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어느 날,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일어났을 때 그는 주위의 풍경이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자치령의 대통령궁에 마련된 특별 침실에 있었어야 할 그는 어느 좁고 깜깜한 방에 있었다. 그는 바닥에 누워 있었으며, 온통 새까만 방에는 직사각형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직사각형 아래에 놓여 있던 자판은 타자기와 달리 종이를 꽂는 곳이 없었고, 자판을 치자 그 빛나는 사각형에 글자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자판 옆에 있던 동그란 물체를 움직이자 화살표 비슷한 것이 직사각형에서 움직였고, 왼쪽 버튼을 누르자 화살표 아래에 있던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금방 알게 된 아크튜러스는 한 창에는 "가상국가 2 채널"이라는 글귀와 함께 일련번호대로 각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다른 창에는 "탈가국 계획"이라는 글귀와 함께 자치령의 멸망 시나리오를 보게 되었다. 약 10분 정도 그 창들을 뒤적인 아크튜러스는 사실 자신의 세계는 "가상국가 채널"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각 국가와 기업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크라이트 자치령을 세운 사람은 자신의 아들 발레리안 멩스크가 아니라 "Counterstrike_X"라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자치령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이 "Counterstrike_X" 라는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일구어왔던 모든 것을 없애려고 계획하는 것이었다.

 이 때, 좁은 방의 문이 열리고 위에 대형 전등이 켜졌다. 뭔가를 뒤집어 써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문 밖의 남자는 아크튜러스를 보자 그리 놀라지 않았다는 듯 입을 뗐다.

 "아크튜러스 멩스크인가. 당신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아니면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아크튜러스는 맞받아쳤다.

 "너는 대체 누구지? 이 가상국가 채널이란 건 뭐고, Counterstrike_X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야? 왜 이 사람은 자치령을 무너뜨리려고 하지?"

 "내가 누구냐 하면... 바로 그쪽이 애타게 찾는 Counterstrike_X라는 사람이네. 왜 자치령을 무너뜨리려고 하냐고?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질렸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다른 사람들은 있었고, 나는 그 사람들의 그룹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여기서 나가고 싶다. 이 가상국가 채널이란 걸 하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비행기에도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 내가 나가려면, 자동적으로 내가 세운 국가도 사라져 줘야겠지. 이제 대충 알겠나?"

 "너는 내 아들을 이용했고, 내 아들의 친구들도! 듀갈도! 스투코프도! 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고 너 때문에 모두 죽는 것이다! 죄책감은 없나?"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인물들인걸? 그들의 존재는 내가 만든 거야. 그쪽도 포함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다들 사라져 줘야겠어."

 "이런 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크튜러스 멩스크는 사라졌다.

 

# MAIN

 

자치령은 윙스 오브 리버티 항공기 제작사의 완전 양도를 결의했다.

 

평소 항공기 산업을 그리도 중시하던 맷 호너 대통령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된 것에 대해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이것도 넘어갈 거였다. 한 몇 달 시끄러워지다 말겠지, 짐 레이너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생각했다. 창밖에 보이는 시위대의 규모는 그리 크지도 않았고, 형식적인 구호만 외치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렇게 자치령은 게속될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이 일이 그리 사소한 일은 아니였지만, 전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만큼 큰 일도 아니였다. 영토를 반절 떼준다는 것도 아니고, 국토를 포기한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규모의 폭동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순식간에 자치령 병력은 수도권에 몰렸고, 화난 군중은 세뇌된 것 같이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자치령 병력과 교전을 계속할 뿐이었다. 

 

수도의 항공편대 기지에서 폭격편대를 또 이륙시키며 서부방위군 사령관인 사라 캐리건은 방어선에 병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직접 전선으로 향했다. 양 손에는 반자동 소총을, 제복의 주머니에는 예비 탄창을, 허리 벨트에는 수류탄을 넣고 캐리건은 방금 한 병사가 쓰러진 곳으로 뛰어갔다. 전선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군중은 끝도 없이 공격해 왔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알을 직격으로 맞더라도 계속 좀비처럼 돌진해 왔다. 이 군중 중에서 무기를 가진 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다행이야, 라고 캐리건은 생각하며 방아쇠를 당겼고, 전장에 울려퍼지는 소총의 노래와 함께 선율에 맞춰 하나둘씩 군중이 쓰러졌다. 하지만 하나를 쓰러뜨리면 뒤에서 두 명이 더 나왔으며, 엄청난 명중률로 거의 원샷원킬을 기록했지만 눈앞의 적은 늘어나기만 했다. 곧이어 무기를 든 적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옆의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하나둘씩 쓰러졌다. 피비린내 나는 참호에서 캐리건이 있던 전선의 주둔 대대는 이미 전멸했으며, 몰려오는 적을 향해 시끄럽게 쏴대던 격발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건 괴성을 지르는 군중과 쓰러진 아군 병사들의 신음과 단말마 뿐, 바로 옆에서 총에 맞아 죽은 병사의 피가 캐리건의 발을 적셨다. 어느새 참호 안으로 군중이 들어왔고, 캐리건은 하나둘씩 또 그들을 쓰러뜨렸으나 결국은 수에서 밀렸다. 캐리건은 한 손에는 자신의 소총을, 다른 한 손에는 쓰러진 대원의 소총을 들고 육탄전에 대비했다.

 

동부에서 교전을 이어가던 동부방위군 짐 레이너 사령관은 캐리건이 직접 전장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옆에 지나가던 군 차량을 세워 타고 바로 서부전선으로 향했다. 레이너가 전선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캐리건이 육탄전에 돌입했던 때였다. 트럭의 짐칸에 있던 긴 강철 봉을 여러 개 묶어 방패와 비슷하게 만들어 양손에 들고 레이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호로 뛰어들었다. 

 

한 쪽에서 들어오는 적의 공세가 갑자기 약해지자 아군이 왔다는 걸 알아차린 캐리건은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강철 봉을 묶어 만든, 딱 봐도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방패를 든 레이너를 보자 캐리건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호 안으로 적이 더 몰려오기 시작했다.

 "짐!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될 텐데?"

 "사라,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 어차피 전선에서 싸우는 이상 어느 전선인지가 중요한가?"

 "그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싸우다가는 결국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짐?"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게 되어 있어. 이왕이면 싸우다가 죽겠어."

 "여기는 당신이 죽을 곳이 아니에요. 맷과, 발레리안과, 그들을 지켜 줘야죠, 짐.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 어서 가요."

그 말과 함께 캐리건은 허리의 벨트에서 화염병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시간을 벌 거지만, 얼마 가진 못할 거에요."

 "하지만, 사라...!"

캐리건은 레이너의 말을 무시하고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가요, 짐. 어서."

 "이런 젠장..."

레이너는 참호에서 뛰어나와 바로 트럭의 운전자석에 앉았다. 그가 차를 돌리던 중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며 잠시 귀를 띵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옆에 있던 화약통에 화염병을 던진 것이리라. 레이너는 액셀을 밟으며 눈에 눈물이 차는 것을 느꼈다. 왼팔을 들어 눈물을 닦아내며 레이너는 조용히 말했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지? 젠장..."

 

한편, 남부의 해안에서는 자치령 항공편대의 기함 ADS (Arclite Dominion Ship) 알렉산더에는 제라드 듀갈 국방장관과 알렉세이 스투코프 수도방위군 사령관이 탑승해 있었다. 군중은 서부의 퍼스의 대규모 군 기지에서 항공모함과 항공기를 탈취해 그걸로 자치령에 대규모 공습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민간인의 조종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일부 군인들도 있는지 몇몇 항공기의 조종실력은 오히려 자치령 함재기들을 격추해가며 엄청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원체 항공기는 많지만, 몇 주 간의 혼란에서 파일럿들이 죽어나간 만큼 비행기에 탑승할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항공편대의 항공모함 6척 중 4척은 이미 격침된 상태였고, 적 항공모함도 한 척을 남기고 모두 격침된 상태였다. 하지만 적이 양적으로 우세하여 자치령 병력이 계속 밀리고 있었다. 이미 알렉산더에서 파일럿 훈련을 받은 사람은 모두 출격했지만, 아직 비행기 한 대가 남아있었다. 

 "저도 파일럿 훈련을 받았고 지금까지 60기를 격추한 전적이 있습니다. 저도 나가겠습니다."

스투코프가 듀갈에게 출격 요청을 하였다. 물론 듀갈은 그걸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 개판이 끝나면, 자치령은 자네가 필요하다네. 이런 데서 목숨을 잃지는 말라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이미 뇌는 알지 않습니까. 자치령은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너무 늦었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네. 자네는 내 유일한 벗이야. 자네도 잃기는 싫네."

 "알았습니다, 국방장관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투코프의 피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미 패배는 자명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발버둥쳐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투코프는 몰래 비행기에 탑승해, 출격했다.

 "F4F 24번기, 출격합니다!"

 "스투코프 녀석, 허가를 내준 적이 없는데... 어서 출격을 막아라!"

 "장관님.. 이미 발함했습니다."

듀갈은 책상을 쾅 치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스투코프 녀석, 꼭 살아 돌아오는 게 좋을 거다!"

 

스투코프는 익숙한 조종간을 잡으며 비행기를 몰았다. 윙스 오브 리버티에서 이걸 개발할 때 맨 처음에 탔던 파일럿이 스투코프 본인이었던 만큼, 스투코프는 F4F의 조종에 능숙했다. 회피기동으로 적 항공기의 공격을 피하며 하나둘씩 적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렸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하늘에 떠있는 유일한 비행기는 스투코프의 F4F였다. 

 "적 항공모함 포착... 여기는 F4F 24번기, 알렉산더에 알린다! 적 항공모함의 공격에 들어가겠다!"

스투코프는 급강하하여 기관총을 난사해 항공모함의 선체를 두들겼고, 폭탄을 떨구며 항공모함의 갑판을 박살냈다. 고도를 높이며 우현의 대공포를 제거함과 동시에 적 항공모함을 지나간 스투코프는 180도 선회하여 항공모함의 브릿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좌현의 대공포들은 멀쩡했지만, 스투코프는 그 대공포화를 모두 피하며 브릿지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공포화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스투코프는 조종간을 너무 늦게 틀었고, F4F는 브릿지와 충돌하기 전에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브릿지에 충돌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이미 적 항공모함은 수리 태세에 들어갔고, 남은 건 알렉산더 한 척뿐이었다.

 "젠장! 전 인원, 배를 버려라! 나는 여기에 남아 저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겠다. 조타수는 함의 진로를 저 항공모함으로 설정하고 빠져라!"

죽기 싫었던 승무원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구명보트로 달려가 탈출했다. 몇십 분 안에, 알렉산더에 남아있던 사람은 듀갈 한 명 뿐이었다. 브릿지의 축음기에서는 <브루드 워 아리아> 가 들려왔다. 평소 듀갈과 스투코프가 즐겨 듣던 노래였다.

 

죽음을 앞둔 자들이 그대에게 경례하노라

평온한 여정을 위하여

 

알렉산더는 적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거리는 어느새 좁혀졌고, 수십 초 후면 충돌하며 두 척 모두 침몰할 것이다. 적이 뒤늦게 회피기동을 시작했으나 이미 늦었다. 급선회하느라 적 항공모함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고, 그에 비해 알렉산더는 전속력 전진 중이었다. 이미 동귀어진은 정해진 미래였다. 듀갈은 종이를 꺼내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이 유서가 전해지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최후의 순간 직전에 위안삼을 거리는 되리라.

 

죽음을 앞둔 자들이 기대에게 경례하노라

불가사의한 포상에 대하여

 

"사랑하는 헬레나... 지금쯤이면 패전이 자치령에 알려졌을 거요. 우리가 격퇴하고자 이곳에 나타난 그 자들은 절대 격퇴할 수 없는 것들이었소. 그리고 우리가 맞서 싸우던 군중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 드러났소. 당신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어떤 소식을 듣던지 이것만든 알아야 하오. 알렉세이는 영웅답게 죽은 것이 아니오. 내가 죽였소. 나의 오만함이 그를 죽인 것이오. 그리고 이제 오만함이 나를 삼키는구려... 당신은 나를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오. 헬레나, 아이들에게 내가 사랑했다고 전해주시오. 아버지가 너희들의 미래를 지키다가 죽었다는 말과 함께. 그럼, 안녕."

 

창조된 모든 것들이 시작으로 되돌아가는구나

온화한 죽음 아래 평안히 쉬기를

 

이제 10초 정도 후면 충돌하리라. 그 전에 자신이 아끼는 권총으로 목숨을 끊으리라. 듀갈은 권총을 들고 자기 머리에 권총을 댔다.

 

모든 고통들을

두려워 말지어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니

 

듀갈은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너희의 운명을 신에게 맡길지어다

 

알렉산더는 적 항공모함에 충돌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자치령의 자랑이었던 항공모함 두 척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 EPILOGUE

 

알렉산더의 침몰과 함께 자치령 병력은 와해되었다. 맷 호너 대통령은 발레리안 멩스크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 대통령궁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발레리안 멩스크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남부방위군 사령관 타이커스 핀들레이는 거북나라로 후퇴하여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작전을 실행하다 반란군의 함포 사격에 탑승하고 있던 함선의 탄약고가 유폭하여 사망하였다. 윙스 오브 리버티 사의 기술고문이었던 이골 스텟먼은 거북나라에 핵심 데이터를 이전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핀들레이 사령관의 병력을 마중하던 중 핀들레이 탑승함의 폭발에 휩쓸려 죽었다. 호러스 워필드 장군은 대통령궁 수호작전 도중 수류탄에 죽었다. 가브리엘 토시는 북부 탈환 상륙 작전이 실패하여 후퇴하던 도중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했다. 그레이븐 힐은 자치령 주요 인물들 중 생존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힐은 중상을 입은 채로 에이다 연방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짐 레이너는 최후까지 살아남았다. 두 발을 맞고 쓰러져 기절했지만 기적적으로 죽지 않았다. 몇 시간 후, 깨어난 레이너는 주위의 광경에 놀랐다. 이미 시간대는 저녁이었고, 자치령 군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방어선은 무너져 있었고 아군의 시체만 사방에 널려 있었다. 땅은 피로 빨갛게 젖어 있었으며, 대통령궁과 주위 건물들은 무너져 있었고, 대통령궁은 불에 휩싸여 자치령의 국기가 반쯤 타들어가 더욱 폐허처럼 보였다. 일어설 힘이 없었던 레이너는 대통령궁 쪽으로 기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레리안과 호너의 시체를 발견했다. 발레리안은 반자동 소총을 들고 있었고, 호너는 한 손에는 방패를,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 호너의 방패에는 총알구멍이 서너 개 나 있었으며, 호너의 제복은 총알구멍으로 반쯤 걸레가 되어 있었다. 조금 더 기어가니 이번엔 자치령의 깃발을 든 채로 쓰러진 워필드 장군을 발견했다. 이미 이 시점에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레이너는 직감했다. 자신은 몇 분 후 과다출혈로 죽을 운명이었고, 이미 자치령의 주요 인물들이 죽은 만큼 자치령은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저 멀리 하늘에서는 해가 지기 시작했다. 자치령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 하루도 져가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했고, 아름다운 붉은색이 하늘을 물들였다. 레이너가 오래간만에 본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