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주기라고 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 김해로 대거 내려가는 문재인과 그의 부하들은 노무현에게서 무슨 교훈을 얻을 것인가. 문재인에게 절대 정치하지 말라고 한 노무현의 당부가 단지 더러운 정치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란 것을 문재인 만 모르는데-. 오히려 "네 머리와 실력으로는 안된다. 절대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문재인의 지력으로는 5천만 인구가, 전세계와 거래하고, 대형 산업국가이며, 국민 대부분이 대졸자이며, 첨예한 이념적 대립이 존재하고, 후진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팔자를 고친 나라이며, 6.25전쟁을 거쳐 중국 소련과 붙어 승리한 나라이며, 국민들의 마음이 죽 끓듯하고, 이해관계가 복잡 다단한 이런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 제임 중 어느 날이건 그 무리수의 결과로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터지지나 않을까를 염려한다. 노무현의 자살도 그 자신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도적적 파멸'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문재인에게는 그 무리수라는 것이 몸으로 올 것이다. 노무현 비서실장이라는 직함만으로도 생이빨을 여러개 뽑았다지 않은가. 


노무현이 자살한 것은 노무현을 지탱하던 그나마의 실날같은 존재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뇌물 문제를 놓고 젊은 검사들과 인터넷에서 싸우다가 어느 순간 뉴욕의 별장이 나오고, 고급시계가 나오고, 1호 비행기에 실려 나갔던 달러 꾸러미 이야기가 나오고, 모모 하는 돈을 맡아 관리했던 자들의 이름이 나오고---.그 돈을 누가 부지런히 가져다 썼다고 하고--.


그래서 진실을 알아버리게 되었을 때 노무현에게 남아있던 가느다란 한가닥 자존심마저 툭 하고 끊어져 나갔던 것이다.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 티코 이야기를 했던가,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 뇌물 먹었다고 사람들 감옥에 집어넣었던가, 내가 이런 것을 모르고 정적들을 부패했다며 조롱해왔던가" 하는 도덕적 자괴감이 노무현의 마음을 여지없이 파괴하였을 것이다. 


나는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우선 직설적인 사람이어서 단순하고, 시대를 뛰어넘기는 커녕 시대의 충실한 자식이었을 뿐이었고, 뒤늦게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되었고, 처음부터 정치의 '더러움'이라는 면에 대해 알게 되었고, 늦게 배운 도둑 처럼 뒤늦게 좌익 이념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결코 돌아올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순수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성숙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자기들만의 낡은 창고 속에서 지나간 시간만 읊조리던 운동권 세력에 '떠밀려' 정치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두천 여학생들의 교통사고와 그 우스꽝스러운 2002월드컵의 열기에 힘입어, 그리고 무엇보다 정몽준의 바보같은 계산 덕분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봄 날 부엉이 바위에서 그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던져버렸던 것이다. 젊은 검사들이 들이대는 증거들이 인도하는 곳은 그가 서 있을 곳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자기가 결코 알지도 못했고, 견딜 수도 없는 더러운 돈 다발이 나왔을 때 노무현은 더는 퇴로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되었을 때 그 당시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왔던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를 직면할 힘이 다했을 때 그가 선택할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노무현 자살 10주기라며 그를 찾아가, 그를 추모하다면서, 김해를 찾아간 정치 떨거지들과 악귀같은 인간들을 노무현은 과연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가. 한낱 방랑자의 다른 이름이었던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다시 끌려나와 주술이 되고 무당집 깃발처럼 힘없이 나부끼고 있을 뿐 인 것이다. 처음부터 공부가 모자랐고 그러나 대통령직을 수행해 가면서 부분적이나마 진짜 대통령이 되어갔던, 아니 그러자고 노력이나마 했던 자가 바로 노무현이다. 대통령이라고 청와대에 앉아 있는 자기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나 참, 이래가지고 대통령을 왜 맡았나"라는 후회의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던 자, 그가 바로 노무현이라는 사람이다. 오늘 봉하 마을에 가서 그를 추도한다는 정치권 쓰레기들은 아직도 그를 제대로 모르다고나 해야할지.


노무현이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의 법인화를 해보겠노라고 동분서주할 때, 그래서 한국의 대학도 제대로 좀 실력있는 대학으로 만들어보겠노라고 했을 때 그를 도와준 놈들은 오늘 봉하마을에 한 넘도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뒤늦게 무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동맹의 소중함을 깨닫고, 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의 품위를 깨달아, 기어이 한미 FTA를 결행했을 때 오늘 김해에 가는 어느 넘 하나 도와준 것이 없다는 사실을 노무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지금 정권을 다시 쥐고 휘두르며 입으로는 '노무현 정신'을 떠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스스로를 "좌파신자유주의"라고 말했을 때 그말을 문재인은 결코 알아들 수 없었던 것이다. 바보들만 남아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으니 노무현은 그것이 한스러울 것이다. 


세상 일은 그렇게 허망하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오늘 문재인은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 정규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