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스가 왔다 간 후 석 달, 마을은 시끌벅적 해졌다.


 일단 오가는 상단의 수가 확 늘었다. 전에는 1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했던 커다란 상단들이 짐마차를 줄줄이 이끌고 찾아왔다.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코펜 가문에서 이미 대금을 치른 물건을 배달하는 거라 했다.


 그들은 건축 자재부터 생활 도구, 보존식 나아가 검과 창 같은 병장기까지 내려 놓았는데, 그 양이 어찌나 많은 지 마을 어디를 가던 내려 놓고 간 짐 더미가 보일 지경이었다. 써도 되는 거냐고 물어보니 드래곤님 앞으로 보내진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바로 생활용품과 농기구 따위가 담긴 꾸러미 몇 개를 풀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주민들은 코펜 가문이 준 선물이라고 했음에도 "그것도 다 수호신님이 계셨기에 일어난 일 아니겠습니까"라며 한사코 내게 감사를 표했다. 처음에는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뻔뻔하게 인사를 받았다. 뭐, 감사하다는데 어쩌겠는가.


 다음에 찾아온 것은 기술자와 노동자들이었다. 기술자 대부분은 건축가나 목수였으며 종종 대장장이나 세공사가 끼어 있었다. 대표로 보이는 인간들이 찾아와 오래 머무르게 됐다며 천막을 칠 장소를 제공해 달라고 하길래 마을 옆 평야를 내주었다. 곧 개간 작업에 들어갈 곳이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 대업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기로 했다.


 제법 넓은 면적이었음에도 평야는 순식간에 알록달록한 천막으로 가득 찼다. 멀리서 대충 봐도 시골 마을인 라이오비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 찾아가 보니 겉모습만 천막촌이지 돌아가는 꼴이 도시나 다름 없었다. 일부 구역은 완전히 시장이 되어 온갖 물건이 오고 갔으며 전문 식당처럼 보이는 천막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심지어는 유흥가까지 조성 되어 가슴골과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야시시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무려 대낮에 말이다. 나한테까지 추파를 던졌을 땐 솔직히 소름이 다 돋았다.


 아니, 나 지금 뿔이랑 꼬리 달린 소녀 아닌가? 이 세계 사람들의 수비 범위가 두렵다.


 천막 설치를 끝낸 대표들, 그러니까 조합장들은 내게 도시 건설 계획을 설명했다.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태반이었기에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에레아와 에레노가 똑똑하니 어련히 알아 듣겠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이런저런 질문을 열심히 던져 댔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넘겨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민들이 나를 위해 지어주고 있는 저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드래곤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허물고 더 크고 화려하게 짓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바로 거절했다. 공사가 얼마 진행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뼈대가 다 올라온 상태였다. 주민들이 나를 위해 고생하며 만든 것이기에 함부로 허물고 싶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에레아와 에레노는 감동하는 눈치면서도 다시 짓는 게 좋지 않겠냐며 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의지가 확고 했기에 꼬리로 바닥을 툭툭 치며 절대 허물지 않겠노라 단언했다. 그러나 둘의 의지도 나와 같이 확고 했기에 외관 디자인을 바꾸고 지금 지어진 뼈대를 토대로 증축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라이오비츠가 소속된 팔라테나 왕국의 사절단이 찾아왔다. 규모가 심상치 않았는데 사람 수만 300을 훌쩍 넘었으며 대동한 마차의 수는 그동안 찾아온 상단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가장 앞에 선 화려한 마차에서 내린 것은 백발의 노년 남성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드래곤님. 저는 팔라테나의 국왕 레타스 벤델린 팔라테나의 대리로 오게 된 헤리 폴만이라 합니다. 먼저 국왕 폐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여 직접 찾아뵙지 못한 일에 대해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말 뿐 아니라 사죄의 선물을 준비했으니 부디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스로 국왕 대리로 찾아왔다는 헤리 폴만은 내게 인사를 건냈다. 절도 있는 동작과 균형 잡힌 발성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기세가 잘 갈무리 되어 있어 착 가라 앉아 있음에도 묵직 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여간 내가기 아니어 보였다. 소설에서 똬리를 튼 이무기나 천 년 묵은 구렁이 같다, 라고 표현 되는 인물 같달까.


 그래서 난 아브라스를 만났을 때와 똑같이 대응하기로 했다.


"그래. 잘 받지."


 바로 뒷짐 지고 단답하기였다. 그래도 주는 게 하도 많아 잘 받겠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작전은 유효 했는지 헤리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내게 선물을 전달했다. 그러고는 여긴 인사차 들른 거라며 자세한 얘기는 코펜 가주와 상담하겠다며 순식간에 떠나갔다.


 ......뭔가, 내가 모르는 엄청난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살짝 겁이 났다. 그렇다고 티를 내진 않았다. 나는 드래곤이니까.


 받은 선물은 주민들에게 잔뜩 나눠주고도 한참 남아 하는 수 없이 둥지 구석에 몰아 넣었다.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둥지 구석에 나뒹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째 제물을 걷어 처박아 두기만 하는 사악한 드래곤이 된 기분이었다. 그대로 두면 언젠가 이것들을 노린 토벌대가 찾아올 것 같아 한참 고생하고 있을 아브라스에게 선물했다.


 그 뒤로는 별 일 없었다. 마을에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구경하고 천막촌을 관광하고 가끔 아브라스랑 만나서 일의 경과와 앞으로의 계획, 일정을 듣는 정도?


 아, 다른 왕국에서 찾아온 사절단도 몇 번 만났다. 팔라테나 왕국 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다들 제법 규모가 있었다. 덕분에 깔끔하게 청소했던 둥지가 다시 금은보화로 가득찼다. 또 아브라스에게 보내려 했더니 저번에 받은 것도 다 소모하지 못했다며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보관하기로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에레아랑 에레노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솔직히 나도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감? 본능? 같은 걸로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제대로 된 강의를 해주진 못했다. 그래도 재능이 있던 것일까, 둘은 어찌저찌 잘 따라왔다. 여전히 복잡한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전기를 창으로 만들어 던졌을 땐 좀 놀랐다. 나처럼 강력한 번개를 광범위하게 쏟아낼 수 없어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구상한 결과물이라던데.


 진짜 천재들인가?


 아니나 다를까 코펜 가문에 있던 마법사가 찾아왔을 때 물어보니 말도 안되는 재능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나 대신 마법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드래곤식으로 마나가 자리 잡아 인간의 마법 체계를 배워봐야 쓸모 없을 거라나. 드래곤의 마법은 인간에게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나나 다른 드래곤에게 도움 받는 게 아니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했다.


 어쩐지 둘의 재능을 내가 망가트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어째선지 그 간단한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전생에는 어렵지 않게 하던 말이었는데. 용이 된 부작용인가 싶었다.


 내가 뒤에서 우물쭈물 "미...안......"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자 둘은 날 꼭 껴안고 괜찮다고 토닥여 주었다. 꼬리가 제멋대로 붕붕 흔들려 부끄러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나도 둘을 꼭 안아준 다음 마법 지팡이를 선물했다. 둥지에 보관해둔 보물 중 예쁜 것을 골라 내 마법을 잔뜩 때려 박은 아티펙트였다.


 둘은 굉장히 기뻐하며 꼭 가보로 삼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이 말만하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다시 훌쩍, 십 년이 흘렀다.


 마을은 마침내, 소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아무 계획 없이 시작해서 생각의 흐름대로 전개하다 보니 어떤지 잘 모르겠네


캐릭터도 제대로 안 잡혀있고


일단 4화까지 대충 써 놨는데 그냥 후딱 아카데미 올려버리고 끝낼까 싶음


원래는 자기 땅에 세워진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하는 뇌속성 수호룡 틋녀의 좌충우돌 학생위잠입액션 아카데미 생활 일기를 바구니로 쓰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