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동안 하지도 않던 대청소를 한 탓일까.

가만히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는 것도 팔이 아파서 못 할 짓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오는데 청소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오늘도 이렇게 아픈 팔을 부여잡은 채 멍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쯧.”


그렇게 혀를 찬 시우가 재차 핸드폰을 응시했다.

그의 친구가 온다고 한 지 이미 몇십 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어서였다.


예전이었다면 어디 가서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몸이 완전히 여자로 변해버린 이후, 시우는 알게 모르게 그녀를 신경 쓰곤 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시우가 핸드폰 화면을 끄고 멍하게 생각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이젠 별문제 없이 잘 적응해서 사는 것 같았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그리 남성스러운 편도 아닐뿐더러 덕분에 VR 챗에서도 인기 만점이라는 걸 보면 더더욱.

그리고 말만 자취방일 뿐이지 사실상 같은 동네였기 때문에 길을 헤매거나 그럴 일도 없었다.


늦게 오는 이유도 간단할 것 같았다.

아마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겼다면서 장을 보는 게 분명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야! 나 왔다!”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시우는 천천히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자기 상체만 한 봉지를 두셋 정도 든 이예준이 얼른 받지 않고 무얼 하냐는 듯 그를 응시했다.


“조루, 누나가 맛있는 거 사 왔는데 어때?”


그렇게 말한 이예준이 낄낄 웃더니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우는 눈을 흘기면서도 이예준의 손에서 봉지를 받아 식탁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는 봉지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다가 익숙한 모습을 보고 잠깐 투덜거렸다.


“맛있는 걸 사 왔다면서.”

“왜, 파인애플 피자 맛있지.”

“넌 진짜 어떻게 몸이 변하고 나서도 입맛이 그 모양 그 꼴이냐?”

“그래, 다음에는 정력에 좋은 장어라도 사 올게. 이 조루 자식아.”

“하아...”


시우는 상을 차리는 한편, 재차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예준이 계속 그를 조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 술김에 야한 이야기를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때 이상한 이야기를 한 탓이었다.


딸딸이를 빨리 치려면 30초 만에 칠 수 있다는 말.

그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꼴리는 상황과 성욕이 쌓였을 때는 가능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예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예준은 놀리고 싶을 때마다 그를 조루라고 부르며 비웃곤 했다.


그리고 아마 오늘도 그럴 게 분명했다.


“으휴.”


시우는 그렇게 한숨을 흘리는 한편, 천천히 수저를 놓고 냉장고 안에서 술을 꺼내기 시작했다.


“소주? 맥주? 둘 다?”

“둘 다. 어차피 소맥 말아서 마실 것 아니었어?”

“그것도 그렇지.”

“그래, 아무렇게나 꺼내. 아, 그리고 이것 봐라?”


이예준이 품속에서 자그마한 카드를 꺼내서 시우한테 보여주었다.

시우는 그게 새로 발급된 민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예준이라는 이름 대신, 이예지라는 이름이 적힌 민증.

그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잔에 술을 따르며 질문을 던졌다.


“너 이젠 완전히 적응한 거야? 앞으로 여자로 계속 살게?”

“뭐, 그렇게 됐어. 앞으로 예지라고 불러.”


시우는 대답 대신 젓가락을 놀렸다.

집 근처 시장에서 막 사 온 따끈한 족발이 늘 그렇듯 쫀쫀하고 맛있었다.

이 족발과 함께 먹는 소주는 각별한 맛이었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술맛이 참 복잡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예지는 계속 전투적으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 왔으니 내가 제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논리 아래, 그녀는 쉬지 않고 음식을 먹어댔다.

전자레인지 데운 파인애플 피자를 쭉 당겨서 먹는 한편, 초장에 회를 찍어 먹던 이예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우리 아무 말도 안 하네?”

“할 이야기가 더 있나?”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소주를 마셨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두 사람은 상당히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친구였고 심심하면 불러서 노는 사이였다.

당장 어제만 해도 같이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만큼 무슨 이야기가 더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도 이야기보따리가 남아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


무엇보다 두 사람 다 음식이 식어가는 걸 내버려 두고 수다를 떠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야기한다면 음식을 다 먹은 뒤, 술잔을 나누면서 해도 늦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한동안 젓가락을 움직이며 음식을 모두 비웠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남은 술을 비우기 위해 말없이 술잔을 들어 올리던 와중, 시우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 한 잔 더 따라봐라!”


이예지가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앞뒤로 나긋나긋 흔들었다.

그리고 시우가 말아준 소맥을 한 번에 들이키며 온통 붉어진 얼굴로 히죽 웃었다.


‘취할 만큼 취했네.’


그렇게 생각한 시우가 잔을 마저 비웠다.

오랜만에 술을 마신다고 둘 다 주체하지 않았던 것 같긴 했다.

아마 사고 나기 전에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좋을 터.

그러니 슬슬 집에 보내려고 자리를 파하려던 순간, 이예지가 갑작스레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루, 너. 아다지? 여자랑 해본 적 한 번도 없잖아.”

“...뭐?”

“맞잖아. 여자친구라도 있었으면 몰라. 너 키스도 해본 적 없지?”


원래라면 응하지 않을 정도로 수준 낮은 도발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말하는 이예지도 동정에 키스 한 번 해본 적 없는 건 매한가지.

그러니 원래라면 이 새끼가 취했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넘겨야만 했다.


그러나 술에 잔뜩 취한 탓일까.


“이 자식이...!”


순간적으로 발끈한 시우가 사납게 눈을 흘겼다.

시우가 그렇게 화를 내든 말든 이예지는 팔짱을 끼며 재차 도발을 날렸다.


“원한다면 한 번 치게 해줄 수 있는데?”

“너 같은 통나무 몸매로는 안 꼴리거든?”

“하? 방금 뭐라고 했어?”

“맨날 남자 옷만 입고 다니는 여자가 뭐가 꼴려.”


이예지는 앞뒤로 몸을 나긋하게 흔들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히죽 웃었다.

소주와 맥주로 가득 차 있던 잔을 순식간에 비운 그녀가 턱을 괴며 이를 갈았다.


“너 그러면 내가 다음에 여자 옷 입고 오면 어떻게 할 건데.”

“입고 오면 입고 오는 거지.”

“내가 그렇게 여자 옷 입고 왔는데 내 몸 보고 꼴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허.”

“빨리, 사람이 묻잖아! 대답이나 해애!”

“안 그래도 마침 여자 옷 있는데, 지금 입어보던가.”

“좋아!”


시우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침 누나가 술에 취해서 놓고 간 옷이 몇 벌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자취방에서 이런저런 용도로 쓰는 스타킹도 있었다.

원래라면 양파망으로 쓰거나 방충망이 뚫렸을 때 거기 붙였겠지만, 뭐.

이제야 제대로 된 용도로 쓰는 셈이었다.


“자, 여기 있어.”

“...좋아.”


이예지는 시우가 건넨 돌핀 팬츠와 검은색 스타킹을 받았다.

여성복을 입는 건 그녀로서도 처음인 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안 꼴린다는 말에 상당히 화가 났던 탓이었다.


“너 잠깐 눈 감고 있어.”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냉큼 바지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쿡쿡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동정 조루한테는 자극이 너무 심하지 않나?”

“전혀 자극이랄 게 없는데.”

“오호...”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살짝 붉어진 시우의 얼굴과 어느 정도 부풀어 오른 사타구니.

곧장 발을 들어 올린 이예지는 발바닥으로 그의 남성기를 밟으며 히죽 웃었다.


“그런 것치고는 빳빳하게 발기하지 않았어?”

“지,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시우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예지는 발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이라도 치듯 발바닥으로 남성기 끝을 쓱쓱 비비던 그녀가 조소를 머금었다.

그 시점에서 시우는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무언가 하기도 전에 이예지가 선수를 쳤다.


“동정 조루한테는 자극이 너무 심하나? 이러다가 싸버리면 안 되는 것 알지?”

“...동정은 맞지만, 조루는 아니거든? 원한다면 증명할 수도 있는데.”

“하하, 거짓말하지 마.”

“그러는 너야말로 허접 보지 아냐? 저번에 술 마시고 너무 잘 느껴서 자위도 못 해봤다는 사람이 누구였더라?”

“하. 난 누구랑 다르게 그런 허접이 아니거든?”

“그러시겠지.”


그렇게 말한 시우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 이상 더 진행했다가는 정말로 장난으로 안 끝날 것 같아서였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시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우리... 그만하자.”

“쫄?”

“...허.”


시우의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곧장 이예지의 발목을 잡아 발을 치운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가까스로 이성의 끈이 다시 이어지며 그를 제지했다.


순간적으로 이렇게 나선 것까지는 좋지만, 역시 이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 시우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지하려던 순간, 이예지가 조소를 머금었다.


“증명해본다고 했지?”

“그만하자. 너 많이 취했어.”

“어때, 이래도 안 할 거야?”


이예지가 그렇게 말하며 바지 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하의를 내려 여성기를 훤히 드러낸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그를 보며 비웃었다.


그쯤 되자 시우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상황에까지 가만히 있는 건 남자가 아니었다.

설령 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예지가 맨날 놀릴 게 분명했다.


조루에 이어서 남자도 아닌 무언가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증명하길 원한다면 해주면 될 일이었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렇게 말한 시우가 이예지의 몸을 잡고 침대로 넘어뜨렸다.

이미 뻣뻣하게 발기해 있던 만큼 딱히 예열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꺅!”


이예지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우는 남성기를 그녀의 안에 삽입했다.

이미 젖어있던 모양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저항감 같은 건 별로 없었다.

이내 무언가 막 같은 것을 찢고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흐윽, 하고 이예지가 신음을 흘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쾌락과 고통이 느껴졌다.

몸이 변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했던 자위의 몇 배는 되는 자극이 그녀의 허리를 타고 내달렸다.

무언가 그녀가 아니게 되는 듯한 묘한 감각이 몸부림치던 이예지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시우야... 나...!”

“왜?”

“빼, 빼주면 안 될까...?”

“싫어.”


연이은 도발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른 시우는 그 말을 끝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앗. 자, 잠깐...!”


이예지는 어떻게든지 시우를 밀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옷을 다 벗지 않았던 탓에 다리를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박힐 때마다 신음을 흘리는 것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그녀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잠들기 직전인 것처럼 강한 몽롱함에 멍하게 입을 벌린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언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무언가 오고야 만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야! 그만, 응읏...! 그만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단 말이야!!!”


그러나 시우는 멈추지 않았고 이내 그 무언가도 찾아왔다.


“하아앗...!!!”


침대의 커버를 세게 쥔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절정했다.

현기증이라도 생긴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가 다시 맑아졌다.

그녀는 울 것 같은 묘한 얼굴로 시우를 보다가 이내 몸에서 완전히 힘을 풀었다.


이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냥 허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반쯤 당혹이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남성기를 빼냈다.


“...왜?”


이예지는 그렇게 질문했지만,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하마터면 안에 쌀 뻔했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시우가 숨을 삼켰다.

술기운에. 홧김에 첫 관계를 맺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첫 관계에 바로 상대방을 임신시키는 전개는 피하고 싶었다.

그 대상이 여태껏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면 더더욱.


무엇보다 분위기가 제법 이상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리하자고 그가 마음먹은 직후, 몸을 일으킨 이예지가 그를 잡아 침대에 눕혔다.


“뭐...!?”

“꼴사납게 나 혼자 가버리는 건 못 참겠거든...!”


시우는 그의 몸 위에 올라탄 이예지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이예지가 먼저 행동했다.


“기왕 할 거라면 끝까지 가란 말이야!”

“자, 잠깐...!”

“조루 자지는 조루 자지답게 싸버리기나 하라고...!”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그녀의 안에 재차 시우의 남성기를 삽입했다.

그리고 야한 동영상에서 본 것처럼 천천히 허리를 흔들며 기승위를 시작했다.


“어때, 읏... 자극이, 흐읏.... 좀 심하지 않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허리를 흔드는 그녀가 더 잘 알 수 있었다.

기술이 별로 없는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예민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 혼자서만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흐으읏...!”


결국, 혼자서 한 번 더 절정해버린 이예지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다.


“...내가 이 정도로 허접일 줄은 몰랐는데.”

“예, 예준아.”

“왜.”

“얼른 내려오지 않고 뭐해.”

“몰라, 다 네가 나쁜 탓이야. 그리고 이제 개명해서 예지거든?”

“...지금 그게 중요해? 얼른 내려오면 안 될까?”

“하! 왜, 쌀 것 같아? 아주 그냥 싸버려라! 받아줄 테니까!”


홧김에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챘다.

지나칠 정도로 창백하게 변한 시우의 얼굴.

그 직후, 무언가 따뜻한 것이 그녀의 안으로 가득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예지는 그게 정액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황함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도 몸은 솔직하게 반응해서 재차 절정에 다다랐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일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아.”

“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로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시우의 위에서 내려온 이예지가 당황함에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러나 시우는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손가락을 뻗어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일단 씻어. 너 피 흐른다.”

“아, 어. 그래...”

“그동안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래도 내가 할 테니까.”

“응...”

“하아...”


시우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단 바지를 올렸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인 채 어느덧 잔뜩 어지럽혀진 자취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씻고 나온 이예지가 그를 도와 마저 자취방을 치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깨끗해진 자취방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이예지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갈게.”

“아, 응. 잘 가.”


시우는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배웅했다.

아니, 제발 별일 없게 해달라는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 며칠이 지났지만, 딱히 안 좋은 소식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도 이전과 다를 것 없이 좋기만 했다.

그 사실에 안도한 시우는 문을 열고 들어온 이예지를 맞이했다.


“족발 사 왔어?”

“어, 족발이랑 보쌈이랑... 전도 사 왔지.”

“그래? 맛있겠다. 술은 말고 음료수만 마시자.”

“당연히 그래야지. 아, 그리고 이건 선물이야.”


그렇게 말한 이예지가 수줍게 검사기를 건넸다.

시우는 잠시 멍하게 검사기를 받고 두 줄이 그어진 걸 확인했다.


“...너 폐렴 걸렸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그도 알고 있었다.

이건 임신 테스트기였다. 그리고 이예지는 임신한 게 분명했다.


그 사실에 시우가 멍하게 입을 벌린 직후, 이예지가 음식을 내려놓으며 몸을 던졌다.

그리고 시우의 다리를 잡고는 울먹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키울 테니까 지우라는 말은 하지 말아줘...! 지우면 애가 불쌍하잖아...!”

“세상에...”


눈앞이 캄캄해진 시우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올 것 같긴 했다.

이전까지는 남자였다지만, 성인 여성이 성인 남성의 자취방으로 놀러 와서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난번의 관계가 괴로웠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결국, 시우는 다리를 부여잡고 매달린 이예지를 안아서 달래주는 한편,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임신한 거잖아.”

“...응?”

“그러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냐?”


그 말을 들은 이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울음 섞인 눈으로 그를 보다가 음험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그, 그러면 할까?”


시우는 대답 대신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한동안 이예지의 허접한 신음이 자취방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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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