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승인안 원문을 따르면 '한반도 남반부'에 관할권과 통제권을 갖는 [합법적 정부]가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되었고 이것이 한반도 내의 그러한 [유일]한 정부라는 얘기임.
작은따옴표가 유일합법정부론을 부정하는 근거로 대괄호가 그걸 인정하는 근거로 인용되는 부분임.

결국 승인안 문언상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은 분명하고 다만 대한민국 정부가 38선 이북에까지 관할권을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를 수 있음. 자유총선거가 이뤄진 한반도 남반부를 굳이 '한반도 다수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서술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강하게 시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북한 지역에까지 관할권을 인정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움.

난 북한 지역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관할권이라 유엔이 인정했다고 보지 않음. 당장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성 근거를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에서 찾았는데 그 선거가 이뤄지지 못한 북한 지역에 대해 관할권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임. 그리고 북한에서 선거가 이뤄지지 못한 게 결국 소련의 비토 때문인데 임시위원회가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정부에게 그 관할권이 있다는 주장으로 유엔상임이사국이자 공산진영의 리더인 소련의 위신을 실추시키려 시도한다? 이건 소련이 유엔에서 지랄발광할 사안임. 위에도 말했지만 유엔 감시하의 선거 자체가 북한에서 안 이뤄졌고 오히려 북한정부야말로 그게 제대로 된 선거건 어쨌건 북한 지역에서의 선거를 통해 출범했기 때문에 이 경우 소련의 항의에 설득력이 넘쳐남. 또 유엔은 6.25 이후에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를 설치해서 남북한 지역에서 대의제에 기초한 통일민주정부 수립을 목표했음.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지역까지 관할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음. 선거 실시야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건 대한민국 정부의 관리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해야 맞지 멀쩡한 정부를 놔두고 새로 정부를 수립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얘기임.

결국 유엔승인안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내의 유일합법정부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북한 지역에까지 관할권을 가지는 건 아니라는 게 타당하다고 보임. 그런데 이건 분단이 일시적이며 통일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해결방안이 실행될 것이라고 보았던 과거의 얘기고 1970년대쯤 되면 그 방안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확실시되면서 그냥 남북한 정부의 주체적인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 방안이 한반도 대내외적으로 더 힘을 얻게 되고 유엔도 이에 따라 한국통일부흥위원회를 해체함. 당장 남한부터가 7.4 남북 공동성명 같은 걸 통해 북한의 정치적 실체를 헌법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그 결실이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이고.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로는 유일 합법정부론은 그나마 과거형으로서는 몰라도 현재형으로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얘기가 되어버림. 유일 합법정부론에서 말하는 합법의 개념은 '유엔 감시하의 자유선거'와 '이에 대한 유엔의 인정'에 근거하고 있는데 자유선거는 없었어도 유엔이 북한을 인정한 셈은 되었으니까.

물론 국제법이 아닌 국내법인 헌법을 근거로 북한의 합법성을 부정하는 거라면 그런 얘기는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함. 사실 우파들이 유엔 승인안의 대한민국의 관할권을 호도하는 것만큼이나 좌파들도 유엔 동시가입 가지고 북한의 합법성이 완전무결한 것마냥 사기치는 건 사실이거든. 국제법이 국내법에 대해 우월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헌법은 북한을 합법정부로 승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