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이 터지자 영국은 전비 마련을 위해 약 3억 5천만 파운드 가량의 전시국채(War bond)를 판매했습니다.


기간은 10년 만기였고, 수익률도 평시국채의 2.5%를 훨씬 능가하는 4.1%로 잡았습니다.


당연히 영란은행은 이 국채가 고수익률+애국심 버프를 받아 순식간에 완판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목표량인 3억 5천만 파운드에 한참 못 미치는, 9100만 파운드 가량만 겨우 판매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전쟁통의 국채를 불신한 영국 자본가들의 성향도 있었고, 최소 판매단위가 100파운드라 서민들은 나라를 도우려 국채를 사고 싶어도 못 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국채 판매액은 금융수도 런던에 집중되었죠.



당연히 영국 국채가 제대로 팔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협상국의 전쟁 수행에 엄청난 장애가 될 게 뻔했습니다.


이에 영란은행이 선택한 대안은 '가짜뉴스' 였습니다.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우리 국채 다 팔렸어요!' 라고 대대적인 가짜뉴스를 살포한 것입니다.


국채 다 팔렸다는 1914년 11월의 파이낸셜타임즈 지면



당연히 이 보도자료를 받아쓴 세계 여러 신문들은 영국 국채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은 체면 실추와 사기 감소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때는 국채가 다 안팔렸다는 사실은 영란은행 높으신 분 몇분만 입을 잘 다물면 충분히 은폐 가능했거든요.



그래도 숨길 수 없는 대차대조표의 예산 공백은 절묘하게 은행 장부를 조작하여 숨기고, 영란은행 직원들이 '개인 투자자' 를 자청하며 부족분을 구매하고 장부에 '기타 채권 매입' 으로 적음으로써 돌려막기를 시도했습니다.


얼마나 철저했던지, 현대 자본주의의 기틀을 세운 존 케인즈마저도 이를 '파멸적인 실패를 막은 기술이다' 라며 칭찬했을 정도입니다.



만약 이게 조금이라도 밝혀졌다면 영국의 금융 신뢰도는 땅으로 떨어지고 적국 독일은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겠지만, 1차대전 때 이는 철저히 숨겨졌습니다. 


이런 조작을 모르는 상황에서 영국 전쟁채권은 1915년부터 슬슬 다시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수익률이 5%까지 올랐습니다.


물론 이 후폭풍으로 1920년대 영국은 예산 상당수를 국채 갚는 데 써야 했지만 말이죠.


https://bankunderground.co.uk/2017/08/08/your-country-needs-funds-the-extraordinary-story-of-britains-early-efforts-to-finance-the-first-world-war/



이 사실은 1차대전 100년 후인 2017년에 영란은행 공식 블로그를 통해 다시금 공개되었고, 결국 국채 관련 오보를 낸 파이낸셜 타임스는 103년 만에 '오보 정정'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약 100년동안 오보인 걸 밝혀내지 못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진실 아닐까요?



블로그 출처: 무수천의 공간.

https://m.blog.naver.com/minjune98/223159730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