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턴가, 새로 얻은 노트북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려다가 하드디스크에 오류가 붙었습니다. 아예 대놓고 백업까지 다 하라는 안내문까지 떠가지고 하드디스크 견적을 보러 갔지요. 근데 문제는 근처에 그럴싸한 컴퓨터 수리 전문점이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거. 그래서 인터넷으로 얼추 주변에 뭐가 있는지 찾아봤고, 심지어 HP 서비스점까지 고려해 봤었습니다. 결국은 돈 좀 덜쓰기 위해 동네 전문점을 찾으려고 했죠.

 

구글에서 무작위로 가까운 데 검색해서 여기저기 가 보고, 사람들에게 수소문도 해 보면서 온 동네를 뒤졌습니다. 근데 찾아보니까 동네 안에는 그럴싸한 수리 점포가 없더라고요. 구글 맵의 도움을 받아서 가본 데는 정말 멀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데도 대로를 지나 어느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곳이었지요. 그나마 지도에 표시된 곳은 아주 없어진 모양이고...그래서 수소문 끝에 어느 아주머니 도움으로 한 곳을 찾았습니다.

 

근데 알고보니까 그거, 브랜드가 교내 컴퓨터 딜러와 같은 브랜드였더라고요. 그 CRS였던가 하는 그거... 그래도 컴퓨터 수리를 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으니 수리를 맡겨보려고 했습니다. 거기 아저씨도 상태 보고는 아예 하드디스크를 갈라고 하시더군요. 중고 7만원에 새거 12~13만원. 그래서 엄마 아빠께도 전화해보고, 점포 아저씨도 엄마랑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결론은 아빠가 새 노트북으로 바꿔 주신다는 식이었고요.

 

그런데 언제부턴지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이야깃거리가 하나 나왔습니다. 아마 기숙사 이야기었을 텐데,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구로동이라고 했더니 멀리서 거기까지 걸어왔냐고 놀라시더라고요. 그래서 기숙사 산다고 했고, 경희대라고 말씀드리니까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걸로 압니다. 산디과에다가 자동차에 관심 있다고 하면서부터요. 아래부터는 전형적인 만연체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아저씨 아들이 자동차 쪽에 관심이 있고, 처음엔 축구화 설계를 꿈꾸다가 자동차를 직접 설계하고 싶다고 랬고 아저씨는 소프트웨어 쪽으로 가보라고 권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소프트웨어 이야기를 하다가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의 연관성이 디자인+엔지니어링이면 나름 상호작용이 있겠다라는 제 이야기에서 나오고, 아저씨의 애플 매킨토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마침 스티브 잡스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신 듯한데, 아저씨 말로는 잡스가 디자인에 너무 집착하다가 시기도 놓치고 해서 매킨토시가 성공 못한 것 같다는군요. 잡스가 고집하던 모서리 처리라던가, 모양에 맞게 내부 부품 배치하라고 관여했다던가, 아무도 못 열게 하라며 열 수 있는 조인트도 제하고 나사도 전용으로 따로 만들었다던가...그렇게 잡스의 리더쉽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저도 잡스에 대해 들어본 게 있어가지고 이야기가 잘 넘어갔고, 서로가 서로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더라고요. 아저씨 말로는 잡스의 인간성은 영 아니지만, 다른 걸로 빛난다나 뭐라나... 그리고 삼성과 애플까지 비교하는 걸로는, 삼성은 기술과 성능으로 소비자를 잡는 반면 애플은 성능이 떨어지는 대신 디자인과 접근성으로 소비자를 이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아저씨 때는 컴퓨터가 덧샘하는 것만으로 신기해했었고, 다들 IBM PC를 쓰던데도 매킨토시 열풍도 좀 있었다고 하시더랍니다. 삼성에서 20년간 하드웨어를 다루었으니, 이제는 소프트웨어를 좀 배우고 있다는 것 같고요. 이 시대는 하드웨어가 이미 많은 것들을 하고 있으니,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만드는가가 중요한 시기라고 하시더군요. 계산기만 하더라도 옛날엔 그것만으로 신기했지만 이제는 아주 흔한 기능이 된 것을 예로 들면서요... 한 개인의 인생과 관점 등등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고, 저는 다시 기숙사로 되돌아갔습니다. 몸이야 다들 지칠대로 지쳤는데, 그래도 좋은 이야기 듣고 가서 좋았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가 생각보다 전문점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도요. 온갖 고생을 하면서 수원시 영통구를 돌아다니긴 했지만, 생각보다 가치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영통성당, 무슨 교회, 수많은 아파트 단지, 그 사이 살짝 낀 성벽, 아파트 단지 내 시설과 공사장, 넓찍한 대로, 심지어는 잘 안보이던 몇몇 차들까지...

 

P.S. 아래는 돌아오는 길에 하나 찍어온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