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넘어선 이>라는 존재들이 있는데, 어떤 이유로 필멸자의 한계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말해.


넘어선 이들은 수명이 아주 길거나 영원하고, 죽지 않거나 죽이기 아주 힘들며, 자연과 상식을 무시하는 신비로운 힘들을 사용하지.


세상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넘어선 이도 있고, 방해받지 않는다면 무관심하게 은둔하는 넘어선 이도 있지만, 간혹 어떤 넘어선 이들은 인간 사회에 섞여들어 사는 것을 즐겨.


일종의 놀이로서 말이야. 여기 이 외팔이 검사처럼.


종종 술집에서 떠벌리던 불우한 과거 이야기나, 한 쪽 눈을 멀게 한 마수와의 혈투, 팔 하나를 내주고 목을 베었던 격렬한 전장 이야기는 전부 설정.


원한다면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지만, 결손된 신체로 살아가는 게 즐거울 뿐이야. 스스로에게 불리함을 부여해야 롤플레잉에 재미가 더해지기도 하고.


한 쪽 다리가 없어 바퀴의자를 타거나, 누가 업어줘야 하는 상위등급 마법사.


사고로 한쪽 아랫팔을 잃어 거대한 렌치로 대체한 기계공학 대장장이.


양 팔이 없어 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싸울 때는 발차기로 춤추듯 적들을 휩쓰는 전투무희.


그동안 이 넘어선 이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었지. 


불구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당하고, 동료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도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함께하며 차츰 우정을 쌓고 성장하여, 나중에는 선입견에 반성한다며 사과를 받은 끝에, 장애를 딛고 일어나 인정받는 공략대의 일원이 되는, 짜릿하고 행복한,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


여기 이 넘어선 이는 그런 것을 좋아하니까.


혹시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상관 없었어.


조금 괴롭힘을 당하고, 부당하게 대우받아도, 이 넘어선 이는 그조차 색다른 재미로 받아들였거든.


놀이를 끝내는 것은 세 가지 경우야.


모든 것을 이루어서, 그러니까 이야기의 끝을 보고 질려버려서, 조용히 잠적하는 경우.


괴롭힐거면 재미있게 괴롭히든가, 몇 번 참아줬는데도 계속 재미없게 괴롭혀서, 짜증이 나 척살해버리는 경우.


그리고 아주 운이 없어서 공략대가 죽거나 크게 다칠 위기에 처했을 때, 정으로 살려주는 경우.


마지막은 아주 희귀한 경우야. 보통은 공략대가 전멸해도 놀이의 일부로 생각하거든. 롤플레잉에서 벗어나며 동료들을 살려주는 건, 그 놀이의 <친구>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지.


하지만 아무리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어도, 놀이의 설정을 깬 순간 놀이는 거기서 끝. 아쉽다고 투덜대며, 다음 놀이의 설정은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거야.


이 지역에서 절대 나올리 없는 강한 마수를 만나, 위기에 몰린 공략대.


"이렇게는 안 돼. 너라도 빨리 가! 우린 시간이라도 끌 테니까!"


동료들은 외팔이 검사라도 살리기 위해 단 하나 남은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동료들은 외팔이 검사가 눈과 팔을 순식간에 재생하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지.


"아쉽네. 이번 놀이는 되게 좋았는데."


"...팔이 어떻게."


검으로 허공을 슥 가르는 외팔이 검사와, 몸 전체가 비스듬히 잘려, 윗덩이가 절단면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거대한 마수의 모습.


동료들은 어떻게 결손 부위를 재생한 것인지, 왜 지금까지 힘을 숨겼는지 묻고 싶었지만, 지치고 다쳐서 엉망진창인 상태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다음에는 여자로 해볼까? 궁수? 주술사? 사제? 머리색은 또 어떤 게 좋으려나..."


검사는 어느새 여자의 몸으로 바뀌어 있었어. 검사는 머리카락의 색을 이리저리 바꾸며, 마치 옷이라도 고르는 것처럼 고민하고 있었지.


"되게 재밌었어 <친구>들아. 마을은 이 근처니까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잘 해봐."


"어딜 가는 거야... 물어봐야 할 게 많은데..."


배낭에서 신호 막대를 꺼내 하늘로 쏘아올리고는, 뒤를 돌아 짧게 인사한 뒤, 검사는 저벅저벅 걸어서 멀어졌어.


의식이 흐릿해지는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렇게 자취를 감추는 검사의 모습이었지.


***


오랜만에 동료들이 만나는 자리.


누구는 공략대를 은퇴하고 장사를 시작했고, 누구는 새내기들을 위한 공략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 물론 누구는 여전히 몸값이 잔뜩 올라 베테랑 공략대로 활동하고 있었지.


모임의 분위기는 즐겁고, 다들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해했지만,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검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 만은 피했어.


"너네, <그 검사>에 대해 잊어버린 것은 아니지?"


그러나 처음으로 그 금기를 깬 것은, 공략대의 마법사.


공기가 차갑게 식었지만, 마법사는 말을 멈추지 않았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왔다. 우리 뿐만이 아니야. 우리 같은 사람이 더 있어."


그 외팔이 검사는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넘어선 이이며, 늘 신체적인 결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인간 세상에 섞여들어 공략대로 활동했다는 마법사의 설명.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어?"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수비대가 수사하듯 좁혀가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도 많고."


마법사의 말을 들은 동료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졌어.


"나는 찾는 거 반대야. 넘어선 이와 엮인 사람은 마지막에 반드시 불행해져. 사람이 바다의 흐름에 뛰어드는 꼴이지."


사라진 동료의 정체가 넘어선 이라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는 말.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과 공략대를 함께하면서 쌓아온 추억들, 그것까지 없던 일로 할 셈이야?"


검사를 그리워하는 말.


"그럼 뭐해! 그게 다 연기였다면서! 일종의 놀이라면서!"


동료의 위선을 원망하는 말.


"하지만 그 날, 우리를 살려줬잖아. 정말 놀이에 불과했으면 우릴 죽게 내버려뒀겠지. 우리를 연극을 위해 이용했는지는 몰라도, 우린 확실히 친구이자 동료였다고!"


우정을 믿는 말.


숨겨온 정체와 연극에 배신감을 느껴 더 이상 엮이지 말자는 의견과, 그래도 우리는 동료였으니 찾아내어 직접 물어보자는 의견이 반반으로 갈려.


마지막으로 사제의 의견만 남은 상황.


동료들은 사제의 의사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하도록 합의하지. 찬성파도 반대파도, 사실은 배신감과 그리움이 모두 컸으니까.


단 둘만이 알고 있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제가 담담히 말했어.


"저는... 역시 찾고 싶어요. 들어야 할 대답과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리고 반드시, 전해줘야 할 말이 있어요. 제가 깨달은 것을, 꼭 들려줘야 해요."


반대파는, 역시 사제는 그럴 줄 알았다고 투덜거리며 싫은 척 하지만, 역시 사라진 동료를 찾는 게 내심 기쁜 분위기였지.


그동안은 현실적인 이유들로 외면하고 있었지만, 각자 개인적으로 꼭 검사를 찾아야 할 이유를 한 개씩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진 상황.


"...이게 가능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가능하게 해야지. 이렇게 안 하면 추적할 수 없어."


그렇게 마법사는 수시로 외모와 설정을 바꾸는, 이 넘어선 이를 쫓을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