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191) 여름 4월에 좌가려 등이 무리를 모아 왕도를 공격하였다. 왕은 기내(畿內=서울 변방)의 군사를 동원하여 평정하고,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근래에 총애하는 바에 따라 관직을 주고 덕이 없어도 벼슬자리에 나아가니, 해독이 백성에게 미치고 우리 왕실을 흔드니, 이것은 과인이 똑똑하지 못한 소치이다. 이제 너희 4부는 각각 어질고 착한 사람으로서 아래에 있는 자를 천거하여라.” 이에 따라 4부가 함께 동부(東部)의 안류(晏留)를 천거하자, 왕은 그를 불러 국정을 맡겼다. 안류가 왕에게 말하였다. “미천한 신은 용렬하고 어리석어 본래 큰 정치에 참여하기에 부족합니다. 서압록곡(西鴨谷) 좌물촌(左勿村)의 을파소(乙巴素)란 사람은 유리왕 때의 대신 을소(乙素)의 손자로서, 성질이 굳세고 지혜와 사려가 깊으나, 세상에서 쓰여지지 못하고 힘들여 농사지어 자급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려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왕은 사신을 보내 겸손한 말과 두터운 예로써 모셔, 중외대부로 임명하고 작위를 더하여 우태로 삼고 말하였다. “내가 외람되이 선왕의 업을 이어 신민(臣民)의 위에 있으나, 덕이 부족하고 재주가 짧아 정치에 익숙하지 못하오. 선생은 능력을 감추고 지혜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궁색하게 시골에서 지낸 지 오래 되었소. 이제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고 마음을 바꾸어 왔으니, 이것은 나의 기쁨과 다행일 뿐만 아니라, 사직과 백성의 복이오. 가르침을 받으려 하니 공은 마음을 다하기를 바라오.” 을파소가 뜻은 비록 나라에 허락하였으나 받는 관직이 일을 다스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대답하였다. “신의 둔하고 느린 것으로는 엄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어질고 착한 사람을 뽑아 높은 관직을 주어서 대업을 이루십시오.” 왕은 그 뜻을 알고 곧 국상으로 임명하고 정사를 맡게 하였다. 이리하여 조정의 신하와 왕실의 친척들이 을파소가 신진으로서 구신(舊臣)들을 이간한다고 하며 미워하였다. 왕은 교서를 내려 『귀천을 막론하고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멸족시키겠다.』고 말하였다. 을파소가 물러나와 사람에게 말하였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마땅한 도리이다. 지금 임금께서 나를 후의로써 대하니 이전에 숨어 지내던 것을 어찌 다시 생각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지성으로 나라를 받들고 정교(政敎)를 밝게 하고 상벌을 신중히 하니, 인민이 편안하고 안팎이 무사하였다. 겨울 10월에 왕은 안류에게 말했다. “만약 그대의 한마디 말이 없었다면 나는 을파소를 얻어 함께 다스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 많은 공적이 쌓인 것은 그대의 공이다.” 그리고는 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사론(史論): 옛날의 밝은 임금이 어진 이를 대할 때, 등용하는 데에 구애됨이 없고 등용하면 의심하지 않았다. 은(殷)나라 고종(高宗)의 부열(傅說)에 대한 것이나, 촉(蜀)나라 선주(先主)의 공명(孔明)에 대한 것이나, 진(秦)나라 부견(堅)의 왕맹(王猛)에 대한 것이 그와 같다. 그런 후에야 어진 사람이 자리에 앉고 능력있는 사람이 직분을 맡아 정교가 밝게 닦아져서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왕이 결연히 홀로 결단하여 을파소를 바닷가에서 뽑아 여러 사람의 입놀림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관료의 윗자리에 두었으며, 또 천거한 자에게도 상을 줬으니 선왕의 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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