도 이들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적어도 벽 안에서는 약탈자에게 잡혀 노예로 팔리거나 방사능 괴물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으니까. 억압과 통제 속에서 강제노동과 가난에 허덕일지언정, 목숨의 위협을 받을 일은 현저하게 적다. 


중세 시대에 기사의 보호를 받는 농노들의 삶이 이러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성채를 약탈하는 유목민에 비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중세의 유목민들이 말 대신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폭주트럭은 휴게소 식당의 유리벽을 깨고 식당 안까지 파고들고서야 멈췄다. 농성이라도 하려던 건지 의자와 식탁, 주방기구 따위를 쌓아 만든 알량한 바리케이드 너머에 옹기종기 숨어있던 적들은 그대로 피떡이 되어 이세계로 떠났고, 트럭의 충돌범위에서 벗어난 운 좋은 놈들도 비산하는 파편에 얻어맞고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후우, 딱 좋은 곳에 들이박았네. 수고했어. 침대에서도 이렇게만 박아라.” 


너덜너덜한 가죽 반장갑에 덮인 손이 내 허벅지를 팡팡 두들겼다. 클러치와 액셀을 쉼 없이 밟느라 지친 장딴지가 거친 자극에 비명을 질렀다. 


“침대는 무슨. 이 개목줄이나 풀어주고 얘기, 흐앗!”


“이거 봐, 자지 잡히면 꼼짝 못하면서 꼭 매를 벌어요. 좀만 기다려, 빨리 처리하고 올 테니까. ” 


피를 본 덕에 기분이 좋은지 무방비한 다리 사이를 주물럭거리는 걸로 노예의 말대꾸를 용서한 레이첼은, 짧게 자른 더블 배럴을 쥐고 문을 열었다. 


“나, 나왔다!”


“응, 나오셨다.”


묵직한 총성 두 번에 바닥에 널브러진 채 덜덜 떨며 권총을 겨누던 두 여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방벽 세워 두고 놀고먹던 것들이라 그런가, 얼타는 쭉정이들밖에 없네.”


레이첼이 산탄을 재장전하고 두 시체에서 무기를 회수하는 사이, 철판으로 보강한 콘크리트 장갑에 둘러싸인 화물칸에서 스물 남짓한 여자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전부 레이첼과 비슷하게 차려입고, 잡다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어우, 눈부셔. 드디어 나오네.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다친 놈 하나 없이 목표지점까지 스트레이트로 왔잖아.” 


“괜찮기는 무슨. 우욱, 울렁거려…” 


화물칸의 여자들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금방 레이첼을 중심으로 뭉쳤다. 총이나 석궁을 든 이들은 다가오는 적들을 저격하고, 총이 없는 녀석들은 날붙이를 휘두르며 근처에서 기어다니는 적들의 목을 추수했다. 일대의 약탈자들을 모조리 무릎 꿇리고 '군대'라고 부를 만한 조직으로 벼려낸 이들의 정예 타격대다운 솜씨였다. 


“야, 이거 받아라. 혹시 모르니까 들고 있어.”


적들을 정리한 레이첼이 내게 죽은 년들 중 하나가 쥐고 있던 권총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권총을 받아들어 약실을 확인했다. 낡은 S&W M10 리볼버. 남은 총알은 네 발. 


“갔다 올 테니까 잘 숨어 있어. 여차하면 째야 하니까 시동 끄지 말고.”


돌격대장인 그녀가 노예인 내게 총을 줬다는 건, 이제 비전투원인 내게 신경쓰지 못할 만큼 격렬한 교전이 있을 거란 소리겠지. 


전생에 군대도 갔다왔고, 이 대충 망한 세상에서 산 지도 몇 달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싸움은 두렵다. 이번에만 해도 정말, 정말 오기 싫었는데… 


-짝!


“아윽!” 


“아우, 쫀쫀하다. 쫄지마, 새꺄! 여기 가슴 달린 것들이 수두룩빽빽인데 뭘 걱정해! 어차피 쫌만 더 버티면 다른 녀석들도 올 거니까, 아랫도리 간수나 잘 하고 숨어있어!” 


“씨이, 내 허벅지는 당신 애착인형이 아니라고요!! 빨리 가기나 하세요!”


“하여튼 앙칼지기는. 허벅시 속에 손 닿을 때마다 세우는 주제에. 이따 밤에 보자, 너. 


자! 가자, 새끼들아! 본대가 오기 전에 이곳 대빵을 잡는다!”


레이첼과 분대원들은 두 조로 나뉜 채 식당을 나섰다. 레이첼이 직접 지휘하는 조는 휴게소 뒤에 있는 전망대에 있을 적 지도부를 잡으러 가고, 나머지는 식당 건너편의 마트와 노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식량창고를 제압하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식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 임무는 트럭을 지키다가 혹시 모를 후퇴 상황에 병력을 태우고 탈출하는 것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를 봐서는 그럴 일은 없을 듯 했다. 


몇 달 내내 감시만 당하다가 갑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니, 오랜 생각 하나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손에는 권총이 있고, 약간 망가졌지만 시동이 걸린 트럭이 있다. 


내 '관리자'인 레이첼은 적어도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연약한 남자인데다 차에 묶여 있기까지 한 내가 이 전쟁터에서 달리 어디를 가겠냐는 안일한 태도가 엿보인다. 


…이번에야말로,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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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금 떨어진 도로변의 산 중턱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나무를 위장막 삼아 깔린 지휘텐트 아래에서 낡은 군복 차림의 여자들이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받은 전령들이 분주하게 손과 입을 놀렸다. 


“3번차 진입 성공했습니다! 레이첼 페더슨 중사가 직접 적 지도부를 추격하고 있답니다!” 


“1번차 돈좌! 버스벽 돌파에는 성공했으나 기동 불가능!” 


“당장 2번차 시동 걸어서 지원하라고 해! 충각이 아직 안 설치됐다고? 상관없어! 돌파는 했다니까 뚫은 곳 그대로 들어가면 되잖아!” 


“바이크 소대에서 진입 여부 묻습니다!” 


“1분대랑 4분대만 진입시켜! 3번차 들어간 남쪽으로 가라고 해! 2, 3분대는 북쪽 진입로 확보하면 그쪽으로 진입하라고 하고!” 


쏘가리와 갈매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텐트 가장 안쪽에서 지도를 깔아둔 캠핑용 테이블에 둘러선 여자들은 보다 거시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걸로 44번 국도 일대의 불온세력은 전부 정리되었다고 봐도 되겠군요.” 육군 상사 계급장을 단 여자가 말했다.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보급관님? 저항이 계속되는 걸 보면 적 지도부 지휘력이 건재한 것 같은데…” LAPD 근무복을 입은 경위가 의문을 표했으나, 테이블의 분위기는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산발적인 저항일 뿐입니다.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려는 시도도 안 보이고, 각 제대끼리 뭔가 유기적인 협동을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마 기름 구경도 하기 힘든 세상에 차량을 이렇게 아낌없이 쓰는 세력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을 겁니다.” 전차병용 커버올을 입은 중위가 여상하게 대꾸했다. 기갑 장교 특유의 자신감과 똘끼가 묻어나는 태도였다. 


“근데 아이린 중위님은 왜 여기 계십니까? 당연히 밑에 계실 줄 알았는데.” 


“예비대. 위험하다 싶으면 전차 타고 나가려고.” 


“그 폐차장에서 잡아온 남자가 맡은 구닥다리 탱크요? 이야, 그걸 진짜 살렸습니까?”


“못 하면 출격 전에 사기진작용으로 병사들한테 돌려버린다고 하니까 기어이 성공하더라고. 불도저 엔진을 스왑해 넣었다던가.” 


“아이린 팩스턴 중위, 진심으로 한 소리였나?”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여자가 물었다. 이 잡탕 패잔병 부대에서 유일한 영관급 장교의 한마디에 테이블 전체가 잠시 침묵했다. 


“…그럴리가요. 소속감이 없는 노예라 동기부여를 좀 해 줬을 뿐입니다.” 


“그럼 다행이군. 혹시 몰라서 경고하지만, 그 녀석은 앞으로 건드릴 생각들 접으라고 해. 망해버린 세상에서 저 정도 기술자를 고작 애들 아랫도리 간수 못 해서 날려먹을 수는 없…” 


“3호차가 예정에 없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북쪽 출구 방면으로 이탈하려는 것 같습니다!” 


“…또 도주시도인가. 페더슨에게 살짝 풀어줘 보라고 한 보람이 있군.” 


“어떻게 할까요?”


“아이린 중위, 전차 끌고 가서 북쪽 진입로 봉쇄해. 본부소대에서 운전수 하나 차출해서 차량 인수인계시키고.” 


“알겠습니다!” 


“노예 놈은 잡아오면 장교 막사에다 던져놓으라고 해. 역시 ‘교육’이 부족했던 모양이야.”






맨 위 짤은 멕시코 마약카르텔이 만든 수제 장갑차에오. 

[퓨리오사] 예고편을 보고 갑자기 매드맥스 뽕이 차올라서 써봤는데... 

정작 써 놓고 보니까 남역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