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오랜 세월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碑木)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碑木)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우리가 한 번 쯤 들어봤을 가곡 <비목(碑木)>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이 노래는 사실 처참했던 우리 역사를 녹여낸 노래다.


초연(硝煙)은 총에서 나오는 연기를 말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울창한 계곡은 수십년 전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집어삼켰고, 그 때 계곡을 뒤덮은 핏자국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계곡물에 씻겨 내려갔다.


언제 이 곳에 그런 난리가 있었을까 생각지도 못하던 찰나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계곡 구석에 꽂혀 다 썩어가는 나무토막에 걸린 구멍 뚫린 철모 하나.


비석(碑石)조차 세우지 못하고 나무를 비석 대신하여 세운 비목(碑木)은 이 평화로운 곳을 사수하려 목숨을 던진 어느 이름 모를 병사가 잠들어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