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다.


침략국 러시아는 그저 특수 군사작전이라고 둘러댔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내 나이는 서른.


한심하게도 그 나이 먹도록 부모의 집에 빌붙어 주에 한두 번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 나가 번 돈으로 무가치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그곳을 내 인생의 종착역으로 삼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인터넷에선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토방위군 산하에 국제군단을 창설하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는다는 내용의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목숨 말곤 잃을 게 없었던 나는 큰 고민 없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연락해 관련 정보를 물어보고 서류를 제출하고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으로 개설된 후원계좌 번호와 마음은 고맙지만 당신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적당히 돌려쓴 글 몇 글자였다.


 “그래……, 예비군 다 끝난 징집병 따위가 도움이 될 리 없겠지.”


큰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던 만큼 포기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나에게 있어 포기는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부차 학살, 마리우폴 극장 공습, 크레멘추크 폭격, 이지움 학살, 드네프르 공습…….


전쟁이 계속될수록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수백, 수천 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의미 없는 잠깐의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 돈이 남으면 그때 받았던 계좌번호와 NGO 앞으로 후원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멀어져갔고, 계속되는 전쟁에 염증을 느껴 협상을 종용하는 여론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겐 이 전쟁이 남의 나라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고작 한다는 일이 따듯하고 안전한 이역만리 타국에서 돈 몇 푼 붙여주는 것이 전부였으니 그들을 비난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자살할 용기도 없이 무의미한 삶을 이어가는 매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 기사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국제군단에 지원한 한국인 의용병, 여전히 활동 중인 것으로 확인돼.”]


그건 평소와 같이 켠 SNS에 올라온 수많은 게시글 중 하나였다. 


누군가에겐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기사였겠지만, 내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의무감에 다시 불을 붙이는 성냥과도 같았다.


당신은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포기하고 인생을 낭비할 때,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신념을 관철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설령 총 한번 쏘지 못하고 후방에서 잡일만 하다 눈먼 포탄에 죽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 죽음은 분명,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보다 값질 테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목적이 생기고 나니 일을 찾고 출근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어졌다.


단순히 비행기표 값만 벌 것이 아니라 거기서 쓸 장구류까지 구매할 돈을 버느라 한 달 남짓 꼼짝없이 시 외곽의 식품공장에 갇혀 일만 했었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던 적이 있었을까.


죽음을 결심한 뒤에야 목표를 정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처량하면서도 우스울 따름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을 떠나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뒤였다.


이른 새벽, 공항 택시에 몸을 실어 폴란드 남동부의 국경도시 흐레벤네로 향했고, 그곳에서 미리 연락을 취했던 국제군단 관계자를 기다렸다.


전쟁이 벌어지고 1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국경 검문소 근처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제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고향을 등지고 폴란드로 향하는 인파, 그들에게 물과 담요를 나눠주는 구호단체 직원들, 그리고 가족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까지.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여전히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혹시 이성원 씨 되십니까?”


그런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그곳에는 서류철을 손에 든 채 나를 주시하는 군복 차림의 백인 남성이 서 있었다.


계급은 중사쯤 됐을까. 오른쪽 가슴께에 붙은 빅토르 스테파노비치라는 이름표를 보면 여기서 만나기로 했던 국제군단 담당자인 것 같았다.


“맞습니다. 제가 이성원입니다.”

“국적하고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대한민국, 93년 3월 3일입니다.”


그는 동구권 억양이 섞인 영어로 그리 물어왔고, 나는 대답과 함께 여권과 신분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아무래도 제가 찾는 분이 맞는 것 같군요.”


그것을 손에 든 서류철에 끼워진 문서와 대조하던 그는 옅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뒤에 주차된 승합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별 망설임 없이 그 승합차에 올라탔다.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때가.




1.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르비우에서 군사용 여권을 발급받고 인근의 훈련소로 이동해 군사훈련을 수료한 나는 그라나트 중대라는 이름의 국제군단 예하 부대에 배치됐다. 


내가 소속된 그라나트 중대는 비교적 전방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콘스탄티니브카가 주둔지였고, 같은 지역 방어를 담당하는 109 영토방위여단 예하 부대의 지원이 주 임무였다.


그들과 우리에겐 작은 문제점이 하나 있었는데, 양쪽 모두 중장비라곤 구소련제 트럭과 무반동포, 박격포, 소구경 대공포 따위가 전부라는 것이었다.


뭐, 국제군단 일선 부대들의 상황에 대해선 이전부터 들어왔던 것이 있어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주둔지가 최전선을 뒤에서 받쳐주는 지역이었던 만큼 장비 부족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금으로선 그저 전선의 상황이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다 쉬었으면 작업마저 하자.”

“네, 소대장님.”


나로선 어떻게 할 수 없는 생각에 빠져 있던 것도 잠시, 앞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속한 1소대의 소대장인 콜먼 중사였으니 말이다.


“거기 교통호 구석은 지붕 올려서 통신소로 쓸 거니까 더 신경 써서 작업하고.”

“알겠습니다.”


그 계급이 여기서도 통용되는지는 제쳐두더라도, 미 육군 2사단에서 15년을 복무한 그는 전형적인 야전 군인이었다.


작업 잘하고 병사들 잘 통솔하고, 주특기인 보병 전술은 내가 현역 시절 만났던 그 어떤 간부들보다 뛰어났다.


거기에 복무했던 2사단이 주한미군 주둔 부대였던 덕에 그나마 의사소통이 원활한 편이었다.


“씨발 대답만 하지 말고, 바닥 똑바로 안 까냐.”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래봤자 자주 듣는 건 욕 몇 마디에 나머지는 전부 영어뿐이었지만.


“소대장님, 점심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다행히도 더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전에 중대 취사 담당인 기예고스가 끼어들어 소대장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진한 조미료 냄새로 미루어 보아 오늘 점심은 아마 곧 갈 때가 된 닭고기로 만든 치킨 스튜인 듯했다.


“3, 4분대 먼저 밥 먹이고 나머지는 30분 뒤에 출발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지시에 기예고스는 3, 4분대가 작업 중인 참호선 쪽으로 걸어갔고, 얼마 안 가 그쪽에선 작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래, 상태가 어떻든 전쟁 중에 고기반찬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마음 같아선 누구라도 먼저 숟갈질하고 싶은 심정이겠지만, 중대장이 오늘까지 참호선 구축을 끝내라고 명령했으니 교대로 밥을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밥 먹고 올 테니까 작업 계속하고.”

“네, 소대장님.”

“바닥 똑바로 안 까면 일 다시 시킨다.”

“그럴 일 없게 잘하겠습니다.”


나의 그런 대답에도 발걸음을 떼는 소대장의 얼굴에는 못 미덥다는 감정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당장 내 이력부터가 고작 의무복무 21개월짜리 징집병 출신에 잡일이나 전전하던 놈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시선이었다.


궁색한 변명을 좀 해보자면 현역 시절 내 보직은 보병대대 보급병이었고, 그나마도 이런 본격적인 참호선 구축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마음 상할 것도 없고 그저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하려고 노력하면 될 문제였다.


“어이, 부사수. 거기 작업은 내가 마저 할 테니까 이거나 좀 설치해.”

“감사합니다, 사격조장님.”


그런 내 속을 알기라도 한 건지, 근처에서 작업을 지휘하던 화기분대 2사격조장 바시르는 그 말과 함께 근처에 세워 두었던 기관총을 건넸다.


“소대장이 하는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사람이 다 잘하겠냐.”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흔셋의 나이로 국제군단에 합류한 바시르는 인도 육군 출신으로, PMC 근무 경험까지 있는 베테랑이었다.


거기에 성격도 서글서글한 걸 생각하면, 이런 사람이 내가 속한 기관총 사격조의 조장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삼각대 고정할 때 손 조심하고.”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관총을 설치할 초소는 참호 작업 첫날 준설을 끝냈었고, 현재 작업중인 곳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짧은 거리긴 해도 이동하는 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기관총을 내려놓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내가 설치해야할 이 물건은 구소련제 칼라시니코프 기관총.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넘어가는 놈이었으나 손질만 잘하면 지금도 문제없이 작동했다.


부수기재도 관리가 잘 된 편이라 사격조장의 걱정과는 다르게 삼각대를 설치하면서 불편함이 있거나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다음은 조준경을 꺼내 결합하고 삼각대에 거치하여 사격각을 사정, 200발짜리 탄띠를 노리쇠에 물리는 것으로 기관총 설치를 마쳤다.


전선 배치 이후 분해결합과 설치만 스무 번을 넘게 연습했었으니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생각보다 기관총 설치가 일찍 끝났다는 것.


바시르는 내게 작업 대신 기관총을 맡기긴 했지만, 손 가는 일도 다 끝났는데 사주 경계 따위로 시간을 떼우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우리 지금 작전 중이야. 기관총 설치 끝났으면 사주 경계 똑바로 해야지.” 

“네, 사격조장님.” 


멀리서 쭈뼛거리는 내가 안쓰럽게 보인 것인지, 그는 다른 작업을 지시하기보단 하던 일이나 잘하라는 말을 전해왔다.


이에 별 망설임 없이 들여다본 조준경 너머에는 우중충한 먹구름 아래로 광활한 초르노젬이 펼쳐져 있었다.


전방 배치 이후 수없이 봐온 풍경이었고, 내가 자진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보게 될 풍경이었다.


‘쿵-!’


그렇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경관을 감상하던 것도 잠시, 이 근처에선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진동.


포격이었다.


“…탄 낙하!”


누군지 모를 병사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자, 연이어서 귀를 찢는 폭음과 흔들림이 엄습해왔다.


폭음이 한 번 울릴 때마다 참호 벽에선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고, 누군가가 내지른 비명은 직후 울려 퍼진 포성에 파묻혔다.


어떻게든 제정신을 붙잡고 있으려 해도 계속되는 포격은 나의 정신을 빠르게 좀먹어 나갔다.


죽음이 두려웠다.


죽을 장소를 찾는다느니, 삶보다 더 가치 있는 죽음이라느니 하던 것들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그저 때늦은 중2병 환자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났고 그때 즐겨보던 만화와 애니를 끝까지 챙겨보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다.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 자명했음에도 그런 비루한 삶에 집착하게 되는 건 이성으로 어떻게 억누를 수 없는 동물적 본능이겠지.


가랑이가 뜨뜻하게 젖어가는 와중에도 움직이면 죽는다는 믿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포격은 그로부터 30분 넘게 이어졌고, 포성이 멎은 뒤에도 몇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헉…!”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인을 잃은 하얗게 질린 손목.


피부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그 손목의 약지에는 두 사람분의 이름이 새겨진 은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압도적인 공포였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아버지인 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움도 일단 내가 살아야 되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존자 계속 확인하고 탄약 남은 거 분배해!”

“네, 소대장님!”

“개새끼들, 밥 먹을 때 쏴제끼고 지랄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콜먼 중사가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 중이라는 것이었다.


미군 부사관 출신 소대장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금이나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징집병으로 복무했던 21개월은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처음 중대에 배치됐을 때도 느꼈었지만 이 전쟁에서 나는 정말 쓸모없는 놈인 것 같았다.


“리, 살아있었냐?”

“…소대장님.” 


버릇처럼 거수경례를 붙이려던 손을 가까스로 내리며 대답하니, 콜먼 중사는 쓴웃음을 짓기만 하고 별다른 폭언을 덧붙이진 않았다.


“바시르가 죽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이제부턴 네가 기관총 사수니까 총기 관리 잘하고.”


그런데 설마 이런 답도 안 나오는 상황을 통보할 줄은 몰랐다.


“부사수는, 없습니까?”

“아직 생존자 파악 중이야. 사람 남으면 보내줄게.”


그 말을 끝으로 콜먼 중사는 다시 상황을 수습하러 떠났다.


소대장으로써 당연히 내릴만한 판단이었지만, 내 입장에선 그냥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의 연장을 의미했다.


바시르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그리고 이젠 나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일을 해내야만 한다.


그런 사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를 위해 애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내게 인간다운 배려를 해주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 존재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적 전차 접근 중!”


그러나 상황은 잠시 동안 그런 감상에 빠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러사아군 전차가 관측되었다는 정보가 구두로 전파 중이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전선이 돌파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리 중대가 보유한 대전차 화기는 구소련제 73밀리 무반동포 2문.


소대에 두 정씩 배치된 대전차 로켓 발사관도 있긴 했지만 보유한 탄두 대부분이 소구경 성형작약탄이었다.


“1시 방향, 거리 1200!”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전차 특유의 묵직한 엔진음은 짙어져갔고, 머지않아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소련제 전차 특유의 둥근 포탑과 경사진 차체, 덕지덕지 붙여놓은 반응장갑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중압감을 자아냈다.


전차의 수는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 6량, 후속하는 기종 미상의 장갑차량도 8량이 넘어가고 있었다.


“RPG팀! 공격 위치로!”


그러거나 말거나, 소대장의 지시를 받은 화기분대 소속 대전차 로켓 사격조는 교통호를 따라 전차의 측면을 타격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군인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어진 직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군인.


내가 저들과 같은 군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함께 발을 맞추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 내게 주어진 직무는 전차와 동행하는 보병들로부터 대전차 로켓 사격조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람을 겨누고 총을 쏴본 적 없는 내가 과연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거리 400!”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도 전차는 빠르게 그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이젠 전차의 포탑에 달린 기관총을 선명하게 관측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졌고, 그것에 비례하여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때였다.


‘펑-!’


좌측 사선에서 날아든 포탄 두 발이 선행하던 러시아군 전차의 측면에 작렬했다.


그 전차는 불행히도 탄약고가 유폭을 일으켰는지 대폭발을 일으키며 문자 그대로 포탑을 공중으로 사출시켰다.


중대 대전차 반의 무반동포 사격이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토록 정확한 사격을 가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격 개시!”


방금 가해진 사격을 시작으로 참호선 곳곳에서 대전차 로켓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몇 대의 전차와 장갑차량이 더 주저앉았다.


물론 그러는 동안 적 전차와 보병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대전차 공격이 있었던 지점을 향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으며, 아예 참호를 짓뭉개기 위해 돌진하는 전차도 있었다.


하지만 사격을 마친 대전차 로켓조는 이미 자리를 이탈하여 예비 초소로 이동한 뒤였다.


오히려 그런 기민하지 못한 움직임은 전차 특유의 기동력을 저해시켰고, 그 대가는 전차병의 목숨으로 치러야 했다.


문제는 장갑차량 내부에서 추가로 보병들이 쏟아져나와 참호선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호응하듯 맞은편의 1사격조 기관총 초소에서 연속적으로 총성이 울렸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기관총을 고쳐잡았다.


조정간을 사격에 두고 조준경 안으로 들어온 보병 무리를 겨눈 뒤 방아쇠를 당긴다.


굉장히 망설이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막상 상황이 닥치니 별 어려움 없이 총을 쏠 수 있었다. 


사람을 표적으로 말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연속적으로 화염이 일었다. 


조준경 너머로 보이던 병사들은 전원이 꺼진 장난감처럼 고꾸라졌고, 몇몇은 총알이 박힌 곳을 움켜잡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다음 표적을 찾아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전부였다.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그것을 합리화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뿐. 그건 아마 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재장전!”


어느새 첫 번째 탄띠가 모두 소진됐고, 노리쇠뭉치의 공이가 빈 약실을 때리는 공허한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곧바로 덮개를 열어 두 번째 탄띠를 물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 했다.


“……커흑!”


뜨거운 쇠못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격통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몇 번이고 숨을 쉬려고 해도 폐속으로 공기가 밀려들어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이물감에 토악질을 하니 검붉은 피가 역류하여 바닥을 적셨다.


아, 이거 병원 실려가도 살기는 글렀네.


빨리 재장전해서 엄호사격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내 의지로 전쟁터에 발을 들였으니 죽음이야 언제든 찾아올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긴 했었다.


그것이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올 줄은 몰랐었지만 말이다.


난 과연 이 나라에 제대로 도움이 됐을까.


나의 죽음은 내 삶보다 가치가 있었을까.


결국 그 답을 얻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는 것이 미련이라면 미련이 남는다.


부디 이 땅에 봄이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