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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너에게 호감을 가졌었다. 굳이 호감이란 말을 쓰는 이유는, 좋아함인지 사랑인지 우정인지 착각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호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말에도 내 우뇌는, 어쩌면 좌뇌도 같이 뉴런을 활성화시키고 말았다. 그저 우연인 것을 과대해석해버리기도 했다. 망상인 것은 알지만 그냥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헛된 추측이어서 막지 못했다. 

어쩌면 그건 부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근 몇 년간 감정을 봉인하고 살았다. 그새 공허가 커진 것 같다. 조롱하는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도 있지. 난 신경 안써.' 나름의 주문을 걸고 폭발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고 모든 불의에 대해 참아온 건 아니지만, 대판 싸우기에 충분한 양의 땔감이 되진 못했다. 나도 그러기엔 질린 것이겠지. 그래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라나.

다시 감정을 걸어잠글 것이다. 영화를 봐도 눈물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메마른 감정, 더 죽인다고 나까지 죽진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만이라도, 난 헬륨처럼 부유하려는 불안정한 내 정신을 부여잡고, 뼈를 갈아넣은 흰 가면을 쓰고, 피를 짜넣은 립글로스를 바른다. 우울해 보이지 않도록. 하지만 여전히 난 사람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