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블로그의 글이다.

 

 

 

난 1972년생, 횡성 본관. 지금 46세다. 나의 아버지는 1944년에 태어나셨다.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기준으로는 늦은 나이인 30세에 아버지를 낳으셨다. 즉, 나의 할아버지는 1914년생인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한 1890년 정도에 태어나셨다.

 

 

 

증조할아버지에 따르면, 우리 가문은 대대로 평범한 농부였다고 한다. 고조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경하고 글을 조금 배운 증조할아버지가 남긴 일기 비슷한 글이다.

 

 

 

나는 평범한 농부이다. 아는건 농사, 내 이름이 언덕 아랫집 아들 이기현이란 것, 이 동네가 횡성이란 것 빼고는 모른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그냥 평범하게 지내고, 또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논밭을 갈고 있었다. 올해는 풍년일까?

그런 와중, 어느 사또가 서울로 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과거에 합격했나 보지.

그냥 한눈 팔고 바라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일이나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 날, 아버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에게 과거는 안 되는 것이야. 현재를 바라봐야지."라고 했다고 하셨다

 

 

 

그 일로 몇년 후, 익숙한 얼굴이 돌아왔다. 아니, 개똥이 아닌가?

개똥이가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돌아왔다. "야, 요새는 돈만 있으면 과거고 다 되는 세상이여! 나도 이제 나랏님이라고!"

부러웠다. 어디서 돈을 마련했을까. 생각에 잠기니 개똥이가 "나와 같이 서울에 와라! 돈이라면 벌 수 있다!" 일리 있다. 개똥이도 됬는데, 나라고 안 되나?

다행히 아버지도 좋다 하셨고, 개똥이 따라 서울로 갔다. 개똥이네 상회에 가 보니 역시 서울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

 

확실히 나는 이번에 운이 좋았다. 일단 평범한 농부보다는 조금 더 될 수 있었으니. 꼭 성공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처음 몇 년은 탄탄대로였다. 개똥이네 상회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고, 글도 배우고, 확실히 무언가 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일본이란 동네에서 나랏일을 맡는다는 때부터, 무언가 삶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이 분들은 옆에 더 큰 상회를 차렸다. 그들은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더 싼 갚에 팔았다. 아니, 우리 상회는 좋은 품질을 보장하지도 못했고, 싼 가격에 매기지도 못했다. 조선이 나랏일을 맡을때는 할 만했는데, 거기다 사람들이 다 일본분들 상회에 간다.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개똥이네 상회는 망하고, 우리 둘은 주저않았다. 아버지에게 성공하기 전까지 안 돌아오겠다 했는데...

 

처음으로 느꼈다. 평범함의 감사를. 그냥 평범히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결국 서울에 자리를 내리고, 돈을 벌었지만, 삶은 편하지가 않았다. 몇몇 순사한테부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조선인이 뭐길래, 내가 뭐 때문에 조선인이어야 하는데. 뭐가 나를 조선인으로 만드는데. 나는 나일 뿐인데.

 

아버지가 그립다. 실패한 것에 죄송스럽다. 한번만 뵙고 싶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올해 아버지 연세가 마흔몇 되시려나... 있는 돈 없는 돈 보태서 그나마 선물을 장만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근데 아버지가 없다. 자세히 보니 마을사람들이 대부분 할아버지들과 아주머니들 몇밖에 남지 않았다. 아주머니에게 영문을 물었다.

 

"아니, 글쎄, 누런 옷 입은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더니, 갑자기 동네 아저씨들이랑 아낙네들을 데려가지 않냐? 뭔진 모르겠지만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탄광에 간다나. 그때 아버지 곁에 있을걸. 지켜드려야 했는데, 너무 후회스럽다. 아니, 내가 있어봤자 바뀌는 건 없었어.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야 결국 진정했다.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나마 자리를 잡을 때, 1933년 쯔음이었던가, 그때부터 너무 힘들어졌다. 어느 날부터 순사들이 오더니 내 물건들을 다 가져갔다. 중국이란 동네와 전쟁을 해야 한다나. 쇠붙이, 살림들이 다 없어졌다. 나무 식기 몇 개 남았나. 중국이랑 전쟁을 하는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왜 남들끼리 전쟁을 하는데 내 물건을 가져가야 하는데. 중국이 뭐고 일본이 뭐고 내 일이 아니니 나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내 물건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 화난다.

 

1944년. 이토록 힘들던 시절은 없던 것 같다. 하루 겨우 돈을 벌어서 하루 써서 살았다. 집도, 식기도 다 빼앗기거나 팔았다. 쌀밥 한 그릇이 전부이다. 매일 일하고 하루에 밥 한 그릇밖에 겨우 끼니를 때웠다. 개똥이네도 나랑 다르지 않다. 일본과 미국이란 나라가 전쟁을 한다나. 내 금쪽같은 아들놈들도 전부 갔다.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내 희망은 내 손주 하나뿐. 이 손주를 낳고 다 끌려가서 나한테는 이 아이밖에 없다. 제발 이 아이만은 살아남기를 바란다.

 

이 때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동네 동생들이 남자나 여자나 다 끌려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느낌이 안 좋다. 다시 만날 수는 있는 것인지.

 

1945년 8월 16일. 이 날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갑자기 사람들이 나뭇가지와 깃발을 들고 뛰어올랐다. 영문을 물어보니, 일제가 물러갔단다.

 

마침내 그 지긋지긋한 순사들이 물러간 것일까? 너무 좋았다. 드디어 내 물건이 내 물건이 되었나? 이웃들도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모르겠다. 암튼 사람들이 기뻐하니 그런 듯 하다. 나도 기분이 좋다. 이제 새 시대가 밝고, 다 좋아질 듯 하다.

 

 

 

하지만 기쁨도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다. 김일성이란 놈이 전쟁을 일으키고 개똥이네, 아니, 이제 진형이네라 불러야겠네. 와 함께 피난을 갔다. 서울에 돌아오니 동네 자체가 날라갔다. 믿기지가 않는다. 새 시대가 밝은 한 5년동안 악착같이 모아서 진형이네와 함께 집을 샀건만, 그것도 날라갔다. 결국 무일푼이다. 일본에서 일으킨 전쟁에서 겨우 돌아온 동네 동생들도 다시 다 사라졌다. 이제 한둘 남았을까, 다시 본 건 진우랑 성현이 뿐이다. 그 많던 이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새 시대가 밝은 줄 알았는데, 또 이건 뭔가.

 

그 뒤 몇십년도 너무 힘들었다. 툭하면 사라지는 이웃, 말만 하면 때리는 경찰, 찣어질 것만 같은 배. 다 똑같다. 일본이 나랏님이나, 조선이 나랏님이나, 바뀐 건 없다. 나, 내 아들, 내 손주한테 희망은 없나?

 

내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야 세상이 좋아지고 다시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겨우 다시 느낄 때, 지금, 나는 이미 눕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후대에게 내 글일 남긴다. 지금 달력이 1991년이라고 한다. 살 만큼 살았지...

 

 

 

 

내 얘기를 하자면, 2018년 기준 46의 평범한 사장.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큰딸은 일본에서 유학중이다.

 

악착같은 치세와 생활환경을 겨우 버텨낸 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우리 가족을 지금처럼 일군 아버지는 존경스럽다.

 

다시 일제 얘기를 해보자면, 미디어에서 일본을 절대악이라 그러지만, 진짜 일본의 피해자인 할아버지가 항상 그러셨다.

 

"모든 일본인이 나쁜 것은 아니란다. 그들의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하면 결국 그들이 저지른 죄를 우리가 저지르게 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할아버지 말이 옮다. 딸내미가 일본 유학중이라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일본인과 교류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가 보면 뭐라 하실까. 조선인이 일본인과 평등한 선에서 대화한다고, 세상 많이 바뀌었다 하실 것이다.

 

자주 만나다보니 상당히 친해져 정치 얘기를 할 정도가 되자 안 것이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의외로 옛날 얘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부끄러운 과거이며, 부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라 알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지금 이슈가 되는 넷 우익, 새역모 등의 단체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들은 그 작자들이 미쳤다고, 상당히 격양적인 단어를 써가며 설명했다.

 

역사를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는 이정표라고 한다.

 

결국 그들이 옳은 듯 하다. 역사를 혐오가 아닌 교육의 목적으로 써야하는데.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하다.

 

아니, 증조할아버지에게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하던 것처럼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어느 나라든 간에 한 사람만 보고 그 나라를 생각하는 건 옳지 않을까.

 

 

 

가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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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시대에 대한 직접적 내용을 담고 있는 듯 하다.

 

 

 

허구이던 진실이던 간에, 나도 이 글을 곱씹어보고 생각했다.

 

 

 

우리의 현대 일본에 대한 인식은 한쪽으로나 너무 편향된 것이 아닐까?

 

 

 

"역사"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가 아니라, 미래를 가르켜줄 교사가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내 개소리를 들어주어서 고맙다. 욕은 지양해주고, 생각이 있으면 정중하게 얘기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