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2번째로 읽은 지금, 그 작품성을 논하자면 솔직히 세간의 평가만큼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스니커 문고 편집부의 해설을 인용하자면 자신도 모르게 "맙소사!"를 외치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커다란 매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건 개연성이 없는 장면 전환과 그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예를 들면 "폐쇄 공간"과 하루히의 무의식적인 세계 재구축 시도는 줄거리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지만, 그 국면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경위가 초중반부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한들 딱히 상관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주인공인 쿈이 절정을 해결하는 과정이 하루히에게 입을 맞추는 게 전부인데, 앞 부분에서 두 사람의 연애 플래그가 세워진 것도 아니었고 갑작스러웠다. 물론 "개연성"만을 바라보고 글을 쓰는 건 설정 사이의 충돌이 없도록 신경써야 해서 어렵고, 그 극단에는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기에 어느 정도는 기상천외한 전개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마 훌륭한 줄거리는 뜬금없는 전개와 뻔한 전개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워낙 파급력이 컸던 작품이다 보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좋은 평가를 받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좋은 부분을 꼽자면 정석적인 소설의 구성 단계를 따르고 있고, 요즘 말로 '모에'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한 개성의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등 라이트노벨로서 기본을 잘 지킨 편이다. 감히 <에이티식스> 따위의 요즘 라노벨과 비교하자면, 모든 라노벨이 불쏘시개는 아닌 셈이다. 어쩌면 글쓰기의 기본에만 충실해도 꽤 좋은 소설이 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여담

공부가 바빠서 쓰고 있던 글의 연재를 중단하게 됐어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도 연초부터 읽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는 도무지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이제야 다 읽은 셈이니... 그 정도로 여유가 없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는 대로 다시 이어나가 볼까 생각 중입니다.