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TS근친3] 대충 형이었던 것을 깔아뭉개는 소설

이예준은 멍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견디기 힘들 때마다 마시는, 냉장고의 맥주 몇 캔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망설임 없이 캔 하나를 따 내용물을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한 그가 캔을 내려놓았다.


‘...해방이네.’


그래, 해방이었다.

이번 장례식으로 그는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셈이었다.


이예준은 집에 돌아올 때 대충 아무렇게나 던졌던 영정 사진을 응시했다.

부모 같지도 않은 사람과 형 같지도 않던 작가의 얼굴을 보던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허구한 날 등신 취급하며 돈을 뺏어가지를 않나. 격려하기는커녕 업신 여기지를 않나.

학교에서 대놓고 괴롭히지를 않나. 소중한 가족을 역겨운 무언가 취급하며 멸칭을 붙이질 않나.

수없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여러 상처가 그의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젠... 다 지난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이예준이 넥타이를 끌어 의자 위에 던졌다.

탁자에 놓은 맥주 한 캔을 더 마시고. 검고 칙칙한 정장 상의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그리고 오늘은 술을 마시다가 취한 채 잠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띵 - 동.


띵동띵동띵동.


“...뭐야.”


이예준은 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도 잠시.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 그는 이내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녀는 그를 닮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여성이었다.

누나 같은 건 없었지만, 만약 누나가 있었다면 눈앞의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그 시점에서 이예준은 한 가지 사실을 자각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얼굴을 본 순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좆게이새끼.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추워 뒤질 것 같으니까 빨리 안으로 들여보내기나 해.”


무례한 언사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간 말종 특유의.


그러나 눈앞의 여성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에 힘입은 이예준은 이내 그의 직감을 최대한 부정하면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누구신데요.”

“나야, 나. 네 형. 이예형.”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재차 알아차렸다.

끝났다고 생각한 악몽이 재차 짓쳐 드는 것 같은 묘한 감각이 들었다.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이예준은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인 뒤였다.


“아, 씨발. 존나게 춥네.”


그렇게 투덜거린 여성이 입고 있던 헐렁한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옷장을 열어 이예준의 옷을 바닥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게이처럼 입고 다니는 것 좀 봐, 으휴. 병신 새끼. 그래도 이것 하나는 봐줄 만하네.”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옷 하나를 들어 올렸다.

마치 우리 사이에 허락 같은 건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파렴치한 태도.


이예준은 화도 나지 않았다.

아니, 이젠 화가 난다기보다는 기억 속 모습과 상당히 흡사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사채를 썼는데 돈이 없으니까 보증을 서라며 강요할 때의 표정과 지금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안무치하게 구는군.’


그렇게 생각한 이예준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찬장의 약통을 꺼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한테 받았던. 우울증이 심해질 때 먹으라고 했던 약을 애처로울 정도로 떨면서 삼켰다.

술을 마셨을 때 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지금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부디.

부디 눈앞의 저 여자가 환상이기를.

이예준은 그렇게 되뇌며 약 기운이 올라오길 기다렸지만, 눈앞의 여성은 사라지질 않았다.


“아, 씨발! 이거 뭐야!”


욕지거리를 내뱉은 여성이 영정 사진을 집어 이예준 쪽으로 대충 던졌다.


퍽, 하고 액자가 이마에 날아들었다.

이예준은 둔탁한 통증과 함께 뜨듯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신기하게도 고통은 없었다.

이미 수없이 있던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어가는 저 후안무치한 태도가 어처구니없어서일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아, 미안. 맞으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한 여성이 그러게 잘 피했어야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이내 경멸과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시선이 노트북과 공책에 닿았다.

마우스를 흔들어 절전 된 노트북의 화면을 켠 여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 봐라. 아직도 글이랑 그림 잡고 있었어? 인생 낭비를 계속하네?”


그 말과 함께 공책을 들어 올린 여성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예준은 그 모습에서 과거를 보았다.

공책에 적은 글과 그림을 보고 비웃던, 중학생 시절의 이예형이.

그 과거가 기억난 순간, 이예준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

“꺅!”


거칠게 여성의 손목을 잡은 이예준이 사나운 눈을 떴다.

여성은 조금 전 비명을 질렀다는 것과 이예준이 반항했다는 것에 당황해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너, 이 씨발 새끼... 왜? 한 대 치려고?”


이예준은 손목을 놓으며 생각했다.


글쎄.’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기회는 수없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번번이 최후의 선을 지켰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선을 넘을 이유는 없었다.


이예준은 약 기운에 힘입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가.”

“...하, 나가라고?”


여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냥 나가라고?”

“...허.”

“그리고 난 네 형이야! 비록 이런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세상 그 어떤 형이 동생이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도박하겠답시고 훔쳐?”

“그건...”

“매번 부모님께 손 벌리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부모님이 그 돈은 어디서 구했겠어? 다 내 등골을 빨아먹었지.”


그렇게 말한 이예준이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 내뱉었다.


“모든 게 다 그 작자들이랑 너 때문이야.”

“...이, 이게.”

“알아들었으면 꺼져! 악몽은 오늘로 끝이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이, 이... 넓은 집에 형도 못 살게 하는 거야!?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돌리지 말고. 경찰 부르기 전에 곱게 나가.”

“아아, 반응 보니까 뻔하네. 누가 좆게이새끼 아니랄까 봐, 집에 남친이라도 있는 거야?”


이예준은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건 그의 형이 자주 쓰던 방법 중 하나였다.

사람 속을 일부러 긁어놓고서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유도하는 것.


하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친구를 그렇게 부르지 마.”

“왜? 사랑하는 게 아니고서야... 모두가 병신 취급하는 그 새끼를 보듬어 줄 이유가 없잖아? 뭐, 얼굴은 반반했지.”


여성이 할 말 있냐는 듯 조소를 머금었다.


이예준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 주라고.

학교 도덕 시간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그러니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라고.

속에 쌓인 말들이 쏟아지려고 했지만, 그 대신 주먹이 먼저 올라갔다.


“케흑.”


감정이 실린 주먹이 여성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예준은 여성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는 걸 멍하게 바라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악몽에 시달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악몽을 불러올 수 있는 존재였다.


이젠 되갚을 차례였다.


--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