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빼고는 걍 평범한 왕이라는 건 틀린 말임

간혹 이씨 왕들보다는 나아서 고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뭐 고려 왕들도 광종, 현종이나 공민왕을 빼면 조선 왕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는 후삼국시대 이래 가장 성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음. 삼국시대의 왕들은 기록이 없어서 누가 성군이었는지 암군이었는지조차 모르겠고...


아무튼 음악 같은 부수적인 건 빼고 중추적인 것 위주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음


1. 농업

다들 국사 시간에 세종이 편찬한 농사직설 배웠지?

지금으로 따지면 농업 교과서 같은 건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세종 즉위 전에는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거라 거의 논밭에다가 대충 씨 뿌려놓고 엄마 아버지한테 배운대로, 아니면 옆 집 사람이 하는 대로 걍 대충 따라하는 정도로 농사를 지었는데

매뉴얼을 자세히 적어서 "이렇게 하면 안 망하고 평소보다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어." 이렇게 적어놓은 거임

실제로 이 때 모내기가 처음 들어왔고, 생산량이 확 뛰었는데 세종 때 찍은 최고 생산량을 처음으로 돌파한 것이 일제시대임 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이 때는 조선 후기에 비하면 인구는 거의 절반 수준이었으니깐


전근대의 농업은 현대로 따지면 공업 그 이상인데, 박정희가 최신식 공장설비를 전국에 보급화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보면 됨


2. 수학과 과학

농업 분야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게 천문/달력 부문이다 절기를 잘 알아서 농부들이 날씨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함. 측우기를 만들어서 통계를 내고, 언제쯤 비가 많이 올 것이니 홍수 대비를 할 수 있도록 했지 그 전까지는 걍 중국 달력 믿고 있다가 갑자기 홍수 나면 당하고 그러는 거야.


달력을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서 시간의 오차가 나지 않게 했음 그 전에 쓰던 달력은 시간 오차가 자꾸 나서 나중에는 며칠 단위로 안 맞고 "일주일 뒤 쯤 슬슬 비가 오겠네~" 했다가 갑자기 폭우 내려서 뒤지는 뭐 그런 거임


3. 국방

천자총통 같이 뭔 총통, 뭔 총통 하는 거 들어봤지? 히틀러 얘기하는 거 아니고 대포 얘기임. 세종 때 개발해서 많이 만들어놨어. 임진왜란 때 활약한 거북선이나 비격진천뢰도 다 세종 때 개발해 놓은 거 탑재해서 좀 손 보고 갖다 쓴 거임.


옛날에 안성기랑 정재영 나오는 신기전이란 영화 봤는지 모르겠는데, 중국이나 서양조차도 한 번 불 붙이면 여러 개가 휘리릭 날아가서 초토화시켜놓는 기술이 없어서 병사들의 활 쏘는 속도를 높이는 훈련을 시켰는데 조선은 그냥 한 번 불 붙이면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기술을 독자개발함. 과학자들 ㄹㅇ 갈아넣었다.


4. 영토 개척

4군 6진 개척함. 세종이 만들어진 국경선이 6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변하지 않음. 아마 세종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평안북도 일부와 함경도는 우리가 만주라고 부르는 땅에 포함되어 있었을 테고, 뭐 애국가에 나오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없고 "동해물과 금강산이~" 정도 됐겠다


5. 복지

걍 나라가 하는 일이 백성들에게 세금 받아먹는 것이 전부였던 전근대에 그래도 나름대로 노비들한테 휴가도 주는 등 더 나은 근로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음 죄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벌을 내리는 것도 금지하고 현대 기준에서는 완화된 것도 심한 거지만, 당시에는 나름 진보적인 것이었음


이런 많은 공적도 있지만 백성이 고을 수령을 고소할 수 없는 부민고소금지법이나, 양인과 노비 사이에서 나온 자식은 어미의 신분을 따른다는 노비종모법 같은 악법이 있었음. 노비종모법은 특히 천민을 늘려 국가의 생산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악법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악법을 깔 수는 있더라도 세종을 아예 평범한 이씨조선의 왕, 혹은 암군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업적이 30개가 넘고, 부정적인 것이 3~4개 정도 되기 때문이다. 세종의 공적은 부정적인 면을 덮고도 훨씬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