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학창시절 난 제법 모범생이었다. 

 

난 모종의 이유로 (긍정적인 의미로)보수적인 경향이 강해서 언제나 선생님들을 대단히 존경하려고 애를 썼다.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 이념의 영향으로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되는데 적어도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해야 한다는게 학창시절 나의 신념이었다.

 

제아무리 무능하고 재미없는 교사여도 절대 조는 일이 없었고 뒷담을 깐 일이 없다. 그러다보면 교사들이 (특히 무능하고 인기없는 교사들이)나를 많이 이뻐해주고 친해졌는데, 그러다보면 교사들도 교사들 나름의 애환이나 고심이 있다는 걸,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배울 점은 있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처음부터 삐꺽대는 관계가되어 끝까지 존경할 수 없었던 담임교사가 하나 있었는데

 

내 인생에서 만난 최악의 악연이자 내 학창시절을 망쳐버린 최악의 교사 중 단연 1위로 꼽힌다.

 

짤딸막한 키에 매일 똑같은 생활한복을 입고다니는 문학교사로, 수험생활 중 제일 중요한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다.

 

 

그 분은 직접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누가보더라도 전교조 티를 팍팍 내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나중에 전교조 관련 기사에서 그분의 이름을 접했을 땐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학생들 앞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에 대해서 인신공격급 모독을 서슴지 않고 마구 욕을 해대고, 비아냥거리고, '쥐박이 쥐새끼가...'어쩌고거리면서 자기혼자 킬킬거리는데

어쩔 수 없이 웃어주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자기는 학생들도 웃기는 대단히 재밌는 교사라는 듯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구역질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성적순으로 내가 어쩔 수 없이 반장을 맡게 됐는데, 대부분 선생님들은 성실하고 예의바른 스타일의 날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이 선생은 달랐다.

 

처음부터 내게 굉장히 띠껍게 굴었다. 자기는 마치 예의따윈 초월한 비권위적인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려는 듯 예의바르고 성실한 애들한테는 되게 띠껍게 굴고 반대로 우리반 일찐들에겐 되게 살갑게 굴면서 어울리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찐따들이 아닌 일찐들과 어울리는 쿨하고 멋진 교사라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도 내게 띠껍게 굴었는데, 정말 나중에 동창들과 만나서 들었던 얘기였지만 우리 아빠가 경찰이어서 그랬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친구들 사이에선 소문이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충분히 수긍하고도 남을만한 이유였다.

 

 

그 선생은 문학선생이면서 역사 의식과 정치의식이 아주 투철하셨는데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는 태백산맥을 언급하며 경찰을 무슨 주구(검정개)처럼 여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친일 앞잡이의 후예이자 독재세력의 아첨꾼이라는 등의 발언을 심심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 개인적으로 태백산맥과 조정래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직접 읽어보고나서 오해를 풀었지만..

 

 

그렇게 정의를 사랑하신단 분이 스승의 날때 내가 몰래 쥐어준 골프장이용권과 백화점상품권은 잘만 받아쳐먹더라.

 

 

수업중에 저지른 온갖 질나쁜 섹드립은 지면이 더러워지므로 생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대단히 쿨하고 재밌는 교사라고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고 이분이 전교조 티를 낸 결정적인 모습을 꼽으라면 노무현 대통령 열혈 지지자였다는 사실이다.

 

내가 특정 사이트와 연관될까봐 걱정스러워서 말해두지만, 난 노무현 대통령도 대단히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때당시 노무현 대통령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전히 이 무능하고 인기없고 질나쁜 교사로 말미암아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다 노무현 대통령은 싫어하게 됐을 것이다.

 

틈만 나면 노무현 이명박 두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이명박보다는 노무현이 훨씬 잘했네로부터 시작하여 노무현 평전을 그대로 읊듯이 그의 영웅적 생애를 줄줄좔좔 읊는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생애를 영화 '변호인'을 통해 알았겠지만 난 이미 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딴 인간이 노무현 대통령을 칭찬해봤자 효과는 역으로 나타난다. 저딴 인간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무현 대통령도 별 거 없거나 저런 사람이랑 동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춘기적인 반발심으로 말미암아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괜히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들한텐 띠껍게 굴고, 일찐들한테는 비굴하게 웃으며 어울리는 꼴을 보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능력이 좋아서 수업을 잘 가르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수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걸로 시간을 허비하기가 일쑤였고 수업은 지루하고 따분했다.

 

 

 

전교조라고, 태백산맥을 읽었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다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난 그 인간을 통해 똑똑히 알게됐다.

 

 

 

 

 

나는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다소 보수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적이란 말이 단순히 전근대적인 교육만을 지향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기본적이고 중요한 보수적 가치에 입각한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교육은 그 가치의 실현, 공자의 사상, 곧 인의예지의 실현이자 기독교적 박애정신과 절제의 정신의 실현을 지향한다. 곧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을 지향해야한다. 

 

애석하게도 전교조가 지지하는 진보적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보다는 인간을 짐승들로 만들어왔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절제보다는 방종하게 하고 진정한 가치를 제시하게 하기보다는 망망대해 속으로 학생들을 무책임하게 내몰아 수많은 시간을 방황하게 만든다.

교육이 진보적이 될수록 젊은 시절 품게되는 반항심으로 학생들은 퇴폐적이 되어 자포자기하거나 비합리적 파시즘과 폭력옹호와 독재찬양으로 내몰게된다.

진보적 교육이 초래한 결과는 인간이 아닌 수능 점수에 일희일비하는 짐승들만을 만들어냈으며 그 짐승들이 야기하는 아무 영양가 없는 혼란만을 초래해왔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면서 전교조는 필연적으로 자기 잇속만을 챙기려든다.

교육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그 교육을 담당하고 학생들과 직접 맞부딪치는 교사들 역시 철저한 공적인 인간이 돼야만 하고, 공적인 기준에 따라 모범이 될 수 있어야한다.

작금의 교권의 추락은 전교조 스스로가 초래한 최악의 결과물이다. 그걸로 교사들만 피해를 입으면 자업자득이니 모르되,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애꿎은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